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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탄소중립 정책을 선언하는 가운데, 일본 정부 역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녹색전환(Green Transformation, 이하 ‘GX’)을 중심 과제로 삼고 관련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2023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경제성장을 견인해 나가기 위한 시책으로 GX와 DX(디지털 전환)를 제시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올 2월 ‘GX 실현을 위한 기본방침: 향후 10년을 바라본 로드맵’(이하 GX 기본방침)을 공표, GX 정책의 장기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일본 시장 시가총액 1위를 달리는 도요타자동차부터 일본전신전화주식회사(NTT) 등 다수의 기업이 이미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대책을 실시하고 있으며, 2023년 1월 말 기준 679개의 기업이 경제산업성이 탄소중립을 위해 제창한 ‘GX 리그’에 동참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2022년 10월 ‘탄소중립·녹색성장 비전과 세부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지난 21일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23~'42)' 정부안을 발표하는 등 전 세계적 친환경 흐름에 동참한 상태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녹색성장 정책은 일본의 GX 정책의 ‘목적’ 자체가 다르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내부 환경 개선, 국민 생활 환경 향상 등에 초점을 맞춘 일본 GX와 달리, 우리나라는 EU의 ESG 공시 의무화에 중점을 두고 '수출 피해'를 막기 위해 부랴부랴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日 'GX 실현을 위한 기본방침' 공표
일본은 GX 실현을 위한 방침으로 먼저 철저한 에너지 절약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에너지 절약 보조금’을 창설해 중소기업의 에너지 절약 지원을 강화하고, 주요 5개 업종(철강, 화학공업, 시멘트 제조, 제지업, 자동차 제조)에 대한 비화석 에너지 전환 기준을 제시할 예정이다. 국민 일상 속 에너지 절약을 위해 에너지 고효율 단열창으로의 보수 등 각종 지원도 강화한다.
재생가능에너지 활용에도 초점을 맞춘다. 일본 정부는 2030년도 재생가능에너지 비율을 36~38%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향후 10년 동안 과거 10년의 8배 이상 규모로 계통 정비를 가속화하고, 홋카이도에서부터 해저 직류 송전을 정비할 계획이다. 지역과 상생하는 재생가능에너지 도입을 위한 사업 규율 강화도 예정되어 있다.
11년 만의 '탈원전' 폐기 방침도 내놨다. 차후 원자력 에너지를 이용하고 발전시키되, 최대한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폐로가 결정된 원전 부지를 차세대 혁신로로 교체하고, 기타 개발·건설은 각 지역의 재가동 상황을 고려해 검토해나갈 예정이다. 이 밖에도 핵연료 사이클 추진, 폐로의 효율적 실현을 위한 지식 공유 및 자금 확보 등 시스템 정비, 최종 처분 실현을 위한 국가 주도의 국민 이해 촉진 등 다양한 원전 관련 정책을 추진해나간다.
신재생 연료 확보를 위한 정책도 마련됐다. 먼저 수소·암모니아의 생산·공급망 구축을 위해 기존 연료와의 가격 차이를 고려한 지원 제도를 도입하고, 수소 분야를 선도하기 위한 국가 전략을 수립한다. LNG(액화천연가스)의 경우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장의 동향을 고려, 전략적으로 잉여 LNG를 확보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기술개발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일본 정부는 향후 10년간 카본 리사이클 연료(합성 메탄, 지속 가능한 항공연료(SAF), 합성연료 등), 축전지, 자원순환, 차세대 자전거, 차세대 항공기, 무배출시스템(zero-emission) 선박, 탈탄소 목적의 디지털 투자, 주택·건축물, 항만 등 인프라, 식량·농림수산업, 지역·생활 등 각 분야에서 GX를 위한 연구개발·설비투자·수요 창출 등을 추진해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인센티브 바탕의 '성장지향형 탄소 가격제'
일본 정부의 '성장지향형 탄소 가격제(CP) 구상'은 탄소중립과 일본의 산업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실현하기 위한 정책으로, 규제와 지원을 일체화한 것이 특징이다. 먼저 일본 정부는 현 탄소 가격제 도입 상황을 고려해 민관의 녹색 전환 투자를 단행할 예정이다. 2022년 5월 기시다 총리는 향후 5년 동안 150조 엔 이상의 민관 GX 투자를 실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은 성장지향형 탄소 가격제 실현을 위해 △GX 경제이행채를 활용한 선행 투자 지원 △성장지향형 CP에 의한 GX 투자 인센티브 △새로운 금융 수법의 활용 △국제전략·공정한 이행·중소기업 등의 GX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성장지향형 CP에 의한 GX 투자 인센티브'다.
일본은 차후 성장지향형 CP에 의해 탄소 배출에 가격을 매기고, GX 관련 사업 등의 부가가치를 향상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기업은 GX에 임하는 기간을 설정하고, 에너지 관련 부담 총액을 중장기적으로 감소시켜나갈 방침을 사전에 제시하게 된다. 정부는 기업이 제시한 방침을 고려해 각종 지원을 제공하는 한편 GX를 선행 실시한 사업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규제와 지원을 일체화한다는 목표를 가장 명확히 드러낸 사업인 셈이다.
하지만 현재 성장지향형 CP 구상안에는 비효율적인 탄소 가격, 사업 시행 시기 등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 차후 일본은 2050년 넷제로(지구 기후에 변화를 초래하는 온실가스 배출과 흡수가 균형에 이른 상태) 달성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 및 도입 방식을 검토하고 구상안을 점차 개선해나갈 예정이다.
기업들과 함께하는 탄소중립 'GX 리그'
지난해 2월 일본 경제산업성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정책으로 ‘GX 리그 기본구상’을 발표했다. GX 리그는 탄소중립 달성을 경제성장의 기회로 삼고,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GX를 실현하는 시책이다. 2023년 1월 31일 기준 ‘GX 리그 기본구상’에 참여 의사를 밝힌 기업은 679개에 달한다.
일본 정부는 GX 리그에 참여 시 환경 보호뿐만 아니라 기업 운영 비용 삭감, 브랜드 이미지 강화 등 다양한 혜택이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글로벌 ESG 경영 확산에 따라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며, 이 같은 평가 기반으로 기업 가치가 상승해 투자 유치 및 우수 인재 채용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본 기업들은 이 같은 정부의 움직임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일본 시장 내 시가총액 1위를 달리는 도요타는 이미 2015년에 ‘도요타 환경 챌린지 2050’을 발표한 바 있다. 해당 챌린지는 자동차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제거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도요타가 제시한 챌린지는 총 6개이며, 이 중 GX 관련 대응은 3가지다.
먼저 도요타는 부품·차량의 제조에서 주행·폐기까지 라이프 사이클 전체에서 이산화탄소 배출 제로를 지양하는 '라이프 사이클의 CO2 제로 챌린지'를 실시한다. 이 밖에도 신차 CO2 제로 챌린지를 통해 2050년까지 글로벌 신차의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90% 삭감하고, 공장 CO2 제로 챌린지를 통해 2050년까지 글로벌 공장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제로'를 목표로 탈탄소화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NTT(일본전신전화주식회사)는 2021년 9월 새로운 환경 에너지 비전인 ‘NTT Green innovation toward 2040’을 발표했다. 해당 비전에는 사업 활동에 의한 환경 부하를 줄이고, 경제성장을 동시에 실현하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 NTT는 2030년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3년 대비 80% 삭감하고, 2040년에는 NTT 그룹 전체의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을 확대하고, 네트워크 정보처리 기반 구상인 IOWN(Innovative Optical and Wireless Network) 도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전력 소비량을 줄여나갈 예정이다.
일본의 GX 정책은 '탈탄소'와 '경제성장'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전 세계적 'ESG 규제' 회피보다는 환경 문제 개선, 국민 생활 환경 향상 등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내에서는 GX 정책에 대한 많은 우려와 반대 의견이 제기되고 있으나, 차후 GX 실행 회의 등에서 구상안을 재정비해나가겠다 밝힌 만큼 이후의 동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