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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 악용하는 '취업 빌런' 증가 추세, "사업장 전전하며 해고 유도"
패소해도 손해 없는 근로자들, 부당해고가 합의금 받을 구실로 전락
취업 빌런 악성 민원에 근로감독관 사망 사례도, 전문가들 "방지책 마련 시급"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한단 취지로 마련된 노동법을 악용하는 일명 '취업 빌런' 사례가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사용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서라도 기존의 경직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부당해고 구제신청만 14회, '취업 빌런' 무효확인 청구 기각한 재판부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지법 민사12부(채성호 부장판사)는 최근 해고된 음식점 직원 A씨가 업주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 무효확인 청구 소송을 기각했다. A씨는 지난해 9월 14일부터 대구 북구의 한 음식점에서 월 300만원을 받으며 음식 조리 등 주방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A씨는 근무를 시작한 지 한 달 남짓 만에 잦은 지각 등을 이유로 업주로부터 서면으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업주에 따르면 A씨는 출근 일주일만인 21일부터 지각을 시작해 해고 때까지 근무한 27일 중 총 25일을 지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근 이후로도 흡연 등을 이유로 자주 자리를 비웠고, 업무 지시 역시 별다른 이유 없이 거부했다고 업주 측은 주장했다. 재판 과정에선 A씨가 2018년 5월 이후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총 14회에 걸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A씨가 근무한 사업장은 대부분 소규모 사업장이었고, 근무 기간도 열흘에서 석 달 수준에 그쳤다. 대다수 사건에서 업주로부터 합의금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에 재판부는 "A씨의 지각이나 지시 불이행 등 비위 행위 반복이 단순히 불성실한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 가능성도 엿보인다"며 A씨의 해고 무효확인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동법 악용 사례↑, "의도적으로 구두 해고 통보 노려"
최근 위 사례처럼 노동법을 악용하는 취업 빌런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무분별한 해고 무효 소송을 제기하는 건, 부당해고가 인정되면 분쟁 기간 동안 일하지 않고도 월급을 받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사업장을 전전하면서 영세 업체들을 상대로 해고를 유도한 후 사소한 잘못을 트집 잡아 월급과 합의금을 뜯어내는 게 하나의 유행처럼 번진 것이다.
이번 A씨 사건의 경우 재판부가 해고 무효확인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일단락됐지만, 취업 빌런의 손아귀에 붙잡히는 업주들은 여전히 많다. 주로 해고 서면 통지나 해고 예고 수당 지급 등 노동법 규정을 잘 알지 못하는 영세 사업장이 그 대상이 된다. 서면 통지 규정을 잘 모르는 영세 사업장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해고를 유도해 구두로 통보받은 후 거액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인천에서 횟집을 운영 중인 B씨는 "주방보조 직원의 근태가 엉망이라 6일 만에 해고를 통보했는데, 말로 한 게 문제가 됐다"며 "부당하게 구두 통보로 해고를 했으니 1,800만원을 달라더라. 노동부에 문의했지만 합의 외 방법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관련 사례는 무수히 많다. 모 학원에선 입사 후 잦은 조퇴로 근태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직원에 대해 지적을 가하자 "사업주가 인권을 위협한다"며 노동부에 신고하겠다 협박한 사례가 발생했고, 한 휘트니스센터에선 사업장 험담, 동료와의 충돌 등 문제를 일으킨 직원을 퇴사 조치하자 부당해고로 노동부에 신고당한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취업 빌런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건, 노동법 악용이 그만큼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근로자 입장에선 노동위원회에서 구제 절차를 밟는 데 드는 비용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법원 재판에서도 국선 변호사 제도를 활용할 수 있어 패소해도 밑질 게 없다. 반면 업주는 분쟁이 장기화하고 조사를 받게 되면 압박감을 느끼거나 업무에 차질을 빚게 될 수 있어 합의금을 주고 사안을 종결시키는 경우가 많다.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법이 사용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방지책 마련이 시급하단 목소리가 쏟아지는 이유다.
악성 민원에 근로감독관 피해 사례도
최근엔 근로감독관이 취업 빌런에 의해 피해를 받는 사례도 생겼다. 악성 민원인에게 시달리다 업무 과로로 인해 뇌출혈로 숨진 이가 발생한 것이다. 근로감독관이던 C씨는 2016년 2월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서 진주지청으로 전보돼 근로감독관으로 근무했다. 통상 업무 시간은 주 5일이었지만, 진주지청의 관할 범위가 넓은 데다 C씨가 맡은 사건이 유독 많아 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C씨의 부담을 가중시킨 건 근로자 D씨의 진정 사건이었다. D씨는 '무조건 해고 예고 수당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며 최초 일주일간은 5차례, 다음 한 달간은 65차례, 그다음 한 달엔 무려 98차례나 C씨의 사무실과 휴대전화, 고객지원실 등으로 전화해 욕설과 협박을 일삼았다. C씨의 카카오톡으로 '가만두지 않겠다', '죽고 싶어 환장했느냐', '검찰에 고소하겠다', '노동청에서 잘라버리겠다'는 등 협박성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근무시간뿐 아니라 새벽이나 밤, 휴일에도 D씨는 C씨에게 전화해 자기주장을 반복했다. 2~5분 간격으로 전화하거나 전화를 끊지 않고 1시간 이상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일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C씨는 그해 7월 20일 아침 관사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뇌출혈이었다.
이에 법원은 C씨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업무상 과로와 악성 민원인에 따른 스트레스가 기존의 뇌동맥류와 겹쳐 뇌출혈을 일으켰단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망인은 과중한 업무로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특정 민원인의 반복된 악성 민원을 감내하면서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근로감독관 업무에 따른 통상적인 스트레스라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스트레스 상황은 망인의 사망 직전까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해 왔다"며 "결국 공무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기존 뇌동맥류와 겹쳐 뇌출혈을 유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