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생명·손해보험 모두 판매하는 '제3보험' 경쟁 심화
단기납 종신 열풍 시들, '암 종신' 유사 상품 쏟아져
보험 비교·추천 서비스 출시, 자동차보험 지각변동
보험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보험업계의 유사 상품 출시가 이어지고 있다. 한 보험사가 파격 상품을 선보이면 다른 보험사도 해당 요소를 차용해 유사 상품을 출시하는 식이다. 특히 최근에는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가 모두 판매할 수 있는 건강보험 등 '제3보험' 시장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치열해진 제3보험 경쟁, '암 종신'에서 '치아보험'까지 확대
20일 금융권 따르면 생명보험사들은 암보험과 종신보험을 연계한 '암 종신' 상품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암 진단을 받으면 그동안 낸 보험료를 전부 돌려주는 '페이백'을 비롯해 보험금 중도 인출, 납입 면제, 사망보험금 체증 등 각종 기능을 결합해 고객 사로잡기에 나선 것이다. 한화생명은 페이백은 물론 사망보험금이 최대 4배까지 확대되는 '암플러스 종신보험'을 선보였고 KDB생명은 페이백과 함께 10년 시점 환급률 124%를 보장하는 '더블찬스 종신보험'을 출시했다.
여성 특화 보험 시장에서도 유사한 상품의 출시가 이어졌다. 한화손해보험이 여성보험으로 성공을 거두자, NH농협생명, 흥국생명, KDB생명, 흥국화재, DB손해보험, 신한라이프생명 등이 여성 전용 상품을 출시하거나 여성 가입자의 보험료를 대폭 할인했다. 당뇨·고혈압 등 질병을 앓고 있거나 병력이 있는 고객도 가입할 수 있는 '유병자 보험 상품'의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다수의 보험사가 보험료를 인하하면서 질병 이력이 없는 건강한 사람도 유병자 보험으로 가입하는 게 더 유리해지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치아보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지난 3월 치아보험의 원조로 불리는 에이스손해보험(現 라이나생명)은 치아보험의 보장을 확대하고 보험료 20% 인하와 함께 가입연령을 70세로 상향했다. 특히 업계 표준을 뛰어넘어 보장 범위를 대폭 확대한 것이 특징이다. 이에 대응해 삼성생명도 발치, 치조골, 임플란트, 크라운, 보철, 틀니 등에 대한 보장을 강화했고 라이나생명은 다시 크라운과 임플란트를 추가 보장하는 신규 특약을 출시했다.
저축성·종신보험 인기 줄자 건강보험 주력하는 생명보험사
이러한 제3보험의 경쟁은 과열된 보험업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새 회계기준인 'IFRS17' 적용으로 '보험계약마진(CSM)'의 중요성이 커진 가운데 암·건강보험 등 생명보험·손해보험 모두 판매할 수 있는 제3보험이 새로운 먹거리로 부상한 것이다. 제3보험은 건강보험을 비롯해 암보험과 어린이보험 등 사람의 질병·상해를 보장하는 것으로 손해보험사가 지난해 기준 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동안 생명보험사들은 저축성보험과 종신보험에 주력해 왔지만, 최근 해당 상품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저축성 보험은 IFRS17에서 판매할수록 손해가 되는 상품으로 전락했고 종신보험도 1인 가구 증가와 저출산의 영향으로 수요도 감소했다. 실제로 2018~2020년 생명보험사의 종신보험 신계약 금액은 80조~89조원에 육박했지만, 2021년 53조원으로 쪼그라들었고 지난해 말에는 65조원에 그쳤다.
특히 건강보험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신계약 건수 기준 보장성 보험 중 사망 외 담보 비중은 지난해 1분기 72.8%에서 2분기 80.7%, 3분기 74.8%, 4분기 75.1%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계속된 단기납 종신보험 열풍으로 종신보험 신계약 건수가 증가한 점을 고려하면 현재 이 비중은 80%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2023년 생명보험사의 저축성보험 신계약 누적액은 21조4,358억원으로 2022년 43조8,230억원과 비교해 51% 감소했다. 2021년 37조8,016억원과 비교해도 43.2% 줄어든 수치다.
생명보험사들은 제3보험에서 재미를 보자 최근에는 손해보험사의 고유 영역인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일배책)'을 판매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일배책은 일상생활 중 다른 사람에게 신체·재산상 피해를 줄 경우 손해를 보상하는 상품으로 현행법상 손해보험사만 판매할 수 있는데, 손해보험사는 일배책을 주로 어린이보험 등에 탑재해 판매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일배책을 운영할 수 없는 생명보험사는 어린이보험 시장에서 손해보험사에 밀리는 모양새다.
보험사 간 경쟁 과열, 출혈경쟁·불완전판매·대형사 쏠림 우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보험사 간 경쟁이 고객에게 유리한 상품과 서비스 출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한다. 경쟁 효과로 다양한 상품이 나오면 그만큼 보장 범위가 확대되고 적은 비용으로도 많은 보장을 받을 수 있어 소비자 후생은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생명보험사가 건강보험 시장에 상품을 내놓자, 그동안 안정적인 지위를 유지했던 손해보험사도 다양한 상품을 경쟁적으로 개발해 출시하기 시작했다.
올해 1월에는 7개 핀테크사에서 만든 플랫폼 보험 비교·추천 서비스가 출시되면서 많은 소비자가 보험 상품을 간편하게 비교하고, 적합한 상품을 추천받아 보험료 절감 등의 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비스 출시 이후 대형 보험사들이 주도해 왔던 자동차보험 시장에서 중·소형 보험사가 크게 약진했다. 서비스가 출시된 1월 19일부터 한 달간 약 12만 명이 비교·추천 서비스를 이용했고 약 6만100여 건의 보험계약이 체결됐다. 이에 핀테크 기업들은 2분기 펫보험에 이어 여행자보험, 저축성보험, 실손보험 등도 순차적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경쟁이 심화하면 출혈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자본 건전성 훼손과 불완전판매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상품이 비슷해지고 다른 보험상품의 보장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정 분야로 쏠림현상이 나타나면서 다른 보험 영역이 소외되거나 규모의 경제와 자본력을 갖춘 대형사로 몰리는 현상이 심화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대형사의 시장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5대 손해보험사가 장기손해보험 초회보험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과 2022년 60%대에서 지난해 상반기 80%로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