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규제 혁신을 통해 국내 미디어·콘텐츠 산업 경쟁력을 키우겠다고 나섰다. 이 위원장은 1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3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시상식’에서 “어떠한 난관이 있더라도 대한민국은 글로벌 미디어 강국으로 나아갈 것”이라며 의지를 표명했다.
규제혁신을 통한 민간 창의성 지원
이날 이 위원장은 글로벌 미디어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민간의 창의적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주로 전통적인 미디어 매체에 맞춰진 낡은 규제를 정비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전통적 미디어에 맞춰져 있던 규제 체계를 신·구 미디어가 모두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규제체계로 전환하겠다”며 “방송사업에 대한 경직된 재허가·재승인 제도를 전면 개선해 방송사가 콘텐츠 경쟁력과 서비스 혁신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방송 콘텐츠 산업이 현재 글로벌 OTT 사업자의 단순 공급자 역할에서 벗어나 국내 방송 콘텐츠 산업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관계부처와 협력해 미디어 분야의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디어 콘텐츠의 글로벌 유통, 국내 OTT 플랫폼의 해외 진출 지원, 민관합동 콘텐츠 펀드 확대, 제작 인프라 구축, 전문 인력 양성 등이 주요 내용이다.
한 미디어 전문가는 국내 OTT가 글로벌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이동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기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는 한국 미디어 환경이 직면한 과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특히 OTT 콘텐츠 영역에서 수많은 규제가 존재한다”며 “한국 미디어 콘텐츠는 한정된 재원으로 인해 글로벌 경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어 “국내 미디어 사업자들은 넷플릭스, 디즈니+와 같은 글로벌 OTT와 경쟁하고 있지만 지원책은커녕 규제 부담으로 인해 제약을 받고 있다”며 “특히 넷플릭스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방송통신위원회의 감독을 받지 않고 국내 미디어 산업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디어 업계 달래기 나선 정부
이 위원장이 이번에 미디어 혁신에 나선 건 그간 업계의 불만에 화답한 것이다. 미디어 업계에서는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한국 시장에 진출하는 외국계 미디어 기업에 대해 지속적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높여 왔다.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해외 미디어 기업이 국내 시장에 앞다퉈 진입하면서 극심한 경쟁 국면으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기업에만 적용되는 낡고 불평등한 규제 체계는 경쟁력 유지에 치명적인 취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업계에서 새로운 규제 체계의 정립이 시급하다고 토로하는 이유다.
콘텐츠 생산, 유통, 소비의 중심이 '전통적 방송 영역'에서 인터넷을 포함한 '디지털 영역'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근본적인 환경이 바뀌는 가운데 주파수 소유 여부나 미디어 특성에 관계없이 모든 방송 서비스에 일률적으로 공적 책임을 부과하는 기존 규제 체계는 더 이상 실효성과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중론이다. 또한 방송 콘텐츠와 온라인 콘텐츠의 차별적 취급에 대한 우려도 유료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동일한 콘텐츠가 인터넷에서 동시에 제공되는데도 방송만 재허가 등의 규제를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을 내놨다. 넷플릭스, 유튜브 등 해외 거대 미디어가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미디어 기업들만 각종 규제에 직면해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영향력
이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콘텐츠 제작 역량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오징어 게임>의 국제적 성공으로 대표되는 것처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오징어 게임>은 5조6,000억원이라는 놀라운 경제 효과를 창출하며 한국 문화의 글로벌 확산에 기여했다. 또한 영화 <기생충>은 전 세계적으로 170조원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2021년 삼성전자의 반도체 수출액 120조원과 맞먹는 규모다. 방송과 미디어의 문화적 영향력뿐 아니라 실질적인 경제적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러 성공 사례에서 보이듯 현재 방송산업이 처한 위기는 콘텐츠 품질 저하가 아니라 재원 부족과 플랫폼 경쟁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K- 콘텐츠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제작비에 대한 안정적인 투자가 이뤄질 수 있는 정책과 제도적 여건 마련이 급선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연구개발(R&D) 세액공제의 혜택은 주로 제조업과 기술 분야를 대상으로 한다. 반면 영상 콘텐츠에 대한 세액공제율은 주요 선진국 대비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막강한 콘텐츠 경쟁력과 글로벌 외주 제작 기지라는 위상과는 상반된, 콘텐츠 제작 자본 부족이라는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셈이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규제 혁신을 통해 한국 미디어-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글로벌 미디어 강국으로서 한국의 위상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OTT 콘텐츠 및 방송과 관련된 규제 환경의 도전과 불평등은 즉각적인 관심과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콘텐츠 제작과 글로벌 영향력에서 한국 미디어 부문의 성장과 혁신을 지속하기 위한 시급한 개선이 필요한 시점에 이 위원장의 결단은 업계의 환영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