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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품 기업 푸르밀은 이달 30일 예고한 사업종료를 전격 철회하고 30% 감원으로 사업을 유지한다고 10일 밝혔다. 사업종료와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한 지 24일 만이다.
푸르밀은 이날 신동환 대표이사와 임직원, 노동조합 명의로 대국민 호소문을 내고 “회사는 기존에 발표한 11월 30일부 사업종료를 전격 철회하고 슬림화된 구조하에 갖추어진 효율성을 바탕으로 회사의 영업을 정상화하도록 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신 대표는 입장문에서 “지난 2018년부터 현재까지도 지속된 누적 적자로 ‘경영 위기’를 넘어 회사의 ‘존폐’를 고민할 만큼의 상황에까지 이르렀다”며 “현금 유동성마저 고갈돼 회사가 더 이상 사업을 영위할 수 없겠다는 판단에까지 이르러 지난 10월 17일 경영정상화를 위해 그동안 노력해온 직원들에게 정상적인 급여 지급이 가능한 날까지만 사업을 영위할 것임을 발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많은 분이 사업종료만은 막고 어려움을 최소화해달라는 요청을 한마음으로 해 주셨다”며 “회사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비상경영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노동조합의 뼈를 깎는 희생과 도움으로 구조조정 합의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여기에 자금지원의 용단을 내려 주신 주주분들의 지원으로 회사를 정상화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됐다”고 했다. 이어 “회사는 45년 전 창업 초심으로 돌아가 재도전하고자 하오니 회사에 대한 미움을 거두어 주시고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면 감사하겠다”며 “좋은 제품으로 보답하겠다. 저희 제품을 사랑해 달라. 무릎 꿇어 간절히 호소드린다”고 덧붙였다.
30% 감원하고 사업 존속, 수익성은 개선될 수 있나?
푸르밀을 비롯, 우유업계에서 논란을 겪은 남양유업의 사례 등에서도 나타나듯 우유 업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원유(原乳) 가격이 시장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낙농업계의 판단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점과 그 가격이 그대로 우유업계에 전가되어 시장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결함에 있다.
정부는 수년간 '원유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관철시키기위해 우유업계와 낙농가를 상대로 협상을 벌여왔으나 낙농업계 관계자들이 전국적인 데모를 이어가며 불만을 쏟아냈다. 답답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서울우유는 지난 8월 원유 가격 인상을 단독으로 결정하고 낙농가에 월 30억원 규모의 목장경영 안정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원유 구매 가격을 리터(ℓ)당 58원 인상하는 격이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서울우유가 국내 시장 점유율이 40%가 넘는 사실상 준(準) 독점기업인 만큼 서울우유의 이같은 결정은 결국 낙농업계에도 영향을 줘, 9월에는 낙농진흥회에서도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푸르밀이 30% 인원 감축 후 사업을 존속하기로 결정한 부분도 이렇게 낙농업계와 우유업계, 농식품부 3자가 타협안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낙농가가 오랜 기간 반발해왔던 가장 큰 이유가 수익성 확보에 대한 정부의 보장이었기 때문이었고 결국 보전분을 기업들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감당하기로 결정이 났기 때문이다.
노조와의 타협, 기업 생존이 사측-노조-공급업체 모두에게 윈-윈이라는 인식 확대로 얻은 성과
30% 인원 감축이라는 대승적인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영업 종료로 직장을 잃게 되는 푸르밀 직원들뿐만 아니라 매출처가 사라져 수익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진 낙농가들의 걱정도 작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 17일 전사 메일을 통해 사업 종료와 정리 해고 통지가 나간 이후 푸르밀 노조 측은 사측이 무능, 무책임 경영으로 일관했다는 비난 성명을 냈고 낙농가들도 상경 집회를 벌이며 푸르밀 사측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현해왔다. 그러나 사업 종료가 모두에게 손해라는 인식에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지난달 24일, 31일, 11월 4일 연이은 만남을 통해 견해차를 조금씩 좁혀 왔다. 결국 8일 4차 교섭 중 30% 인원 감축이라는 합의점에 이른 것이다.
직장은 데모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만들어내는 것
이번 논란을 겪으며 기업 담당자들은 대체로 낙농가의 오랜 고집과 정부의 굼뜬 대응 때문에 국내 우유업계 자체가 붕괴할 뻔했다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내놨다. 낙농가들도 상경 집회 도중 푸르밀 사업종료로 인한 손실을 계산하는 노상 대화가 이어지는 등 푸르밀을 비롯한 우유업계 기업들과 협조 없이는 공존이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는 것이 큰 성과라는 해석도 따라왔다.
한 기업가는 "직장은 데모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그간 '원유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에 고집스레 반대만 일관해왔던 낙농업계와 손실 보는 기업들의 하소연에도 발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던 농식품부가 푸르밀 사태의 주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푸르밀 경영진도 뛰어난 경영수완을 보여줬던 것은 아니지만 우유 사업 자체가 상식적인 선에서 흘러갈 수 있는 유통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적자 폭이 커졌던 원인은 결국 공급망의 밸류체인(Value-chain)에서 낙농가에게 전달받은 비용을 전가할 길 없는 우유업계의 안타까운 속사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푸르밀의 사업종료 사태는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게 됐지만 정부와 노조가 기업의 애환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기업가의 불만이 가볍게 들리지만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