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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캐스팅보트 쥔 국민연금
3분기 내 일부 지분 매도 정황, 보유 지분 7.83%→7.48%
금감원의 고려아연 유증 조사 결과에 따라 의사권 행사 방향 결정
고려아연 이사회가 지난달 말 유상증자를 결정한 가운데, 매년 고려아연 주주총회에서 찬성표를 던져 온 국민연금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상증자 공모가 고려아연의 지분 가치를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에 국민연금의 행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는 한편, 국민연금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눈치만 보다가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고려아연 '기습 유상증자' 주주 지분가치 훼손
6일 유가증권(코스피)시장에서 고려아연의 주가는 전일 종가(125만7,000원) 대비 14만7,600원 내린 110만9,400원에 거래되고 있다.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매수 결과를 발표한 직후인 지난달 29일 주가가 154만3,000원으로 52주 신고가를 달성한 것을 고려하면 6거래일 만에 무려 30% 가까이 떨어졌다.
시장은 고려아연 주가의 급감 원인이 고려아연 측의 유상증자 결정에 있다고 지적한다. 앞서 고려아연 이사회는 오는 12월 3일부터 이틀 동안 2조5,000억원 규모의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진행한다고 지난달 30일 발표했다. 하지만 발행가액을 전 거래일 달성한 52주 신고가 대비 56.6% 낮은 67만원으로 설정하면서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를 크게 훼손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상태다.
국민연금, 일부 고려아연 주식 처분
이 때문에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국민연금도 고려아연의 무리한 결정을 감안해 앞으로 열릴 주주총회에서 고려아연의 안건에 반대표를 던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국민연금은 지난 5년 동안 고려아연의 주주총회에서 회사 측 안건에 대부분 찬성표를 던져왔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이 이번 유상증자에 관여한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에 현장검사를 진행하며 부정거래 가능성을 제기한 만큼 더 이상 찬성표를 주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이미 3분기 내 7만1,766주가량을 매도해 차익을 일부 실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30일 국민연금이 공시한 고려아연 주식은 154만8,609주(7.48%)로, 지난 6월 30일 기준 보유 주식 162만375주(7.83%)에서 0.35% 줄어든 수치다. 국민연금이 정확히 올해 3분기 중 언제 고려아연 주식을 처분했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으나, 50만원대 안팎이었던 고려아연 주가가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의 공개매수가 시작된 9월 13일부터 60만원 이상으로 오르기 시작한 점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차익을 봤을 것으로 보인다.
5년간 고려아연 손 들어준 국민연금, 등 돌릴까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결정이 주주가치를 훼손한 결정이라는 점에 국민연금도 이견이 없는 만큼, 운용원칙상 수탁자책임원칙에 따라 안건을 처리할 가능성도 크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활동에관한지침 제6조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 결정하기 곤란하다고 판단하거나 혹은 수탁자책임위원회에서 자체 판단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안건들에 대해선 콜업(요청)하면 수책위에서 안건을 다룰 수 있다. 수책위는 기금이 보유한 상장주식에 대한 주주권 및 의결권 행사와 책임투자 관련 주요 사안을 검토·결정한다.
수탁자책임원칙에 따라 국민연금이 MBK·영풍 연합의 손을 들어주기도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향후 외국 자본에 고려아연을 매각할 것이라는 등 MBK·영풍 연합에 대한 비우호적 여론이 조성돼 있는 상황에서 국민의 돈을 모아 운용하는 기금이 이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기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원칙에 의하면 기금은 투자대상 주식 등에 대한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서 재무적 요소와 함께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단순투자 목적으로 기업에 투자해도 수익성 외 공공성, 지속가능성 등을 고려해 기금을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국민연금은 기존 주주 권익을 크게 침해했다는 시장 안팎의 비판 목소리도 흘려 듣기 어려운 입장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8월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안건에 대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크다"고 이유를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유상증자는 공개매수 가격인 주당 89만원보다도 저렴한 67만원의 낮은 발행가로 진행된다. 또 주주배정이 아닌 일반 공모 방식을 택해, 기존 주주 주식에서 할인된 이익은 모두 신규 투자자에게만 돌아가게 됐다.
이와 관련해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주당 가격이 67만원으로 현 시가보다 턱없이 낮은 가격으로 할인 발행할 경우 기존에 발행된 주식 가치는 희석될 수밖에 없다"며 " 할인된 만큼 누군가에게 이익이 돌아가는데, 그 이익이 주주 우선이 아닌 외부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시장에선 심각한 주주 권익 침해라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민연금 내부적으로도 주주 권익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공개매수 당시 어느 쪽이든 청약하며 빠르게 투자금을 전부 회수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미 공개매수로 대규모 차익 확보가 가능했던 기회가 있었음에도 회수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은 본연의 목적인 투자금 회수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만 150만원대에서 110만원대로 떨어진 고려아연의 주가는 MBK·영풍 연합이 법원에 제기한 유상증자 중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경우 다시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MBK·영풍 연합은 공개매수를 마무리하고 장내 매수를 통해 고려아연의 의결권을 확보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