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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주도권 두고 '머니 게임', 글로벌 빅테크는 수조원 붓는데 한국은 수능에 미적분학 등 제외, "AI 인력 수준 낮아질 수밖에" 질적 경쟁 이어가는 글로벌 빅테크, 한국은 여전히 '관'이 중심
AI 서비스 주도권을 쟁취하기 위한 머니 게임이 시작됐다. 오픈AI와 구글, 메타, 아마존 등은 AI 분야에만 한 해 수십조원을 투자하는 등 역량 강화를 위한 자금 투입에 거리낌이 없는 모습이다. 한국의 경우 그나마 AI 서비스에서 네이버가 가장 앞서고 있단 평가를 받지만, 네이버마저도 글로벌 경쟁을 이야기할 수준이 되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평균적인 시선이다.
네이버, 매출 20% AI 연구개발에 쏟고 있지만
26일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2023년 연구개발비로 매출의 20%에 해당하는 1조9,9962억원을 집행했다. 이중 상당 부분이 AI, 특히 생성형 AI 구현을 위한 거대언어모델(LLM) 개발에 투입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기준으로는 결코 적지 않은 액수이지만, 지난해부터 오픈AI 등 글로벌 빅테크들의 AI X투자에 비해선 초라한 정도다.
실제 오픈AI는 2023년 1월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100억 달러(13조원)을 투자받은 뒤 AI 투자 규모를 확대하고 있고, 2023년 3월 출시된 오픈AI의 최신 인공지능 GPT4는 그 훈련에만 4,200억원(비즈니스인사이더 추산)이 소요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올해 여름께 출시 예정인 GPT5는 GPT4보다 최소 125배 성능(매개변수 기준)이 개선될 것으로 보이는데, GPT5 개발에 투자한 금액만 최소 25억 달러(약 3조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픈AI는 향후에도 사람처럼 생각하는 '인공일반지능(AGI)' 구현을 위해 향후 수십조원을 추가 집행할 계획이며, 최근엔 AI 반도체 분야에 최대 7조 달러(약 9,300조원)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구글, 메타, 아마존 등 다른 빅테크들 역시 한 해 수조원에 달하는 투자액을 집행할 계획이다. 영국 컨설팅 기업 ‘써드 브릿지'에 따르면 지금까지 구글의 최근 10년 동안 AI 누적 투자액은 최대 2,000억 달러(약 26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구글은 2023년 11월 인공지능 스타트업 앤스로픽에 20억 달러(약 2조7,0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밝힌 바 있다. 메타 역시 지난 2022년부터 메타버스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AI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메타는 2023년에만 23억 달러(약 3조원)를 AI 연구에 투자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존 역시 지난해 9월 미국 인공지능 스타트업 앤스로픽에 40억 달러(약 5조4,000억원)를 투자하면서 AI 투자 경쟁에 불을 지폈다.
네이버는 지난해까지 5년간 약 1조원을 투자해 생성형 AI '하이퍼클로바X'를 출시했다. 하이퍼클로바X는 한국어에 특화된 AI로, 법률과 교육 등 한국 특화 지식에 밝지만 종합적 성능 평가에서는 같은 해 출시된 오픈AI의 GPT4에 비해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격차는 GPT5 등 올해 등장할 빅테크들의 차세대 AI부턴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AI 개발 경쟁이 머니 게임으로 치닫고 있다"며 "네이버도 잘하고 있지만, 절대적인 투자 액수에서 차이가 나는 것을 극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인력 수준 낮아지는 한국, "AI 빈부격차 가시화"
네이버는 앞으로 삼성전자와 손잡고 국내 AI 연합을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이날 경기도 성남시 제2사옥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삼성전자와 공동 개발하고 있는 대규모언어모델(LLM)용 AI 가속기인 ‘마하1’의 안정성 시험을 올해 진행할 예정"이라며 "(네이버는) LLM을 굉장히 초기부터 고민해 왔기 때문에 효율화에 대한 세계 최고 기술을 갖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부에도 국가 차원의 AI 투자를 지속 요청하고 있다. 하정우 네이버 AI랩 소장은 지난해 10월 10일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 출석해 "세액공제 수준을 넘은 굉장히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기업이 개별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제한될 수 있기에 국가 전체 인공지능 전략을 수립해 민간기업이 경쟁력 있는 연구개발과 사업화를 앞서 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고 역설한 바 있다.
다만 추가적인 지원만으로 국내 AI 역량이 크게 강화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업계 내부에서 국내 AI 인력 수준 자체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의견이 거듭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사용자 관점에서 2024년 1월 한국 AI는 위기를 맞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최근 대학 수능에서 미적분학과 기하학 제외를 추진 중인데, 오늘날 챗GPT를 가능케 한 트랜스포머 논문을 이해하기 위해선 행렬, 미적분, 그리고 삼각함수의 기초지식이 필요하다"라며 "그동안 가르쳤던 것을 그대로 가르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가르쳤던 것을 안 가르치면 미래 세대들의 일부는 영원히 AI 문맹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교에서 필수적인 것을 단지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제외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AI 인력 수준이 낮아지고, 이로 인해 'AI 빈부격차'까지 발생할 우려가 생겼단 주장이다.
'엔비디아 vs 반엔비디아' 경쟁 심화하는데, 한국은 "정부가 지원해 달라"
정부 지원만 강조하는 업계의 관습적 행태에 대해서도 비판론이 제기된다. 관의 지원만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결국 자체적인 역량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경쟁체계를 살펴봐도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산업 생태계는 지속가능성이 없다시피하다. 해외의 경우 이미 AI 분야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미국 엔비디아와 그에 반하는 반(反)엔비디아 체제가 격렬히 경쟁하며 하드웨어(AI 반도체)와 소프트웨어(AI 개발 언어 및 플랫폼 등) 전반을 강력하게 이끌어 나가고 있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점유율은 80%를 웃돌고 있으며, 반엔비디아 연합 전선을 구축한 빅테크들은 엔비디아를 뒤쫓으며 여러 집약적 기술을 속속 내놓는 모양새다.
엔비디아와 반엔비디아 전선의 핵심 경쟁 요소는 AI 개발 소프트웨어다. AI 개발 소프트웨어는 AI가 다양한 데이터를 학습하고 추론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짜는 역할을 하는데, 여러 소프트웨어 중에서도 지난 2006년 엔비디아가 내놓은 '쿠다(CUDA)'는 현존하는 모든 AI 개발용 소프트웨어 중 가장 성능이 좋은 것으로 꼽힌다. 전 세계 400만 명이 넘는 개발자가 사용하면서 '업계 표준'이 되다시피 했다. 쿠다는 따로 사용료가 없는 대신 오직 엔비디아의 반도체에서만 구동된다. 엔비디아가 지닌 경쟁력의 상당 부분이 쿠다에서 오는 것이라 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이에 빅테크 연합군(반엔비디아 전선)은 쿠다를 대체할 수준의 강력한 AI 개발 소프트웨어를 내놓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특히 다양한 반도체에서 구동할 수 있어 엔비디아 반도체를 쓰지 않아도 AI 개발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정부가 주는 지원을 어미 새 기다리는 아기 새처럼 받아 가기만 하는 한국과는 질 자체가 다른 경쟁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업계가 한국의 AI 역량에 감히 긍정적 전망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