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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약 주성분 ‘세마글루타이드’, 체중 개선 외 추가 효능 확인
과학자들 "심혈관 질환 개선 외 광범위한 이점, 감염 사망 크게 억제"
단 '자살 충동·탈모·시신경 실명' 등 부작용은 넘어야 할 과제
'기적의 다이어트 약'으로 불리며 전 세계적인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주사형 비만 치료제 '위고비'와 '오젬픽'의 주성분이 인체 노화까지 늦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존 발표된 당뇨와 비만·과체중 개선, 심혈관 질환 치료 등 외에도 훨씬 더 광범위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해당 성분이 인간의 수명을 늘려 의료서비스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한편, 자살 충동 및 실명과 같은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세마글루타이드, 심혈관 질환 치료에도 효과
지난달 31일(이하 현지시간) BBC 등에 따르면 할란 크럼홀츠 미국 예일대 의대 교수팀은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출시한 GLP-1(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 계열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과 비만 치료제 위고비의 주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가 암, 알츠하이머, 심장질환, 관절염 등 광범위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지난달 30일 크럼홀츠 교수는 영국 런던에서 열린 2024년 유럽심장학회 연례학술회의(ESC 2024)에서 "세마글루타이드는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광범위한 이점이 있다"며 "단순히 심장마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증진하며, 이런 식으로 건강을 개선하면 노화 과정이 지연되는 건 놀랍지 않다"고 발표했다.
크럼홀츠 교수 연구팀이 진행한 실험은 미국에서 과체중 또는 비만인 환자들 가운데 심혈관 질환이 있지만 당뇨병은 없는 45세 이상 1만7,604명에게 세마글루타이드와 위약을 각각 투여해 3년 이상 경과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실험 기간에 사망한 총 833명 중 58%는 심혈관 문제로, 42%는 감염 등 다른 원인으로 사망했는데 연구진은 세마글루타이드가 감염으로 인한 사망 위험을 낮추고 뇌졸중, 심근경색 등 심혈관계 문제를 발생시킬 위험도 지속적으로 감소시킨 점을 확인했다. 아울러 체중 감량 여부와 무관하게 심부전 증상이 개선되고 신체 염증 수치도 낮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뿐만 아니라 세마글루타이드는 코로나19에 따른 사망 위험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마글루타이드 복용군은 코로나 감염 확률이 위약군과 유사했지만, 감염됐을 때 사망률이 2.6%로 위약군의 3.1%보다 낮았다. 실험군 1만7,604명 중 4,258명이 코로나에 감염됐고 감염자 수는 양쪽 모두 비슷했으나 사망자 수는 세마글루타이드 복용군이 78명으로 위약군의 106명보다 적었다. 이와 관련해 벤저민 시리카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세마글루타이드를 복용했을 때) 심혈관계 외 원인으로 인한 사망, 특히 감염에 따른 사망의 감소는 놀라운 수준"이라며 "과체중과 비만이 다양한 요인으로 사망 위험을 높이는데, 이러한 요인들이 세마글루타이드를 활용한 강력한 인크레틴 기반 치료를 통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자살 충동' 부작용 경고
다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코라도 바르부이(Corrado Barbui) 이탈리아 베로나대 정신과 교수 연구팀은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여한 환자 사례를 추적 분석한 결과, 자살 사고 징후가 발견됐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미국의사협회지(JAMA) 네트워크 오픈’을 통해 발표했다.
연구팀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개별 사례 안전보고서(ICSR)라는 대규모 약물 감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다. 조사에 투입된 데이터는 모두 3,617만2,078건으로 세마글루타이드와 리라글루타이드(삭센다 주성분)의 자살 부작용 사례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조사했다. 연구팀은 세마글루타이드의 자살 관련 부작용의 ‘불균형성’이 유의미하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불균형성 분석은 약물 부작용을 감시할 때 사용되는 통계적 방법으로, 특정 부작용이 특정 약물과 얼마나 연관되는지를 다른 약물과 비교해 평가한다.
WHO 보고서에 따르면 약물 부작용 사례는 세마글루타이드가 3만527건, 리라글루타이드가 5만2,131건으로 나타났다. 전체 부작용 중 자살 관련 사례는 세마글루타이드가 107건(0.35%), 리라글루타이드가 162건(0.31%)으로 파악됐다. 특히 처방 기간이 세마글루타이드는 13년(2011~2023년), 리라글루타이드는 24년(2000~2023년)으로 두 배 가까이 차이 난다는 점에서 세마글루타이드의 자살 관련 부작용이 두드러졌다.
세마글루타이드의 자살 부작용 사례는 구체적으로 자살 충동 88%, 의약품 과복용 7%, 자살 시도 7%로 확인됐다. 또 부작용 사례자 107명 중 7%는 자살 시도와 자살 충동으로 사망에 이르렀다. 세마글루타이드 치료 시작부터 자살 사고 발생까지 걸린 평균 기간은 80.39일이며, 특히 세마글루타이드는 항우울제와 함께 복용할 때 자살 충동 부작용이 다른 약물들보다 4배 이상 컸다. 연구팀은 “리라글루타이드와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 다파글리플로진·메트포르민, 비만 치료제 오를리스타트와 비교했을 때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환자의 자살 부작용이 세마글루타이드에서 4.45배 더 심하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비만 치료제가 자살 충동을 높인다는 연구는 이전에도 나왔다. 이에 비만 치료에 승인된 위고비 라벨에는 의료진이 환자의 자살 시도를 감시해야 한다는 경고가 붙어있기도 하다. 다만 GLP-1 유사체 비만 치료제의 자살 영향에 대해선 아직 연구자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노보 노디스크는 성명을 통해 “(자살 충동) 위험과 관련해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 의약품청(EMA) 승인 제품 라벨에 반영했다”며 “치료 안전성을 감시하기 위해 규제기관과 계속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환자의 병력과 진단 변수를 통제하지 못한 연구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바르부이 교수 연구팀 역시 이번 연구에 한계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규제기관들이 자살 관련 위험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세마글루타이드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위고비나 오젬픽의 불법 거래가 일어나고 있다”며 “이들이 자살과 같은 부작용에 처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살 빼는 주사 맞다 실명할 수도
세마글루타이드에 대한 부작용은 자살 사고만이 아니다. 미국 브라운 의과대학 피부과 연구팀이 22편(임상시험 15건, 증례보고 6건, 후향적 코호트 연구 1건)의 논문을 검토한 결과,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여한 환자에서 위약을 투여한 환자보다 피부 감각 변화 및 탈모증 발생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에 따르면 매주 세마글루타이드 50mg을 경구 투여한 환자는 위약 또는 비교약물을 투여한 환자보다 감각 이상(1.8% 대 0%), 감각 과민(1.2% 대 0%), 피부 통증(2.4% 대 0%), 감각 이상(2.7% 대 0%), 피부 민감(2.7% 대 0%) 등 피부 감각 변화의 발생률이 더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구체적으로 탈모증(6.9% 대 0.3%)에 대한 보고는 매주 세마글루타이드 50mg을 경구 투여한 환자에서 위약 투여 환자보다 높았지만, 피하 세마글루타이드 2.4mg 투여 환자의 경우에는 0.2%만이 탈모증을 보고한 반면 위약 투여 환자는 0.5%가 탈모증을 보고했다.
세마글루타이드 복용에 따른 실명 위험도 제기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오젬픽과 위고비 주의사항에도 '시력 변화'가 약물의 잠재적 부작용으로 기재돼 있다. CNN 보도에 의하면 매사추세츠주에 위치한 안과·이비인후과 전문병원인 '매스 아이 앤 이어' 소속 의사들은 지난해 중순 '비동맥 성전방 허혈성 시신경병증'(NAION) 환자가 이례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눈 뇌졸중'으로 불리는 질환으로, 녹내장 다음으로 많은 시신경 실명 요인이다. 시신경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생기는 시신경 파괴라는 점에서 영구 실명까지 이를 수 있다.
통상 발병률은 인구 10만 명당 최대 10명인데, 연구에 참여한 의사들은 일주일 사이에 NAION 환자를 3명이나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세마글루타이드 약물을 쓴 환자들이었다. 이후 해당 의료진이 지난 6년간의 의료 기록을 분석한 결과, 과체중·비만 환자가 세마글루타이드를 처방받을 경우 실명 발병 가능성이 미복용 환자보다 7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세마글루타이드 처방을 받은 첫 해에 발병 위험이 가장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