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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조작을 비롯한 자본시장 내 불공정거래에 대한 제재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지난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부당이득의 최대 2배를 환수하는 과징금 제재가 핵심 조항으로 강조되며 주가조작 일당에 의한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사태를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이번 개정안은 ▲과징금 신설 ▲부당이득 산정방식 법제화 ▲자진신고자 제재 감면 등 3가지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주가 조작의 적발과 예방, 그에 따른 행정제재 및 형사 처벌 등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제도 전반을 대폭 뜯어고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최대 2배" 부당이득 환수에 포커스
먼저 불공정거래로 얻은 부당이득의 최대 2배를 환수하는 과징금 부과 조항 신설이다. 이번 개정안은 부당이득을 산정하기 곤란하거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최대 4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제시했다. 지금까지 불공정거래는 형사처벌에 대한 규정만 존재해 처벌까지 평균 2~3년의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물론, 불공정거래의 주요 발생 원인인 경제적 이익에 대한 강력한 제재 수단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금융위원회는 과징금 도입으로 신속하고 실효성 있는 제재를 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부당이득 산정 기준도 구체화했다. 각종 위반행위로 얻은 이익 또는 회피한 손실액을 의미하는 부당이득은 벌금이나 징역 가중 등의 기준으로 활용됐지만, 현행 자본시장법에는 그 산정 방식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전무하다. 이로 인해 불공정거래가 발생할 경우 수사기관의 사건 입증 및 금액 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재판 과정에서 금액 산정을 두고 다툼이 발생하는 사례도 많았다. 결과적으로 범죄의 경중에 합당한 처벌이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했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부당이득 상정 기준을 ‘위반행위로 획득한 총수입에서 총비용을 뺀 차액’으로 규정했다. 금융위원회는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는 만큼 범죄에 상응하는 합당한 처벌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불공정거래 행위자가 자신의 위반행위를 자진신고하거나 타인의 죄에 대해 진술 또는 증언하는 경우에는 형벌이나 과징금을 감면할 수 있도록 했다. 자본시장 내 불공정거래는 다수의 범죄혐의자가 관련돼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내부자의 진술과 증거 확보가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금융위원회는 이번 개정안을 발표하며 “불공정거래는 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선량한 투자자와 청년들의 미래를 빼앗을 수 있는 중대한 위반행위임에도 그동안 엄벌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물론 도리어 수법이 고도화되고 있었다”고 지적하며 “개정안을 통해 주가조작 범죄자는 그에 상응하는 엄벌을 내리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울러 “구체적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통과된 만큼 국민들이 믿고 투자할 수 있는 자본시장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내부 고발 제재 감면? 안 될 일" vs "위반자 엄벌 규정 마련 시급"
정부의 법률 공포 절차를 거쳐 6개월 후 시행될 예정인 이번 개정안은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국회 본회의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여당이 일부 방안에 이의를 제기하면서다. 당초 개정안은 지난 4월 불거진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 등으로 입법에 가속도가 붙고 있었지만, 여당이 개정안의 주요 내용 중 내부자 고발 제재 감면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서면서 제동이 걸렸다. 해당 조항이 전례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0일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해당 조항은 소위 '플리바게닝'과 같은 규정인데, 제가 아는 법 상식 내에서는 이런 규정을 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며 규정 도입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플리바게닝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거나 타인에 대한 증언의 대가로 검찰 측이 형을 낮추거나 가벼운 죄목으로 다루기로 ‘거래’하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범죄에 대한 상이한 형벌이 가해질 우려를 비롯해 피고인의 권익보다 검찰의 수사 편의를 우선시한다는 의견, 피해자의 입장이 고려되지 않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더불어 '부당이득 입증책임'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됐다. 개정안은 ‘총수입-총비용’이라는 부당이득 산정 방식을 제시하며 제3자 개입 등 별도 사정이 있을 경우 소명 책임을 주가조작 등 법 위반자 부담하도록 명시했다. 이는 검사의 증명 책임을 덜어내 부당이득을 효과적으로 환수하기 위해 마련된 조항이지만, 여당은 “입증 책임 전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은 혐의 입증 책임이 검사에게 있다는 이유에서다. 법원행정처 역시 "피고인에게 입증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으며, 무죄추정 원칙에 반할 수 있다"며 "부당이득은 수사기관도 특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피고인에게 이를 소명하라고 하는 것은 부당한 측면이 있다"고 거들었다.
이처럼 개정안 통과가 난항을 겪자, 이번엔 금융노동자들이 주가 조작 엄벌에 대한 구체적 처벌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기원 사무금융노조 증권업종본부장은 “주가 조작 등 불공정거래는 불특정 다수의 시장 참여자에게 피해가 전가되고 주식시장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범죄”라고 강조하며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주가 조작에 대한 처벌 수준이 낮다"며 "이는 우리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을 떨어뜨리는 원인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사무금융노조는 성명을 통해 “불공정거래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철저한 범죄수익금 환수로 선량한 투자자를 지켜야 한다”며 무관용 원칙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또한 개정안이 제시한 조항 외에도 ▲피해액 기준 처벌기준 강화 ▲한국형 투자자보호기금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범죄 발생 후 강력 처벌보다 중요한 '사전 조치'
결국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찬성한 측과 반대한 측이 한목소리로 외친 것은 '불공정행위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무관용 원칙'이다. 실제로 국회에 발의된 다수의 개정안 중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의 안은 ‘불공정행위 적발 시 최대 10년 신규 투자 및 계좌 개설 금지’를 골자로 하며 보다 강력한 처벌을 촉구했고,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안은 상장사 주요 주주인 기업 사주 등이 발행주식을 1% 이상 매도할 때 매도 90일 전까지 매매계획서 제출 등 강력한 처벌과 선제 조치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
두 법안 모두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법적 근거는 마련되지는 않았지만, 증권사들은 자체적으로 CFD 서비스 신규 가입을 일시 중단하는 등 최근의 주가 폭락 사태에 대한 대책 마련에 돌입하며 강력한 법적 제재의 필요성을 뒷받침했다. CFD는 증권사에 증거금을 위탁하면 현물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도 기초자산의 진입가격과 청산 가격의 차액을 현금으로 결제하는 장외 파생상품을 의미한다. 많게는 2.5배까지 레버리지(차입) 투자를 할 수 있어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 이른바 '빚투' 수단으로 활용되며 최근 주가 폭락에서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했다.
시장을 뒤흔드는 범죄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에 근거를 제시하는 법안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주가조작 일당이 법망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셈이 된다. 내년 1월로 예정된 개정안 시행까지 남은 단 6개월 이내에 마련해야 할 ▲과징금 부과기준 및 절차 ▲위반행위 유형별 부당이득의 구체적 산정방식 ▲자진신고 시 과징금 감면 기준‧절차 등 하위 규정이 그동안 숱하게 되풀이됐던 ‘사후약방문’에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