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중소벤처기업부가 중소기업에 대한 수입 공급망 구조 관리 체계 마련을 검토 중이다. 최근 미·중 무역 분쟁 등으로 공급망 위기가 재차 수면 위로 떠오르자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부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미·중 무역 분쟁, 보호무역주의’ 등 예측 불가능한 공급망 위기는 여전
1960년대 산업화를 바탕으로 수출 중심의 성장을 이룩해 온 우리나라는 대외교역 의존도가 높은 개방형 경제의 특징을 갖고 있다. 그간 우리 기업들은 수출 중심의 성장을 이루기 위해 국내 생산에 소요되는 원자재 및 중간재의 상당 비중을 해외로부터 수입해 왔다.
문제는 이러한 경제구조가 최근 미·중 무역분쟁 및 보호무역주의 강화,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공급망 위기에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특히 최근 1~2년간 우리 기업과 정부는 해외 원자재와 중간재의 안정적 수급에 어려움을 경험했다. 그 결과 그동안 수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이슈가 되지 않았던 ‘수입 공급망 안정화’가 경제안보 관점의 중요한 정책과제로 부상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경제안보 핵심품목 TF 구축 및 EWS 가동, 경제안보 공급망기획단 설치, 공급망 기본법 발의 등의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최근 중기부도 중소기업 수입 공급망 조기경보시스템(EWS) 구축을 검토하고 있다. 중기부는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등 관련 기관이 제시한 수입 공급망 대응체계 구축 방안을 수렴해 향후 정책과제를 설정할 전망이다.
앞서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지난해 발표한 ‘중소기업 수입 공급망 안정화 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중소기업 수입 공급망 관리를 위해서는 중기부 차원의 공급망 대응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수입 공급망 핵심품목 관리 고도화, △내수전환 및 공급망 다변화 가능성 검증, △유관 부처 간 공급망 관리 및 대응 협력, △EWS 전담 기관 설치 등을 구체적인 정책 과제로 제시했다.
공급망 위기에 더욱 취약한 국내 중소기업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공급 차질에 대한 불안으로 국제 원자재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했던 지난해 3월 국제유가는 130달러(약 16만5,867원) 언저리까지 치솟으며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석탄, 니켈, 천연가스 등의 원자재도 전년 대비 70% 이상 상승했다. 이에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면서 우리 중소기업들의 피해도 컸던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3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국내 중소기업 157개 사를 대상으로 글로벌 공급망 변화 대응에 대한 동향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무려 79.6%가 공급망 변화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기업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부분은 ‘원자재 수급 단계(53.3%)’였으며, 공급망 관련 가장 큰 어려움도 ‘원자재 수급 애로(50.0%)’인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중소기업들이 공급망 리스크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을 가장 걱정하는 배경에는 비용이 증가한 만큼 이익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중기중앙회가 수출 중소기업 대상으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러-우 사태 이후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인한 비용 증가분을 납품 가격에 전액 반영한 기업은 고작 4.2%에 불과했다. 통상 국제 원자재가격이 약 10% 상승할 때 기업의 생산원가는 평균 0.43% 상승하는 반면, 국내 제조 중소기업의 영업이익이 약 0.8% 하락한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나 이차전지 등은 전반적인 산업 수요에 필요한 주요 원자재 수입의 상당 비중을 중국과 중남미에 의존하고 있어 공급망 리스크에 더욱 취약하다”면서 “미중 갈등이 심화될 경우 중간재 공급망 재편에 대한 우리 정부와 기업의 부담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 “공급망 불안, 보다 장기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영주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글로벌 공급망 불안 시대에는 보수적인 계획과 실천이 필요하다”면서 “우리 경제와 일상은 이익을 좇기보다는 생산성을 높이고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여력 확충에 주력해 중장기 생존력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급망 불안에 따른 원가 인상의 압력을 제품 가격에만 전가하는 경영방식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 연구위원은 “농어민·소상공인·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다양한 현행 지원사업들이 정작 위기 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며 “정부가 미리 나서 비축분을 마련하고 위기 상황에 맞게 적절히 분배하는 것도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지난해 10월 중국의 요소수 수출 통제 사태 이후에 보인 우리 정부의 대응도 향후 정책 방향 설정에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산업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요소수 수급난 발생 당시 정부의 초기 정보파악과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을 토대로 공급망 위기징후를 사전에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핵심품목 조기경보시스템 구축에 나선 바 있다.
이경호 산업통상자원부 소재부품장비협력관에 따르면 산업부는 요소수 사태 이후 해외공관, 업종별 협회, 수입기업, 코트라, 무역협회 등 유관기관이 가진 해외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경제안보 핵심품목에 대해 주 단위로 모니터링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또 생산량, 가격과 같은 통계부터 주요 국가의 정책 및 기업 동향, 재난재해와 같은 각국의 특이 동향까지 다수의 정보를 취합해 공급망 위기를 불러올 요인들을 사전 점검하는 체계도 갖췄다.
한편 정부는 최근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크립톤 등 반도체 희귀가스, 중국 의존도가 높은 배터리 소재 등의 품목에 대해서도 모니터링 범위를 넓혔다. 산업부 관계자는 "올해 소부장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해 기존 품목 단위 핀셋형 지원이 아닌 산업 핵심 생태계를 패키지로 지원할 계획"이라며 "다만 현재의 글로벌 위기 상황을 고려할 때 특정 분야를 집중 지원하기보다는 전방위적인 지원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