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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의 美 신용등급 강등에 고개 저은 월가, “12년 전만큼 영향력 크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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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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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한 것을 두고 월가 내 비판적인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재정 상황이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나 견고한 고용시장 등 전반적으로 경제 여건이 양호한 상황임을 고려할 때 강등 시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고 있다.

‘JP모건·골드만삭스등 월가, 미 신용등급 강등한 피치 비난 이어져

피치는 1일(현지 시간)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췄다.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2011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피치는 미국의 재정적자 악화, 부채부담 증가 등을 강등 이유로 들었다.

피치의 강등 소식이 전해진 뒤 첫 거래일인 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증시는 연초부터 이어진 랠리를 멈췄다. 특히 S&P500 지수는 3개월여 만에 일일 최대 낙폭(-1.38%)을 기록했지만 2011년 하락 폭(-7%)에 비해 훨씬 양호했다. 덕분에 이번 강등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월가에서도 피치의 결정에 동의하기보단 비판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당장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됐다 하더라도 미국 국채를 대체할 안전자산이 없다는 주장과 피치가 강등 사유로 꼽은 미국의 재정악화 등은 이미 투자자들이 인식하고 있던 문제라는 주장이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는 2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피치의 결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이미 모두가 아는 몇 가지 문제를 지적했을 뿐”이라며 “미국은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번영하는 국가이며 가장 안전한 국가다.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하고 있는 캐나다 등의 국가신용등급이 미국보다 높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골드만삭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앨릭 필립스도 “미국의 재정적자가 GDP의 약 6%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은 기존의 우리 전망과 유사하다”면서 “피치가 미국 정부의 재정 상황에 대한 새로운 정보에 근거해 신용등급을 내린 게 아닌 만큼 시장 여파가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피치, 지난 5월 이미 미국 신용등급 '부정적 관찰대상'으로 지정

피치는 지난 5월 부채한도 협상을 두고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 대립이 심화되자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실제 지난 5월 미국의 'AAA' 신용등급을 '부정적 관찰대상'으로 지정했다.

피치는 입장문을 통해 “X-데이트가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도 부채한도 상향·유에 등 문제 해결에 이르는 것을 막는 정치적 당파성에 따라 미국을 부정적 관찰대상에 편입했다”면서 미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을 비롯해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월가는 이러한 피치의 경고를 두고 미국 정치권의 빠른 합의를 촉구하는 압박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놨다. 일각에선 주요 신용평가사의 경고가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더욱 확대함에 따라 투자자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피치는 이번 신용등급 강등 사유를 밝힌 발표문에서도 유사한 입장을 내비치며 강등까지 진행했다. 피치는 1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미국 신용등급을 내린 주요 배경에는 1994년 이후 처음으로 재정 지출의 불확실성 지속된 점이 영향을 끼쳤다”면서 “특히 부채한도를 둔 정치적 대립이 반복된 점, 협상 막바지에 가서야 결정이 났던 점 등이 국가 전반의 재정 관리 신뢰를 훼손했다”고 전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려스러운 재정 상황에 대해선 다수가 공감하는 분위기

현재 월가에선 피치의 결정에 비난이 따르고 있지만, 피치가 지적한 미국 재정 상황에 대해선 공감하는 분위기다. 3일 CNBC에 따르면 미국 최대 리테일 브로커리지사인 찰스 슈왑은 “이미 부채한도 문제가 해결됐고, 미국 경제 전반이 양호한 성장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이번 피치의 발표 타이밍은 이해할 수 없지만, (피치가 지적한) 재정 적자 증가와 과도한 부채비율 등은 장기적으로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전했다.

미국 투자회사 브랜디와인글로벌의 트레이시 첸 포트폴리오매니저도 “신용등급 강등 시기가 이상하긴 하지만 미국의 재정 상황은 우려스러운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2011년 당시와 지금은 경제 상황이 매우 다르다. 당시 실업률이 9%를 웃돌았으나, 최근에는 실업률이 3.0%까지 낮아지는 등 노동시장이 견조하다. 경제성장률 역시 시장 예상을 웃돈 2% 중반대를 기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피치의 경고를 무시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WSJ은 2일 발표한 칼럼을 통해 “2011년 미국 재정 과잉이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적었으나 (피치의) 이번 신용등급 강등은 다를 수 있다”면서 “최근 급격한 금리 상승은 미국 정부가 정치적인 충돌 없이 재정 지원을 삭감하거나 무제한적인 화폐 발행 등의 재정 경로를 변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더 제한되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는 가파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07년 미 의회 예산국(CBO)은 10년 후 미국 연방정부의 총부채를 GDP의 약 22%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5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11년 해당 전망을 약 76%로 상향했다. 2008과 2009년 금융 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재정 부담이 크게 늘었으며, 나아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긴급 유동성 확대 대응이 있은 뒤에는 부채 부담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지난해 말 기준 연방정부의 총부채는 GDP 대비 120%에 달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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