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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셋값이 떨어져 기존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 해소를 위해 정부가 나섰다. 정부는 27일부터 1년간 전세 보증금 반환 용도에 한해 대출 규제를 완화하겠단 방침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전세금 미반환 우려가 해소됐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내놨지만, 일각에선 정책에 사각지대가 발생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금융위, 역전세난 해결안으로 'DSR 규제 완화' 등 선택
26일 금융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의 역전세 반환 대출 규제 완화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대책은 전셋값 하락으로 인해 전세금 반환이 지연돼 주거이동에 제약이 발생하거나 전세금 미반환 우려로 불안해하는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보다 원활히 돌려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단 취지로 마련됐다. 이를 통해 전세로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 반환이 어려워진 집주인은 대출을 더 받을 수 있게 됐다. 다만 이 돈은 세입자가 전세대출을 받은 은행에 바로 입금되며, 대출을 받으려는 집주인은 후순위 채권자로 밀리게 될 다음 세입자를 위해 보증을 의무 가입해야 한다. 보증을 가입하지 않으면 대출금은 회수된다.
반환목적 대출 규제는 내년 7월 31일까지 1년간 한시적으로 완화된다. 이 기간 동안 개인 다주택자는 전세보증금 차액을 임차인에게 반환할 목적으로 대출을 받을 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가 아닌 총부채상환비율(DTI) 60% 규제를 적용받게 된다. DSR은 연 소득 대비 모든 대출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 비중인 반면, DTI는 연 소득 대비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과 기타 대출 이자의 비중이다. DSR이 DTI보다 더 엄격하게 차주의 상환 능력을 따지는 셈이다. 또 집주인이 임대사업자인 경우 임대업 이자상환비율(RTI)을 현행 1.25∼1.5배에서 1.0배로 하향한다.
후속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경우에도 완화된 대출 규제가 적용된다. 정부는 우선 완화된 대출 규제(DTI 60%, RTI 1.0배) 범위 내에서 반환 자금을 지원하되 1년 이내에 후속 세입자를 구해 해당 전세금으로 대출금액을 상환하도록 할 예정이다. 집주인이 기존 세입자 퇴거 후 본인이 직접 거주자로 입주하는 경우에도 자력 반환 능력(현재 거주 주택의 전세 보증금 등)을 확인하는 것을 전제로 반환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다. 이 경우 집주인은 대출 실행 뒤 한 달 내 입주해야 하며, 최소 2년 이상 실거주 여부 모니터링이 병행된다.
전문가들 "전세금 미반환 우려 해소됐지만, 사각지대 너무 커"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을 통해 전세금 미반환 우려가 해소됐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파트 입주과잉 지역이나 전세 계약 갱신권이 집중된 지역의 역전세 리스크를 다소나마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 안정화에 도움이 될 수 있으리란 전망이다. "특히 후속세입자가 있는 경우, 당장 후속세입자 없는 경우, 자가거주하는 경우 등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줬다.
다만 일각에선 제도의 사각지대가 너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역전세 반환대출을 받기 위해선 후속 세입자에게 보증3사의 특례 전세금 반환보증 보험 가입을 의무적으로 해줘야 하는데, 임차보증금과 순위채권(선순위근저당권 및 선순위임차보증금)이 주택가격의 90%를 넘는 임대인은 해당 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임대인이 상당액의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있는 경우 충분한 대출 한도가 지원되지 않을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을 통해 금융 시장에 유동성이 공급되는 만큼 시장에 어느 정도의 충격이 갈 것"이라며 "유동성 공급을 통해 하반기에 금리를 다시 올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제 해외 부동산시장 버블 사례를 보면 금리와 유동성이 버블 발생 및 붕괴의 주요 원인이었다는 분석 결과가 이미 나와 있다.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한 만큼 추후 다시금 유동성을 회수해야 할 때가 오는데, 이 과정에서 언밸런스가 발생하면 오히려 시장 상황이 악화되는 결과가 도출될 우려가 있다.
시장 안정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당장 시장 안정화라는 측면에서 정부의 선택이 마냥 나쁜 건 아니다. 실제 대책 마련과 비슷한 시기를 기점으로 전국 아파트 매매 가격이 1년 6개월 만에 상승 전환됐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셋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0.07% 올랐다. 지난주(0.04%) 대비 오름폭을 확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규제 완화로 차후 부작용을 피할 수 없게 됐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다. DSR 규제에 예외를 적용해 주기 시작하면 결국 DSR 규제는 무력화되고 가계부채 증가를 막을 수 없게 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국은행 최신 연구에 따르면 가계대출과 외상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한 대금을 합친 가계신용이 GDP의 80%를 초과하면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고 경기침체가 발생할 확률이 증가한다.
규제 완화가 집주인의 '갭투자' 등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사실상 이번 대책은 금융당국이 나서서 임차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갭투자의 길을 열어준 셈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또 일각에선 DSR 규제 완화로 인해 새 임차인에 임대인의 유동성 위험이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만약 임대인이 유동성 위기에 처해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게 되면 임대인의 집이 경매 처분된 후 선순위 채권의 원리금을 상환한 뒤에야 새 임차인은 임대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는데, 이는 결국 무리하게 갭투자를 단행한 임대인의 유동성 위험이 새 임차인에 전가되는 모양새가 될 것이란 주장이다.
역전세난에 정부는 칼을 갈고 있다. 국민 보호를 위해 앞으로도 온 힘을 다하겠단 정부의 의지가 느껴진다. 다만 문제 해결에 있어 정부가 '지름길'을 선택했다는 비판은 피해 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는 임차인이 전세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도록 신속한 법적 절차 및 법률 서비스를 마련하는 선택지도 분명 있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DSR 규제 완화 등 다소 위험한, 그러면서도 빠른 길을 택했다. 정부의 선택이 미스로 끝날지 탁월한 선택으로 마무리될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일각에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는 점을 파악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