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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출범 후 지난 1년간 규제 혁신을 통해 투자 유치와 신시장 창출 등으로 34조원 규모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올해 비대면 진료 활성화, 로봇을 활용한 배송, 메타버스 실생활 적용 등 신산업 분야의 규제를 혁신해 지난해보다 더 큰 경제적 성과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2일 오후 경기 판교 메타버스 허브센터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부처 장관, 경제단체장,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한 가운데 '제3차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국무조정실은 이날 부처별 안건 보고에 앞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8개월여 간의 규제 혁신 성과를 보고했다. 정부는 장기간 풀리지 않은 환경·문화재 규제 등을 포함한 688개 과제에 대해 법령 개정 등 후속 조치를 완료했다. 시행령 이하 행정 입법 과제 633건과 법률 개정 55건(국회 제출 기준) 등이다.
환경부의 규제 혁신, "기업에 도움 안 된다" 비판 제기돼
환경부는 지난해 민·산·관 협의체인 화학안전정책포럼을 통해 위험에 따라 차등화된 화학물질 지정·관리체계 개편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연간 1톤 미만의 소량·신규 화학물질 등록 시 자료 제출을 간소화했고 반도체 제조 시설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시설 기준을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또한 탄소중립·순환 경제 구현을 위해 온실가스 감축 유인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개선했으며,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및 포집 이산화탄소 재활용 기준․유형을 개선해 약 1.5조 원의 민간 투자 기반을 마련했다. 순환자원 인정 기준은 기존 11개에서 4개로 완화했고 사용 후 배터리의 폐기물 규제 면제도 결정됐다.
환경영향평가 대상·기준을 조정해 숲속 야영장, 산림 레포츠 시설 등이 불필요한 평가를 받지 않도록 개선했으며, 사전 진단 및 기존 자료 활용 등 환경 평가 관행을 개선해 평가를 간소화 및 단축했다. 이 밖에도 하천 구역에 반려동물 운동 및 휴식 시설의 설치를 허용하고, 환경 표지 통합 인증 제도를 도입하는 등 비교적 국민 체감이 큰 규제도 개선이 진행됐다.
하지만 정작 기업 운영에 도움이 되는 환경 분야의 규제 개혁은 환경 인증 통합 허가 등 미미한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불합리한 환경 규제로 난항을 겪고 있는 기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효성 부족한 행정안전부 규제 개혁 사례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유찰상가 합리적 예정 가격 적용으로 소상공인 사업 참여 편의를 증진했다. 상가가 2회 유찰될 경우 추가 유찰 시마다 기초 금액을 10% 하향할 수 있도록 개선해 공실 기간을 최소화하고(1~3개월) 소상공인에게 신속한 사업 참여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광주에서는 산업단지 입주 기업 초기 공공폐수처리비 감면으로 경영 환경을 개선했다. 공공폐수처리시설 폐수 처리 비용에 하수도 요금 단가(기존 대비 40% 수준)를 적용할 수 있도록 「광주광역시 공공폐수 처리시설 운영 및 비용 부담 조례」를 개정, 산단 초기 입주기업 및 지원 시설 경영 환경을 개선했다는 설명이다.
인천 중구는 토지 보상 사업 인정 가이드라인 설정으로 재개발 정비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낸다. 기존 사업 시행 계획 변경 인가를 통해 사업 시행 기간을 조기 만료 및 실효시킨 후 새로운 사업 시행계획을 중앙토지수용위원회와 협의하는 방식이다. 충북 청주시는 현실 경계로 지적 경계를 조정해 분할 측량을 생략하고 위원회 심의와 인허가 변경 절차를 단축해 신속한 건축물 사용 승인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 밖에도 경북 청도군에서 소하천구역 외 토지 활용 민원에 대해 규제가 덜한 법령을 적용하고 부산 해운대구에서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장학금 지원 기준을 신설해 복지 수혜 형평성을 제고하는 등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규제 개혁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 역시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피하진 못했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행정안전부의 규제 개혁에 대해 "건설 경기 다 망가지고 난 다음에야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고 개발 이익이 없어서 손 놓은 지방 소하천 일대 개발을 지원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냐"며 일갈하기도 했다. 정부가 '보여주기식' 행정에 치중하며 정작 시장이 필요로 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장은 '진짜' 규제 혁신을 원한다
한편 시장에서는 지난해 정부가 '생색내기식' 규제 혁신에 예산과 시간을 낭비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 벤처 업계 관계자는 "34조원 경제효과를 창출했다는 발표를 믿을 수가 없다. 그냥 고칠 게 많아서 많이 고친 걸 자랑스럽게 부풀려 말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수준"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부가 실질적으로 산업계의 숨통을 틀어막고 있는 규제는 고스란히 방치한 채 '수박 겉핥기'식 행정을 이어가고 있다는 질타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대표적인 규제 혁신으로는 '주 52시간제 개혁'을 들 수 있다. 시장에는 주 52시간 이상 일해서라도 더욱 많은 급여를 받고 싶어 하는 근로자들이 분명 존재한다. 기업 역시 규모 및 운영 방식에 따라 유연한 업무 시간 조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부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규제 혁신으로 예산을 낭비하며 곤경에 처한 수많은 기업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합리적 규제 혁신의 대표적인 예시가 '규제 샌드박스'다. 규제 샌드박스는 첨단 신기술·서비스의 시장 출시와 테스트가 가능하도록 일정 조건 하에 기존 규제를 면제·유예하는 제도로, 다른 국가는 주로 금융 분야만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으나 우리는 금융은 물론 실물경제 분야(ICT, 산업 등)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규제 샌드박스로 기업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은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운 만큼, 오히려 규제 샌드박스로 인한 기업 피해 사례가 더 큰 주목을 받으며 업계의 반발심을 키웠다.
ICT(정보통신기술) 규제 샌드박스 1호 기업인 뉴코애드윈드는 2020년 오토바이에 장착하는 배달통을 디지털화한 광고 서비스 '디디박스' 사업을 시작했다. 현행 옥외광고물법상 도로 교통수단은 전기나 발광 방식의 조명을 이용하는 광고물 부착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뉴코애드윈드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광주광역시에서 2년간 디디박스를 최대 100대 운행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나아가 도로 교통상 안전성이 입증되면 전국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조건도 붙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지역·대수 제한은 해제되지 않았다. 뉴코애드윈드는 수익이 나지 않는 제한된 범위에서 사업을 지속해야만 했고 수십억원 규모의 빚더미에 앉게 됐다. 이에 결국 지난해 2월 뉴코애드윈드는 실효성 없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에 분노하며 UAE(아랍에미리트)로 향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야 행안부는 광주·전남으로 국한했던 디디박스의 운영 범위를 서울·경기 및 6대 광역시와 제주도로 대폭 확대했다. 운영 대수도 100대에서 최대 1만대로 무려 100배 늘렸다. 뉴코애드윈드는 서울·경기·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울산·제주 등 전국구에서 디디박스의 사업성을 검증할 수 있게 됐지만, 이미 회사는 빚더미에 오른 후였다.
지난해 기업의 생사를 좌우하는 중대한 규제 혁신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가 그저 보고서용으로 '생색내기' 행정을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시장은 규제 혁신으로 34조원의 경제 효과를 창출했다는 정부의 발표보다 진짜 필요한 '규제 혁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부의 고찰과 탐색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