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모빌리티·반도체·모바일 등에서 AI가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 전문성에 경력 갖춘 '진짜 전문가'는 전 세계 수백명에 불과 韓, '2027년 AI 고급인재 20만명' 목표 AI대학원 중점 지원
최근 챗GPT의 인기로 촉발된 초거대 인공지능(AI) 붐으로 인해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AI 인재 영입전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모빌리티, 반도체, 모바일 등 전 산업군에서 AI가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한 데다 디지털전환, 생성형 AI 등의 수요가 확대되는 가운데 전문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기업이 직접 발 벗고 나서 인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진짜 AI 전문가'는 전 세계 고작 수백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글, 메타, MS 등 美 빅테크 기업 AI 인재 영입전 격화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생성형 AI가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미국 실리콘밸리 테크기업들의 인재 영입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일부 기업들은 AI 전문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의 업계 관행을 뛰어넘는 수준의 연봉이나 주식 보상을 제안하거나 팀 전체 인력을 영입하고 있다. 여기에 구글, 메타, MS 등 빅테크 기업들 사이에서는 AI 전문인력들을 뺏고 뺏기는 진풍경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MS는 경쟁사인 구글의 AI 핵심사업부 딥마인드를 공동 창업한 무스타파 슐레이만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MS는 슐레이만의 AI 스타트업 인플렉션 직원 대부분도 흡수하기로 했다. 슐레이만은 'MS AI'라는 팀을 꾸려 MS의 코파일럿, 빙, 엣지, 젠AI 등의 소프트웨어 소비자부문과 AI 융합을 관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CEO는 구글 딥마인드 AI 연구원들에게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보내 영입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커버그 CEO는 일반적으로 인력 채용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글 딥마인드, 오픈AI, 미스트랄 등 경쟁사로 AI 인재들이 유출되자 태도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오픈AI도 구글의 최고급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부터 구글의 생성형 AI '제미나이'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핵심인력인 자후이 위를 비롯해 최소 6명의 AI 기술자가 오픈AI로 이직했다. 오픈AI는 이들에게 500만 달러(약 66억원)에서 1,000만 달러(약 130억원)의 연봉과 함께 최고의 기술 자원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이에 맞서 구글도 같은 시기 오픈AI에서 챗GPT의 코드 해석 기능 개발을 주도한 맷 웨이오프를 영입했다. 이와 함께 주요 인력의 이탈을 막기 위해 AI 핵심 부서인 딥마인드의 연구원 중 일부에게 수백만 달러의 특별 주식을 제공하고 주식 의무 보유 기간도 기존 4년에서 1년으로 대폭 줄이기로 했다.
SW 개발자는 공급과잉, AI인력은 공급부족 '인력 구조의 양극화'
이러한 상황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IT 업계의 전례 없는 감원 러시와는 대조적이다. 지난해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의 과잉 공급,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온라인 서비스 수요 감소 등의 영향으로 30만 명이 넘는 인원이 해고됐다. 업계에서는 빅테크 기업들의 잇따른 인력 감축이 AI에 투자하기 위해 다른 부문을 축소하는 '선택과 집중'에 따른 결정으로 보고 있다. 실제 구글 모기업 알파벳은 지난 1월 음성비서·픽셀·핏빗 담당부서, 광고영업팀 등에서 1,000명이 넘는 직원을 해고했다.
반면 거대언어모델(LLM) 등 AI 분야는 전문성과 경험을 겸비한 인력풀이 매우 제한적이다보니 최상급 인력의 연봉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기업들이 추구하는 인재상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한쪽에선 사람이 넘치고 다른 쪽에선 인재가 부족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IT업계의 취업시장에 변화가 시작되자 구직자들은 단기교육과정 등을 통해 AI 관련 경력을 이력서에 추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일례로 최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이 개설한 '생성형 AI와 비즈니스 혁신'이란 4일짜리 교육과정은 1만2,000달러(약 1,600만원)라는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모집정원 50명을 순식간에 채웠다.
韓 전 세계 AI 인력의 0.5% 확보, 전문가 절대 부족
이러한 상황은 한국도 다르지 않다. 채용 플랫폼 원티드랩에 따르면 개발직군 채용 공고에서 AI 관련 직무의 비중이 지난해 10월 33.8%에서 지난달 39.9%로 증가했다. 거액의 연봉을 약속해도 최고급 수준의 AI 개발자는 구하기 힘들어지면서 일부 대기업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LG와 현대자동차는 세계 최고 권위의 AI 학회 '국제컴퓨터비전·패턴인식 학술대회(CVPR) 2023'에 부스를 차리고 AI 인력 채용에 나섰다. 네이버와 카카오도 별도의 부스를 차리지는 않았지만 현지에서 연구성과 공유와 교류를 통해 AI 인력풀 확보에 주력했다.
다만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AI 인재는 여전히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 20일 한국경제인협회가 발표한 '한·미·중 인공지능 인재 확보 전략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주요 30개국의 AI 인력은 47만7,956명으로 이 중 한국에 있는 인력은 0.5%인 2,551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순위로는 조사 대상 30개국 중 22위 수준이다. 미국이 39.4%로 1위에 올랐고 이어 인도 15.9%, 영국 7.4%, 중국 4.6% 순으로 나타났다.
인력 부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도 AI 인재 양성에 나선 상황이다. 지난 2022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범부처 '디지털 인재양성 종합방안'을 발표하고 오는 2026년 디지털 인재 100만 명 양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올해는 산업계와의 협력을 기반으로 대학(원) 정규과정을 개설하는 등 4,393억원을 투자해 디지털 전문 인재 4만 명 이상을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AI 부문에서는 오는 2027년까지 AI 고급인재 20만 명을 양성하기 위해 인공지능대학원은 2025년까지 22개교, 메타버스대학원은 2026년까지 10개교로 늘리기로 했다.
AI 대학원 등 정부 주도의 인재 양성 전략에 한계 지적
정부와 대학이 나서서 AI학과, AI대학원을 만들어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전략이지만 여전히 국내 대학의 AI 교육과정은 최고 수준의 글로벌 인재 양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관(官) 주도의 거점형 지원사업이 갖는 한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학이 예산을 따내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시한 요건과 성과지표를 충족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엇박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부가 중점 추진하는 분야와 맞지 않으면 선정이 어렵다보니 하향식 정책 기조에 맞춰 교육과정이 변질되거나 '프로젝트'식 지원사업이 반복되는 동안 예산이 끊겨 운영이 중단되는 사례도 발생한다.
AI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교과서적 지식이나 코딩 같은 기술 교육은 핵심개념과 필수 내용에만 집중하고, 학습한 지식과 기술을 적용·분석·평가·창조하는 높은 수준의 학습으로 옮겨가야 한다. 또한 빠르게 발전하는 분야인 만큼 교과서나 이론서적에 나오는 지식 못지않게 생생한 현장 트렌드를 실시간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획일적인 학과 시스템을 벗어나 새롭고 혁신적인 교육방식과 경로가 도입돼야 하지만 현재는 전임교원 채용, 학과 정원 같은 대학 규제와 성과지표 중심의 평가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대학의 폐쇄적이고 낡은 구조로는 새로운 융합 분야의 출현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AI 전공 학과를 많이 만들기보다 유연한 사고력을 갖춘 인재 풀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AI학과 졸업생 100만 명 배출이라는 물량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세계적 수준의 AI 인재 양성'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공과 학과, 학위과정의 틀을 뛰어넘어 대학 구조의 전면적인 해체와 재조립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현실과 동떨어진 채 대학을 옥죄는 규정을 완화하고 지역 기업과 연구소부터 글로벌 빅테크 기업, 정부와 대학에 이르는 촘촘한 AI 인재 양성 시스템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