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AI 활용 경험 공유로 키우는 유럽 단일시장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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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도입 확대에도 생산성 효과는 제한적 검증된 활용 사례 공유로 기업 투자 효율 제고 성과 중심 지원체계로 생산성 혁신 뒷받침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말 유로지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인공지능(AI)을 업무 전반에 폭넓게 활용한다고 답한 기업은 7%에 그쳤다. 반면 60% 이상은 AI를 도입했지만, 활용 범위는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되면 유럽이 AI 보급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기대했던 생산성 향상을 거두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정책의 초점은 ‘성과 중심 AI 도입(Merit-based AI adoption)’으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 경쟁사의 움직임을 따라 기술을 구매하기보다 실제 업무 개선 효과가 확인된 AI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서는 회원국별로 축적된 활용 경험과 검증 결과를 기업이 함께 공유하고 참고할 수 있는 체계가 요구된다.
성과 중심 AI 도입의 조건
표면적인 지표만 보면 유럽의 AI 확산 속도는 빠르다. 하나 이상의 AI 기술을 도입한 유럽연합(EU) 기업 비중은 2023년 8.1%에서 2024년 13.5%, 지난해 20%로 2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 국가별로는 덴마크가 42%로 가장 높았고 핀란드 37.8%, 스웨덴 35%가 뒤를 이었다. 그러나 보급률만으로 기업의 업무 혁신과 생산성 향상 수준을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주 1회 단순 챗봇을 사용하는 기업과 가격 결정, 생산, 유지보수, 물류, 제품 설계 등 핵심 업무 전반에 AI를 적용한 기업이 모두 같은 ‘AI 도입 기업’으로 집계되기 때문이다.
성과 중심 AI 도입은 이러한 통계의 한계를 보완하는 접근이다. AI가 실제 업무 과정을 개선했는지, 시범사업 이후에도 효과가 이어졌는지, 기존 방식과 비교해 성과가 높아졌는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데 초점을 둔다. 글로벌 비교에서도 활용 수준의 격차가 확인된다. 유럽투자은행(EIB)에 따르면 지난해 EU 기업의 생성형 AI 활용률은 37%로 미국의 36%와 비슷했다. 그러나 AI 도입 기업 가운데 두 개 이상의 업무 영역에 AI를 적용한 비중은 미국이 81%에 달한 반면 유럽은 55%에 머물렀다. 유럽이 AI 접근성 격차는 상당 부분 줄였지만, 기업 운영 전반으로 활용 범위를 넓히는 데는 여전히 한계를 보인 셈이다.
이러한 격차는 자금 지원만으로 AI 활용을 확산하기 어렵다는 점도 드러낸다. 자본은 소프트웨어 도입과 데이터 구축, 인력 확보에는 도움이 되지만 어느 업무를 어떻게 바꿔야 가장 큰 성과를 낼 수 있는지는 알려주지 못한다. 지원 규모가 커지면 실험 기회는 늘어날 수 있으나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투자도 함께 늘어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자금 투입에 앞서 검증된 활용 사례와 성과를 축적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AI 활용 성과 공유 필요
기업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때 경쟁사의 움직임을 주요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EU 12개국 3,316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경영진은 자국 경쟁사의 AI 투자 수준을 실제보다 낮게 인식했으며, 실제 투자 현황을 확인한 뒤 자사의 AI 투자 계획을 평균 1.8%포인트 높였다. 국내 경쟁사의 AI 투자 비중에 대한 인식이 1%포인트 상승할 때 자사의 투자 예상치도 0.57%포인트 증가했다.
그러나 경쟁사의 AI 도입이 곧 성공 사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같은 기술이라도 업무 방식과 데이터 환경, 인력 역량에 따라 성과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이에 따라 경쟁사가 AI를 도입했다는 사실보다 어느 업무에 적용해 어떤 결과를 냈는지가 기업의 의사결정 기준이 돼야 한다. 실제 조사 결과도 이러한 접근을 뒷받침한다. 지난해 말 유로지역 조사에서 기업 규모와 산업, 지역 특성을 반영한 이후에도 AI를 업무 전반에 폭넓게 활용하는 기업일수록 매출과 고정투자 증가를 기대하는 비중이 높았다. AI를 시험적으로 도입한 기업과 핵심 업무에 정착시킨 기업 사이에 성과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반면 기업이 AI 도입에 신중한 배경도 분명했다. 같은 조사에서 AI 미도입 기업의 30%는 ‘AI가 필요하지 않다’라고 답했고 20%는 전문 인력 부족과 기존 시스템과의 호환성 문제를 이유로 꼽았다. 이처럼 데이터 기반과 전문 인력이 부족한 기업에는 홍보를 늘리거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만으로 실질적인 활용을 끌어내기 어렵다. 대신 기업이 자사 여건에 맞는 기술과 활용 방식을 판단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성과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

AI 활용 경험을 자산으로
유럽의 단일시장은 자본과 상품,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이제 AI 시대에는 검증된 활용 경험도 회원국 사이에서 자유롭게 공유돼야 한다. 지난해 EIB 조사에서 기업의 62%가 시장 분절성을 주요 경영 부담으로 꼽은 만큼 AI 활용 정보의 국가 간 격차도 해소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AI 공급업체의 성공 사례와 정부의 지원 실적은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어떤 기업이 어느 업무에 AI를 적용해 얼마만큼 성과를 거뒀는지를 객관적으로 비교할 자료는 부족하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실제 활용 경험과 결과를 바탕으로 투자 효과를 가늠할 수 있는 정보다.
이를 위해 공공 지원을 받은 AI 사업의 성과를 표준화해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산업 분야와 적용 업무, 활용한 AI 유형, 시스템 구축 비용, 생산성 변화뿐 아니라 기대에 미치지 못한 사례도 함께 축적하는 방식이다. 성공과 실패 사례가 모두 공개되면 기업은 유사한 투자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용과 위험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 또한 회원국별 경험이 쌓일수록 AI 활용 노하우도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퍼질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정보 공유만으로 AI 활용을 확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연구에 따르면 생성형 AI는 고객 상담처럼 업무 특성과 기술의 기능이 맞는 분야에서는 생산성을 높였지만 활용 범위를 벗어난 업무에서는 오히려 성과가 떨어졌다. 영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AI 도입이 자체 연구개발(R&D), 인력 투자, 외부 협력과 결합될 때 혁신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났다. 따라서 성과 공유 체계와 함께 인력 양성, 산업별 실증, 기업 맞춤형 지원도 병행해야 한다.
성과 중심 AI 지원체계 구축
공공 지원 정책도 AI 활용 성과를 기준으로 운영해야 한다. 보조금과 세제 지원, 디지털 바우처는 사업 진행 단계에 맞춰 나눠 지급하는 방식이 적절하다. 초기 단계에서는 기업의 현황 진단과 시범사업을 지원하고 이후에는 처리 속도 개선, 오류율 축소 등 사전에 정한 목표를 달성한 기업에 추가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성과가 확인된 기업이 AI 활용 범위를 확대하도록 지원을 집중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이 과정에서 시범사업의 실패를 불이익으로 연결해서는 곤란하다. 실패 사례도 다른 기업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실패 자체가 아니라 성과를 측정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 데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평가 절차가 AI 확산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성과를 확인하지 않은 채 도입 건수만 늘리는 편이 더 큰 위험을 낳을 수 있다. 기업이 기존에 관리해 온 불량률과 처리 시간, 매출 등 핵심 지표를 활용해 AI 도입 전후를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기본적인 성과 검증은 가능하다.
유럽 단일시장의 경쟁력은 수많은 기업이 같은 AI를 도입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한 회원국에서 검증된 활용 경험이 다른 회원국 기업의 투자와 혁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구축해야 한다. AI 보급률을 끌어올리는 단계는 이미 시작됐다. 이제 유럽의 AI 정책은 도입 건수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의 활용 성과를 축적하고 확산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Europe’s AI Boom Needs Merit-Based AI Adoption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