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지난 4월 벤처기업이 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자에게 보유 주식 1주당 최대 10개의 의결권을 보장하는 ‘복수의결권 제도’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복수의결권은 대규모 투자에도 지분율 희석으로 인한 경영권 위협 방어, 적대적 인수합병 우려 없이 경영 활동을 보장받기 위한 스타트업의 숙원이었다.
이에 VC 업계에서는 ‘주주의 사전동의권’ 역시 벤처기업법에 명시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스타트업이 경영권 강화를 위해 복수의결권을 요청한 것처럼, 벤처캐피털(VC)도 스타트업 투자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VC업계 99% "사전동의권 필요", 다만 빈틈도 많아 개선 必
19일 법무법인 미션,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 운용사),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더프론티어 등이 코엑스 2층에 위치한 스타트업 브랜치(Startup Branch)에서 ‘투자 계약상 경영 동의권과 스타트업의 거버넌스' 포럼을 개최했다. 벤처투자 계약상 사전동의권의 활용 범위를 논의하고 개선방안 등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이는 2016년부터 '사전동의권 유·무효화'를 두고 소송전을 벌여온 디스플레이 제조사 뉴옵틱스와 클라우드 기업 틸론 간 소송과 연관된다. 대법원 재판부는 지난 14일 '틸론이 뉴옵틱스에만 사전동의권을 부여하는 것은 주주평등권에 저촉되므로 사전동의권의 효력이 없다'고 내린 2심의 판결을 파기환송 했다. 또 "주주 간 차등적 취급을 정당화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일부 주주에게 우월적인 권리를 부여할 수 있다'며 사전동의권을 조건부 인정한다"고 부연한 바 있다.
포럼 발제자로 나선 김성훈 법무법인 미션 대표변호사는 "비상장 스타트업의 경우 지표나 데이터들이 공개돼 있지 않아 VC에서 사후관리를 효과적으로 하기 어렵다"며 대법원의 판결에 수긍했다. 아울러 대법원이 사전동의권을 예외적으로 인정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전동의권이 무효화되면 투자 자체가 위축될 수 있고, 투자 이후 관리 감독할 수단이 없어지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는 목적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발제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사전동의권이 스타트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례와 이에 대한 개선점이 논의됐다. 토론에서 김 변호사는 “투자자와 피투자자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면 스타트업이 제때 투자를 받지 못해 성장의 적기를 놓칠 수 있다”며 “사전동의권이 투자자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고, 스타트업 경영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좀 더 효율적인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투자 안전장치 없어지면 스타트업 투자 시장 고꾸라질 수도
한편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VC 업계에서는 사전동의권에 비할 만한 투자 안전장치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법원이 2심 판결을 수용할 경우 그동안 스타트업과 맺었던 계약의 '사전동의권'이 전부 무효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종건 법무법인의 이후 대표 변호사는 지난해 개최된 ‘팍스넷뉴스 2022 벤처캐피털 포럼’에서 사전동의권 조항을 대체할 수단으로 ‘주주 의결권 강화’를 제안했다. 투자 진행 시 VC에서 창업자와 체결하는 계약서의 ‘의결권 구속 약정’을 통해 ‘의결권 행사 계약’을 강화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반면 사전동의권이 무효화되면 스타트업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투자자들도 다수 존재한다. 투자한 기업에 대한 사후관리 권한이 없어진다면 VC의 손실을 막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벤처 열풍이 한창이었던 2000년대 초, 스타트업에 투자한 일부 투자자들이 사후관리를 하지 않자 창업자들의 횡령·배임 등의 문제가 빈번하게 일어난 바 있다. 일부 스타트업은 투자받은 지 6개월 만에 기업 매각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신규 투자 유치를 위해 기업 가치를 억지로 하락시켜 기존 투자자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히는 사례도 있었다.
사전동의권 명문화 필요성 증대
일각에서는 사전동의권을 벤처기업법에 명문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복수의결권 통과로 스타트업의 경영권이 강화된 상황에서 사전동의권까지 조건부 인정에 그칠 경우 VC는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투자를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 투자 관련 전문가는 "대부분의 기업 관련 정보가 공개된 상장 벤처에도 상법 제366조에 의한 '주주 총회 소집 요구권(이하 주총 소집권)'이 보장된다"며 "안 그래도 비상장 벤처는 정보가 한정돼 있어 감시가 어려운데, 사전동의권마저 불투명해진다면 VC에게 너무 불공평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간 스타트업 성장의 저해요소로 꼽혔던 사전동의권의 부정적 측면이 명문화를 통해 해소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홍남호 오프라이트 대표는 "사전동의권이 명시된 법이 아니어서 프로토콜이 없다"며 "투자사가 10개라면 사전동의권 처리 방식도 10개가 나오는 것이 현재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렇다 보니 사전동의권을 명문화할 경우 조건과 계약 내용에 기준이 잡히게 된다. 즉 사전동의권을 보장받는 VC도, 투자사마다 다른 동의권에 골머리를 앓았던 스타트업도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게 된다.
스타트업과 투자사 관계의 핵심에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있다는 말이 있다. 양측이 회사의 사업 진행 상황, 비전 등을 충분히 공유한다면 투자자의 사전동의권이 필요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논쟁을 피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최소 억 단위의 투자금이 움직이는 만큼 양측의 안정적인 신뢰도 유지를 위한 '사전동의권 명문화' 등의 시도가 조속히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