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대중 관세율 10% 상향하며 견제 조치 강화 캐나다·멕시코엔 예정대로 25% 관세 적용 다음 달 2일부터 부과하는 상호관세 재확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와 멕시코산 제품에 대해 예정대로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당초 펜타닐 유입 등 국경 안보 강화에 대한 협력을 조건으로 한 달간 관세 부과를 유예했으나, 최근 "더는 논의할 여지가 없다"며 조정 가능성을 일축했다. 중국산 제품에 10% 추가 관세 부과도 예정대로 시행한다. 이는 지난달 부과한 10%의 대중국 추가 관세에 10%를 더해 총 20%포인트 인상한 관세를 적용하는 조치다.
"더 이상의 유예 조치 없다, 4일부터 시행될 것"
3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열린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의 미국 반도체 생산설비 투자 계획 발표식에서 '멕시코와 캐나다에 부과하기로 한 25% 관세가 조정될 가능성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협상의 여지가 없다"며 "내일부터 예정대로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해야 할 일은 미국 내에 자동차 공장과 기타 시설을 건설하는 것뿐"이라며 "그렇게 하면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를 20%포인트로 상향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그는 지난달 1일 합성마약 펜타닐 등의 유입을 이유로 중국에 10%포인트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는데, 이 행정명령에 수치를 개정해 20%포인트로 관세율을 올린 것이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산 제품에도 추가로 관세를 부과한다"며 "이번 행정명령으로 기존 10% 관세를 상향해 20%를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당초 트럼프 2월 4일부터 멕시코·캐나다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멕시코와 캐나다가 불법 이민과 마약 단속 등을 위한 국경 안보 강화에 협력하기로 하자 두 나라에 대한 25% 관세를 1개월 유예하고 중국에 대해서만 지난달 4일 10% 추가 관세 부과를 발효시켰다. 각국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와 비관세 장벽 등을 고려해 적용하는 상호관세도 다음 달 2일부터 부과할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美 우선주의 투자정책 도입해 中 자본 투입 막아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견제책을 연이어 내놓으면서 미국 내부에서도 미·중 관계 악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 우선주의 투자정책' 각서는 지금까지 나온 정책 중 가장 강력한 조치로 꼽힌다. 지난달 21일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에 전략적 분야에 대한 중국의 투자를 제한하도록 지시하는 국가안보 대통령 각서(NSPM)에 서명했다. 지난 2022년 조 바이든 전임 대통령이 CFIUS의 심사 강화를 통해 중국의 첨단 기술 분야 투자를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더욱 확대한 것이다.
이번 각서는 "모든 투자가 항상 국익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 "중국 등 일부 적대국들이 첨단 기술·지적 재산·전략 산업에서 미국 기업과 자산에 대한 투자를 체계적으로 지시·촉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은 눈에 보이거나 은폐된 방식으로 다양한 전략을 활용하며, 종종 파트너 기업이나 제3국의 투자 펀드를 통해서도 접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백악관 관계자는 "중국이 미국의 군사·정보·안보 부문에 자금을 지원해 대량살상무기, 사이버 전쟁 등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의 핵심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CFIUS에 기술·핵심 인프라·의료·농업·에너지·원자재 등 전략 부문에서 중국의 투자를 제한하도록 명령했다. 둘째,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의 투자는 '패스트트랙' 절차를 도입해 촉진하기로 했다. 특히 10억 달러(약 1조4,600억원) 이상 투자의 경우 환경 검토를 신속히 처리하기로 했다. 셋째, 민감 시설 인근의 '미개발 투자' 및 부동산 거래에 대한 CFIUS의 권한을 강화했다. 넷째, 미국 거래소에 상장된 외국 기업에 대한 감사를 강화하고, 적대적 외국 기업의 연금 플랜 기여금 수령 자격을 제한하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조선·해운 산업을 겨냥한 조치도 내놨다. 지난달 21일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 선사 및 중국산 선박과 관련한 국제 해상 운송 서비스에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공고했다. 미국 항구 입항 시 최대 100만 달러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순선박 용적에 대해 톤당 최대 1,000달러의 추가 비용을 물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아울러 USTR은 미국산 제품의 미국 선박 이용을 촉진하기 위해 미국 제품의 해상 운송 가운데 최소 1%는 미국 선사가 운영하는 미국 선적 선박을 통해 수출하도록 했다.
韓·日·유럽 동맹국에 中 견제·압박 요구할 수도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소식에 간밤 뉴욕 3대 지수가 급락하고 '트럼프 트레이드' 대표 종목인 비트코인도 하루 사이 9% 가까이 고꾸라지는 등 세계 자산시장도 크게 출렁였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1.48%(649.67포인트) 내린 43191.24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 지수도 1.76% 내린 5849.72, 나스닥 지수는 2.64% 내린 18350.19에 장을 마감했다.
뉴욕 증시가 출렁임에 따라 아시아 증시도 휘청이고 있다. 4일 코스피는 전장 대비 10.58포인트(0.42%) 하락한 2522.20에 장을 시작해 이후 반등, 오전 11시 현재 0.25% 하락한 2526.55를 나타내고 있다. 개인 투자자만이 495억원 순매수를 기록하며 지수를 방어하는 양상이다. 일본 증시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도 전장 대비 0.67% 하락한 37532.01로 시작해 오전 11시 현재 낙폭을 2.29%까지 키웠고, 대만 가권지수도 1.09% 하락 시작해 1.36%로 더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초비상이 걸린 국내 기업들도 멕시코 공장 가동률을 낮춰 재고를 최고 수준으로 조절하는 등 일제히 '플랜B' 카드를 꺼내 들고 나섰다. 현재 삼성전자, LG전자, 기아, 포스코 등 200여 국내 기업이 멕시코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멕시코 대신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세탁기 공장 등에서 생산량 확대를 추진 중이며, TV·냉장고 등도 베트남·헝가리 등에서 우회 수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LG전자는 중남미 물량만 소화하는 수준으로 멕시코 가전 공장의 생산량 조정을 검토 중이다.
전문가들은 미 정부가 중국 견제에 있어 한국에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대니얼 스나이더 스탠퍼드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강력한 반중 정책을 갖고 있음이 분명해졌다"며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중국과 오랫동안 깊은 관계를 맺어온 한국, 일본, 유럽에 대한 압박이 강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같은 대중 압박∙견제 동참 요구는 비단 경제·기술 분야뿐 아니라 국방 등 더 광범위한 분야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며 "한·미 동맹이 이슈 중심의 거래적 틀로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