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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재세 등 '은행 때리기' 열중하는 정치권, "지원 강화 필요할 듯" '은행 종노릇' 발언으로 시작된 초과이익 환수 논의, 하지만? 은행권 부담 '여전', "상생금융으로 잠시 발 뺀 정도에 그쳐"
대표적인 배당주로 주주 친화 정책을 펼쳐 연말이면 강세를 보이던 은행주가 최근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여전한 호실적 아래 '횡재세' 등 이익 환수에 대한 폭탄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은행권은 최근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대출 금리를 낮춰주는 상생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사실상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압박에 못 이겨 절충안을 내놓은 셈이다. 정치권도 은행의 상생 방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횡재세 입법 논의를 잠시 접어 두면서 대대적으로 이뤄진 '은행 때리기'도 점차 열기가 가라앉는 모양새다.
금감원 "은행권 이익 지속돼, 상생 방안 마련해달라"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 8개 은행계 금융지주 회장은 20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간담회를 열고 은행의 상생 방안 등을 논의했다. 김 위원장은 "단기간 급격히 늘어난 이자 부담 등으로 동네·골목상권 붕괴가 우려되는 가운데 은행권의 역대급 이익이 지속되는 상황”이라며 “금융권의 이자 수익 증대는 국민 부담 증대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최대한의 범위에서 금리 부담을 직접적으로 줄이는 방안을 강구해달라”며 "금융지주들이 국회에서 논의되는 횡재세 법안을 통해 국민이 얼마를 기대하는지 알 것으로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국내 은행의 이자 이익은 총 44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40조6,000억원) 대비 8.9%나 늘었다. 이 원장은 “금융권이 양호한 건전성과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업계 스스로 국민 기대 수준에 부합하는 지원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금융지주 회장들과 은행연합회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이자 부담 경감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향후 발생할 이자 부담의 일부를 줄이는 방식도 적극 검토하겠단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권에서 취합한 뒤 최종 숫자가 나오겠지만 2조원은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당국은 상생 방안으로 내놓는 액수가 더불어민주당이 횡재세로 제시한 1조9,000억원보다 많아야 국민 정서에 부합할 것이란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엇박자 정책'에 정치권 비판론↑
은행권 이익 환수 논란은 지난달 30일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 종노릇' 발언을 계기로 시작했다. 윤 대통령의 문제 제기 이후 은행 이자 장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은행권 압박 수위가 높아졌다. 일각에선 더불어민주당이 은행 이자 수익에 횡재세를 물리는 법안까지 제출하자 속된 말로 '똥줄' 탄 은행권이 부랴부랴 상생 방안 마련에 나선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실제 은행권은 이익 환수를 상시화하는 횡재세보다는 액수가 다소 많더라도 일회성 재원 출연이 낫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은행권은 지난 2월에도 윤 대통령의 '돈 잔치' 지적이 나오자 3년간 10조원 규모의 상생금융 강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여론을 잠재운 바 있는 만큼, 이번에도 2조원 규모의 상생 방안 마련으로 여론의 불씨를 꺼트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과 금융당국도 횡재세 논의는 잠시 접어두고 은행권의 상생 방안 마련에 힘을 보태겠단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은행권의 '이자 파티'를 이슈화하는 과정에서 "국가 재정 문제의 원인과 해결을 은행권에 전가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론에 직면하는 등 정치권도 여론의 시험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상생금융을 둘러싼 '정책 엇박자' 논란도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들이 당장 대출금리를 인하하면 그 혜택을 받는 소비자들은 그만큼 더 많은 빚을 낼 수 있게 된다. 가계부채를 조이려 하는 금융당국의 최근 기조와는 다소 상충하는 셈이다. 경기 둔화 국면이 이어지는 와중에 상생금융 부담까지 지나치게 커지면 은행들의 건전성이 나빠질 여지도 있다. 자칫 대규모 상생금융이 이뤄질 경우 금융소비자 간 형평성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전보단 신중한 분위기가 더욱 팽배해졌다.
시험대 오른 횡재세, 상생금융으로 '일단락'
전문가들 사이에서 횡재세 도입에 다소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것도 정치권을 압박했다. 전문가들은 "횡재세를 도입할 경우 당초 목표와 달리 서민 금융소비자에게 피해가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은행이 신규 출연 부담을 대출자에게 전가하게 되면 대출자는 대출금리 상승으로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한 금융 업계 관계자는 “은행권의 대출 가산금리 구성요소 중 하나인 ‘법적 비용’에 보증기관에 대한 출연금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은행권에 출연금 의무가 강제된다면 대출 가산금리를 높여 종국적으로는 대출금리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와는 상황 자체가 다른 유럽의 정책을 끌고 와 우리나라에 적용하려 하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란 비판도 적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국내은행은 한국은행의 통화 긴축에 따라 예금 금리를 비교적 민감하게 끌어올린 탓에 예금 베타가 높았다"며 "즉 국내 은행권은 예대 마진으로 거두는 초과 수익이 미비한 상황이라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유럽의 초과이득세를 그대로 국내에 도입해도 거둬들일 수 있는 세수의 절대 규모는 작을 수밖에 없다"며 "외부 요인에 따른 과도한 이익의 범위 설정 등 철저한 분석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횡재세 도입은 아무런 의미 없는 행보"라고 덧붙였다. 정치권이 횡재세 도입을 묻어두기 시작한 게 단순히 은행권의 상생 방안 마련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상생금융으로 사태가 일단락된다 해서 은행권에 부담이 없는 건 아니다. 횡재세 도입이라는 급한 불을 끄더라도 수익성이 나빠지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은행권이 가져가야 할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은행권의 당기순이익은 5조4,000억원으로 전 분기(7조원) 대비 23.9% 감소했다. 조달비용 증가로 은행의 핵심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도 1.63%로 2분기(1.67%)보다 하락했다. 연체율 상승으로 대손충당금 부담 또한 늘어나고 있어 4분기 순익은 3분기보다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장에선 은행주를 향한 우려가 확산하는 추세다. 지금 당장은 상생금융 방안에 따라 횡재세 논란에선 잠시 발을 뺀 상태이니만큼 주가 하락에 현실화되진 않았지만, 향후 정책 변수가 다시금 은행권을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에 투자심리가 또 한 번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초과이익'을 앞두고 다시 한번 정세가 출렁일지 이목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