“한국이 합의 불이행” 꺼낸 트럼프, 상호 관세 25% 원복 카드의 계산
“한국이 합의 불이행” 꺼낸 트럼프, 상호 관세 25% 원복 카드의 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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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미투자특별법 계류 문제 삼아
美법원 판결 따라 관세 무효화 가능성
‘이행 단계 국제 합의’ 논리 확보 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직접적으로 지목해 자동차 등 주요 품목의 상호관세를 25%로 되돌릴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발언의 핵심은 양국 정상 간 합의가 이미 체결·재확인됐다는 사실과 이행 책임이 한국 측에 있다는 주장에 맞춰졌다. 이러한 움직임은 합의 이행 문제를 통상 압박의 중심축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 관세 정책을 둘러싼 미국 내 법적 변수와 맞물려 전개되는 모양새다.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앞둔 상황에서 관세의 법적 운명과는 별도로 합의 이행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공식 행정명령·관보 게재는 아직
26일(이하 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게시물을 통해 “한국 입법부가 한국과의 합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에 따라 나는 자동차, 목재, 의약품 및 기타 모든 상호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재명 대통령과 지난해 7월 30일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되는 합의에 도달했고, 같은 해 10월 한국을 방문해 이를 재확인했음에도 한국 국회가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면서 “이(관세 25% 원복)는 상호주의 원칙에 따른 조치”라고 주장했다. 관세 인상의 명분을 한국 입법부의 절차 지연으로 특정하며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한국 쪽으로 돌린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한국 국회의 승인’은 대미 투자 이행을 위한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양국이 공개한 공동 팩트시트에 따르면 한국은 3,500억 달러(약 507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고, 미국은 이에 상응해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하던 관세를 인하하는 내용에 합의했다. 이와 함께 한국의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지원 또는 승인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양국은 지난해 11월 14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이후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 관세를 15%로 소급 인하했다.
문제는 한국 국회의 법안 통과 절차다. 대미투자특별법은 지난해 11월 말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됐지만,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논의에 난항을 겪으며 두 달째 계류 중이다. 비준 필요성 자체를 두고도 여야 간 견해가 엇갈리는 탓이다. 여당에서는 대미투자 협의 내용이 MOU라는 점을 들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조약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상태며, 반대로 야당은 비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상황을 합의 지연으로 봤다.
다만 미국이 이미 의안 상정만으로 관세 인하 조치를 단행한 만큼 입법 절차가 일정 기간 소요될 수 있다는 점은 미리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평가다. 미국 역시 의회 인준을 받아야 하는 인사가 최소 반년 이상 걸리는 사례가 대부분인 데다, 의회 회기와 양당 교착 등 기술적 요인들도 배제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합의 이행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아울러 공식 행정명령이나 관보 게재 등의 조치 역시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어 관세 인상을 둘러싼 정확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관세 인상이 현실화할 경우엔 주요 수출 품목 전반이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관세 인상의 여파를 경험한 자동차업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25% 관세가 적용됐던 시기인 지난해 2·3분기 현대차와 기아의 손실액은 총 4조7,000억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현대차는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한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등 현지 생산 확대를 통해 관세 부담을 줄인다는 방침이지만, 단기간에 관세 인상분을 상쇄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여기에 완성차 업체들은 물론 부품 협력사까지 수익성 악화가 확산할 가능성도 함께 거론되면서 산업계의 불안은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다.

사법 판단에 관세 정책 종속
변수로는 상호관세의 근거가 되는 대통령의 행정권한 자체가 현재 미 연방대법원의 판단을 앞두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대법원은 지난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국가별 상호 관세의 위법성 여부에 대한 최종 심리에 돌입했다. 핵심은 IEEPA가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까지 포괄적으로 위임한 권한인지 여부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불균형이 국가 안보와 경제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는 논리를 들어 IEEPA 발동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상황이며, 소를 제기한 미국 내 12개 주 정부와 기업들은 관세 부과 권한이 헌법상 의회에 속한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하며 대통령이 비상권한을 근거로 이를 행사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앞선 1심과 2심 재판부는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조치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8월 2심을 진행한 워싱턴DC 연방순회항소법원은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 행정명령의 근거로 삼은 IEEPA는 수입을 ‘규제’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지만, 행정명령으로 관세를 부과할 권한까지 포함하지는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진행 중인 해외 협상을 위험에 빠뜨리고 합의의 틀을 위협하는 처사”라고 반박하며 “판결이 유지되면 미국의 방어가 무너지면서 다른 국가들이 무역 보복 정책을 휘두르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즉각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연방대법원의 판단은 여러 차례 연기되며 불확실성을 키웠다. 현지 법조계에선 대법원이 이달 9일 또는 14일 주요 판결을 내릴 가능성을 내다봤지만, 두 차례 모두 관세와 무관한 사건만 다뤘다. 이후 20일에도 의료 소송 등 일반 사건 3건에 대해서만 판결을 선고하는 데 그쳤다. 통상 미 연방대법원은 특정 사건의 선고 시점을 사전에 밝히지 않는 관행을 유지하는데, 이 때문에 관세 정책을 둘러싼 법적 불확실성도 장기화하는 실정이다. 판결 시점조차 특정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관세 정책 유효성 논란은 과세 측과 납세 측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판결 이후 시나리오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나섰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연방대법원이 상호관세를 무효로 할 경우, 즉시 ‘대체 관세’ 도입에 나서겠다”면서 “대통령이 지목해 온 문제들에 대응할 다양한 옵션이 주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IEEPA가 아닌, 여타 법적 근거를 활용한 일종의 ‘플랜B’가 마련돼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상호관세 정책이 사법 판단에 종속된 상태에서도 미 행정부 차원에서는 대체 수단을 전제로 한 병행 구도가 추진되고 있는 셈이다.
한미 통상 질서 중장기적 부담 전망
한국을 겨냥해 합의 이행을 종용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역시 판결 이후를 대비한 움직임에 가깝다. 이는 그의 발언이 관세율 조정보다 “이미 합의에 도달했지만, 상대측에서 승인되지 않았다”는 표현을 반복하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통상 국제 협상에서 합의 이행 과정에 필요한 국내 입법은 각국의 제도적 절차에 따라 시차가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과정은 미뤄둔 채 승인되지 않았다는 결과만 강조하는 식이다. 이는 향후 관세 조정이나 추가 조치를 정당화할 때, 상대국의 내부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합의 불이행 프레임을 유지하는 토대를 만들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 같은 접근은 판결 이후를 대비한 통상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만약 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가 대법원에서마저 위법으로 판단될 경우, 기존 관세 조치는 유지되기 어렵다. 그러나 특정 국가와의 합의가 이미 체결·확인된 사안으로 인식되면 미 행정부는 이를 근거로 유사한 조치를 재구성할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어 USTR 대표를 비롯한 미 행정부 주요 인사들이 상호관세가 무효화되더라도 대체 관세를 도입하겠다는 발언은 반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법 판단과는 무관하게 통상 압박 수단을 연속적으로 유지하겠다는 메시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압박이 한미 통상 질서에 중장기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관세 조치가 위법으로 판단되더라도 자동 환급이나 즉각적인 정상화로 이어지는 구조는 아니다”라고 짚으며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법적 근거를 동원해 관세를 재부과할 경우,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은 더욱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판결 이전에 합의 이행을 기정사실화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이런 불확실성을 관리하기는커녕 통상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만 높인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