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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총파업에 사측 무대응 일관하자, 노조 "무기한 파업하겠다"
노조 '감산 등 생산 차질 현실화' vs 사측 '생산 차질 없게 대비'
파업 장기화 시 삼성 대외 신인도 '타격', 직원 사기 저하 우려도
삼성전자의 최대 노동조합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의 투쟁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조합원이 출근하지 않는 방식의 총파업을 시작한 전삼노는 계획을 바꿔 근무 복귀 시점을 정해두지 않는 무기한 투쟁에 돌입하기로 했다.
전삼노, 무기한 총파업 선언
10일 전삼노는 이날부터 무기한 파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당초 전삼노는 지난 8일부터 이날까지 3일간 총파업을 실시한 뒤, 11~12일 업무 복귀 후 15일부터 2차 파업에 나설 방침이었지만, 계획을 수정했다. 전삼노는 지난 10일 2차 총파업을 선언하며 "1차 총파업이 끝날 시점이 오고 있지만 사측은 여전히 무시로 일관하고 있으며 무책임한 경영진의 태도로 약속된 휴가를 거절하고 있다"며 "직원들의 외침에 대답 없는 경영진에 우리의 의지와 결의를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측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곧바로 출근 금지를 장기화하는 방식으로 강도를 높인 것이다.
전삼노가 사측에 제시한 최종안은 △조합원에 대한 노조창립휴가 1일 제공 △기본 임금인상률 3.5% 적용 △'무임금' 총파업 참여 인원에 대한 타결금 보상 등이다. 노조는 성과급 산정 방식의 투명화도 요구하고 있으나 삼성전자는 이러한 안건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근 전삼노에 가입한 삼성전자 직원 수는 3만 명을 돌파했고 이 중 1차 총파업에 참여한 조합원은 6,540명이다. 노조는 총파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출근을 금지하고, 파업 근태를 사전에 보고하지 말라는 내용의 지침을 내렸다. 수만 명의 인원이 갑자기 결근하는 식으로 경영에 혼선을 일으키겠다는 구상이다. 노조 측은 "사전에 사측이 대응하지 못하도록 해야 총파업을 승리로 빠르게 이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총파업에 참여하는 조합원 대부분은 반도체(DS)부문에서 생산설비를 담당하는 직원들로, 전삼노에 따르면 반도체 설비와 제조, 개발 직군에서 파업에 동참한 인원은 5,211명이다. 근무지 기준으로 살펴봐도 대규모 생산공장이 있는 기흥사업장과 화성사업장, 평택사업장에서 4,477명이 힘을 보탰다.
노조는 생산 차질을 극대화하기 위해 11일 기흥사업장 8인치(직경 200㎜ 웨이퍼 공정)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 식당에서 홍보 활동을 벌인 뒤 평택사업장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공장 식당에서 파업 참여를 독려한다는 계획이다. 총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 규모를 자체적으로 추산하기 위해 제보도 받고 있다. 노조는 총파업이 전개될수록 반도체 공장의 생산 차질과 품질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측 "대부분 전면 자동화, 파업 타격 미미"
그러나 아직 삼성전자가 설비 가동을 멈추거나 대규모 불량품을 보는 등 사고 수준의 손해를 입었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사측 역시 총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은 없으며 정상적으로 제조가 이뤄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재계에서도 이미 노조가 생산 차질을 빚는 목적의 총파업을 하겠다고 예고한 만큼, 사측에서 이와 관련해 대비를 했을 가능성이 높아 생산 타격에 미칠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실제로 반도체 공장은 대부분 전면 자동화를 이루고 있어 타격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전삼노 조합원은 삼성전자 전체 직원의 22%에 불과해 노조 밖 대체인력을 활용할 여유도 있다. 단, 노조가 무기한 총파업을 거론한 만큼 향후 사업장 점거나 직장폐쇄 같은 극단적인 쟁의행위로 확대될 경우에는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하다. 반도체 제조 공장은 매우 정밀하고 민감한 화학물질을 다루기 때문에 가동이 멈추면 생산 중인 제품 대부분을 폐기해야 할 수도 있다. 앞서 지난 2019년 삼성전자는 평택사업장이 28분간 정전돼 500억원의 손실을 본 바 있다. 생산 중단이 길어지면 피해액은 수천억원까지 훌쩍 뛸 수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러한 극단적인 사태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노조가 파업 이후 회사 안팎의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우리나라 산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공고한 만큼 부정적 여론이 거세질 여지도 있다. 전삼노 역시 이러한 여론을 의식해 대대적인 파업보다는 대화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지켜왔다.
대외 신뢰도 손실 및 내부 균열은 부담
다만 우려스러운 부분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이 빠르게 파이를 키워나가는 현시점에 삼성전자 입장에서 반도체 생산 차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해외 고객사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지난해 AI 시대 개막과 함께 HBM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지만, HBM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삼성전자는 HBM 주도권을 SK하이닉스에 뺏긴 이후 반전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하반기 제품 납품을 두고 HBM3E에 대한 품질검증 절차를 밝고 있는데, 삼성전자 노조의 생산 차질에 대한 주장은 해외 고객사의 안정적 생산에 대한 불안감을 키울 수 있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 역시 TSMC와 점유율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선단 공정 기술력을 앞세워 해외 대형 고객사를 잡아야하는 과제를 앞뒀다는 점에서 생산 차질에 대한 우려감은 해외 고객사 확보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규복 한국전자기술연구원 부원장은 "생산 차질은 삼성전자 입장에선 타격이 클 수밖에 없는데, 라인에 차질이 있으면 고객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퀄컴이나 애플, 엔비디아 업체들이 삼성에 줄 물량을 TSMC에 줘야겠다는 생각을 가져올 수 있다"며 "라인이 멈췄다가 다시 가동할 경우 불량률 등과 같은 부분에서 신뢰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직원들의 사기가 꺾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에 2022년 4분기 이후 5분기 만에 반도체 사업이 흑자전환했다. 시장의 반등을 가속화하고 분위기를 쇄신하는 차원에서 최근에는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DS부문장에 전영현 부회장을 앉히기도 했다. 동시에 AI용 HBM 분야에서 경쟁사를 따라잡기 위해 치열하게 준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크고 작은 파업은 위기 극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협상 타결의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전삼노가 지난해 8월 확보한 대표교섭노조 지위가 오는 8월이면 끝나는 만큼 파업권이 사라지기 전 협상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8월까지 협상이 끝나지 않으면 노동조합법에 따라 어느 노조든지 교섭을 요구할 수 있어 5개 노조의 각자 교섭으로 나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