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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장에 대한 국내 벤처캐피탈(VC) 업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역대급 엔저 현상 속 기대되는 환차익, 정부의 적극적인 스타트업 육성 정책, 태동기인 시장 등이 배경이다. 한편 홍콩과 중국에 대한 투자심리는 과거와 달리 크게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향후 선호 해외 LP 국가’ 4위에 안착
세계적인 벤처투자 혹한기에도 일본 VC 시장의 열기는 뜨겁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지난달 'GVIS(지비스) SEOUL 2023'에 참석한 42개 국내 VC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향후 선호 해외 LP 국가'를 묻는 질문에서 일본이 4위(9개사)에 올랐다. 또한 일본은 'VC가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국가'에 대한 설문에서도 3위(6개사)를 기록하며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미국, 동남아, 중동 등도 여전히 투자 선호도가 높았다. '향후 선호 해외 LP 국가'에 대한 설문에서 미국(20개사)이 1위를 차지했고, 동남아(17개사)와 중동(11개사)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같은 설문에서 홍콩과 중국은 0표를 받았다. ‘제로 코로나’ 봉쇄 정책과 같은 해외 투자자 규제 강화 이후 중화권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내 VC들이 일본 벤처투자 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전반적으로 낮은 기업공개(IPO) 진입장벽 때문인 걸로 보인다. 지난해 일본에서 투자 규모가 가장 컸던 벤처캐피털 글로벌브레인의 이경훈 한국 대표는 “일본은 코스닥과 코넥스 중간 정도의 마더스 시장이 있어 적자 스타트업도 쉽게 상장할 수 있다”며 “마더스 상장사의 기업가치는 시초가 중간값 기준 1,000억원 정도로, 한국 스타트업 기준 시리즈 A, B 정도만 돼도 상장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일본 벤처투자는 8,508억 엔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찍었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벤처투자 비중은 0.16% 수준으로 국내(0.31%)와 비교 시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이고 창업한 지 10년 이하인 유니콘 기업(Unicorn)도 6개로 한국(22개)보다 16개나 적다.
엔화 약세에 투자 회수 시 ‘환차익 기대감’ 높아
엔화 가치 급락도 국내 VC들이 일본 벤처투자 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다. 3일 하나은행에 따르면 이날 365회 고시회차 기준 원·엔 환율은 100엔당 903.92원을 기록 중이다. 지난달 중순 800원 대로 진입하기도 했던 급격한 엔저 현상이 이달에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엔저 현상은 VC 시장을 포함한 일본 투자시장 전반의 매력도를 높인다. 현재 엔화로 일본 스타트업 등에 투자하는 국내 VC들의 경우 향후 투자금 회수 시 환차익까지 노릴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일본계 VC 심사관은 “점점 고물가 시대가 저물고 있는 데다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이 긴축 강도를 낮출 것으로 보인다”며 “이에 따라 나 홀로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펴고 있는 일본은행(BOJ)도 자연스럽게 엔저 압박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이며, 엔화 가치도 반등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고 전망했다.
원화 대비 엔화 가치가 900원 수준으로 떨어진 건 지난 2015년 이후 8년여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세계적인 고물가 위기 속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긴축을 이어가는 흐름에도 BOJ만이 완화정책을 고수한 결과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최근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소비자물가지수(PCI) 등의 물가지표가 하락 폭을 키우고 있는 데다, 결국 최종 금리 수준이 당초 연준의 예상만큼 높게 유지되지 않을 거란 분석이 지지를 얻고 있는 만큼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가 조만간 극복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 정부도 스타트업 육성에 적극적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스타트업 관련 정책 발표도 국내 VC들이 일본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지난해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5개년 스타트업 육성 정책’을 발표하며, 2027년까지 현재 연간 투자액 8,200억 엔의 10배가 넘는 10조 엔(약 90조6,388억원) 규모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 정부가 당시 내놓은 정책들 가운데 해외 투자자들에게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세제 혜택 부문이다. 기시다 내각은 “향후 일본 스타트업에 출자하는 대기업과 보유 주식을 매각하는 스타트업 창업자에게는 세제 혜택을 주겠다”고 밝혔다. 이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기업을 매각해 마련한 자금으로 다시 스타트업을 세우거나,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으로 풀이된다.
해외 투자자들도 이 같은 정책이 글로벌 VC들의 부진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제임스 린니 코랄 캐피탈(Coral Capital) 최고경영자(CEO)는 “일본 정부의 스타트업 정책은 변화 속도가 느렸던 일본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일본 정부가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우선순위로 삼았고, 장기적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따르면서 일본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우리 정부도 국내 기업들의 일본 진출을 돕고 있다. 지난 5월 이영 중기부 장관은 일본 도쿄를 방문해 일본에서 활동 중인 한국 스타트업과 신한퓨처스랩, 글로벌브레인 등 VC와 액셀러레이터(AC) 7개사 등을 만나 국내 스타트업의 일본 진출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아울러 중기부는 민간 역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신한금융그룹과 함께 ‘일본진출 스타트업 공동 육성사업’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