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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감 커진 삼성 반도체, 대규모 조직 혁신으로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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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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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현 부회장, 근본적 체질 개선 강조
‘반도체인 신조’ 개편으로 정신 재무장
근본 원인은 인재 고갈과 내부 위기
TSMC가 ‘이건희 정신’으로 삼성 뛰어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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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조직 혁신' 카드를 꺼내 들고 반도체 핵심 먹거리로 떠오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잡기에 박차를 가한다. 내부 진단을 바탕으로 반도체 산업 내 위기감이 크게 작용하자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 반도체, 대대적 쇄신 착수

11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 수장인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은 최근 3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하면서 조직문화 재편을 예고했다. 삼성전자 전통인 신뢰와 소통의 조직문화를 재건하겠다며, 일하는 방법도 재점검하겠다고 강조했다. 전 부회장의 메시지는 최근 급부상한 '삼성 반도체 위기론'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인공지능(AI) 메모리로 손꼽히는 HBM 공급에 난항을 겪고,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 역시 부진하면서 나오는 안팎의 우려를 받아들여 재도약의 기회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삼성전자의 혁신 동력이 약해졌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세계 최고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었던 영광에 안주해 도전 정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고위 임원 출신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 내부적으로 '보신주의'가 만연해진 것으로 본다”며 “최근 실적 부진으로 조직 문화 자체가 위축되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때 '관리의 삼성'이라고 불릴 만큼 체계적인 조직 운영과 사업 추진은 옛말이 됐다는 쓴소리도 제기된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관리의 삼성'이 '관성의 삼성'이 됐다”며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도전하기보다는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도 삼성전자 반도체가 서서히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민규 상상인증권 애널리스트는 “제조사별 생산능력·수율·생산효율 모두를 고려할 때 내년도 HBM 시장 성장의 수혜를 과점할 기업은 SK하이닉스가 유력해 보인다”고 짚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도 “삼성전자 3분기 실적을 보면 낮아진 시장의 기대에도 미치지 못했다”며 “그렇게 다짐했던 HBM에서도 시장이 원하는 결과를 아직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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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개편으로 R&D-현장 협력 강화

메모리 시장 환경도 녹록지 않다.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9월 평균 PC용 D램 범용제품 고정거래 가격은 전월 대비 17.07% 급락했고, 메모리 카드와 USB용 낸드플래시 범용 제품 가격은 11.44% 하락한 상태다. 전 부회장이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준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가진 것을 지키려는 수성(守城)의 마인드가 아닌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도전 정신으로 재무장해야 한다”며 “현장에서 문제점을 발견하면 그대로 드러내 치열하게 토론하고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전 부회장이 구상한 체질 개선방안은 오는 11월 전후로 있을 인사 발표와 조직개편에 그대로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크게 △인사 시점을 앞당겨 긴장감을 불어 넣고 △개발과 생산 부서 간 협업 강화를 위한 조직 개편을 단행하며 △ 발광다이오드(LED)등 경쟁력을 상실한 사업을 철수하고 △ 불필요한 행사는 축소하며 △ ‘반도체인 신조’ 개편을 통해 정신 무장을 다잡는 방안이 유력하다.

삼성전자 DS부문은 전 부회장이 올 5월 취임한 이후 경영효율을 끌어올리고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경영진단을 시행했다. 일부는 이미 조직을 개편했다. 반도체연구소에 있는 D램·낸드플래시를 비롯한 메모리 칩 R&D(연구개발) 부문을 원래대로 사업부 내 개발실 산하로 이동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설비기술연구소를 포함한 R&D 조직을 현장라인에 상시 배치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부상하고 있다. 현장 제조라인과 R&D 조직간 유기적 협조를 통해 문제점을 빠른 속도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다.

정신무장 방안도 가다듬고 있다. 삼성전자는1974년 반도체 산업 진출 이후 50년간 이어져 온 ‘반도체인의 신조’를 개편하고자 임직원 의견수렴에 나섰다. 반도체인 신조는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라”처럼 반도체 임직원이 어떤 마음가짐과 방식으로 일해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알려주는 10가지 항목이다. 아울러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선택과 집중’ 전략도 추진하고 있다. 우선 핵심 협력사에 삼성전자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알리는 행사인 '반도체 파운드리 포럼'을 이달 말 온라인으로 열기로 했다. 그만큼 파운드리 부문의 효율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12월 7일로 잡혀있던 삼성 반도체 50주년 기념 행사 역시 오프라인으로는 열지 않기로 했다. 또 성과가 불명확한 미래 투자 분야도 재검토 중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네이버와 함께 추진한 AI 가속기 ‘마하’ 개발 중단이다.

공대 기피·교육질 저하·인재 유출이 삼성 덮쳐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내 대표 기술 기업 삼성의 경쟁력 약화를 불러온 핵심 요인을 고질적 ‘인력난’에서 찾는다. 기술 리더십 실종과 느슨해진 조직 문화 같은 내부 문제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삼성은 국내 대기업 중 유일하게 공채를 유지하고 있지만, 실력뿐 아니라 회사에 대한 로열티(충성심)까지 전반적 수준이 과거만 못하다는 평이 팽배하다. 매달 100만원씩 줘가며 청년 8,000여 명에게 무료로 SW(소프트웨어) 교육을 시키고, 반도체 계약학과까지 만들어 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이런 상황이 20년 넘게 이어지자 삼성의 내부적 문제들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핵심엔 ‘이건희 정신의 실종’이 있다. 1974년 파산 직전의 반도체 회사를 인수해 미국·일본과 30년 기술 격차를 따라잡겠다고 뛰어드는 무모한 도전은 이제 더 이상 삼성에 존재하지 않는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과감한 투자보다는 안정적 수익을 추구하는 문화로 바뀌면서 임직원들도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2016년 국정 농단 사건에서 시작된 ‘사법 리스크’도 삼성의 발목을 잡았다.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로 총수인 이재용 회장에게 구속, 353일간 수감, 집행유예 석방, 207일간 재수감, 가석방이 이어졌다. 역대 정권들은 사법 리스크를 떠안은 삼성에 대규모 투자와 채용 등을 요구했고 이런 약속들은 현재 삼성에 큰 청구서로 남아 있다. 특히 지난 2019년 ‘종합 반도체 강국’ 목표를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삼성이 부랴부랴 발표한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 목표는 경쟁사인 대만 TSMC를 크게 자극했고 결국 대규모 투자로 이어져 삼성이 경쟁에서 더욱 밀리는 패착이 됐다.

삼성이 휘청이는 사이 TSMC는 ‘이건희 정신’으로 무장한 채 무섭게 뛰어, 2021년 이미 시가총액으로 삼성전자를 넘어섰다. TSMC 창업자인 모리스 창(93)은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 경영권을 이어받은 1987년 회사를 세웠다. 당시 이 회장과의 친분으로 한국의 삼성 반도체 공장을 돌아본 창 회장은 “메모리를 하려면 자본과 인력이 많이 든다”는 이 회장의 설명에 메모리 사업 구상을 접고 파운드리에 전념했다. 실제 업계에서 요약하는 ‘스케일 업(규모 확대)’, ‘위기 돌파’, ‘선제적 투자’와 같은 창 회장의 경영 철학은 이건희 회장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답습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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