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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우크라 광물 수입 50% 공동기금으로 운영하기로 美·우크라 간 정상회담 결렬 후 광물협정 체결도 불발 트럼프, 전쟁 지원 대가로 광물 자원 확보 의지 드러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를 전면 중단할 것을 지시하면서 미·우크라이나 관계가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 이번 결정은 양국 간 광물 협정 체결이 불발된 직후 나왔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평화에 대한 약속과 원조에 대한 감사를 표할 때까지 지원을 재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전쟁 지원의 대가로 우크라이나의 광물 자원 확보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가운데 러시아 측도 전쟁을 통해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광물 지분을 미국에 제공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제 사회의 에너지 안보 경쟁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美, 광물협정 결렬 후 젤렌스키 사임론까지 언급
3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T),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원조를 전면 중지할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이 '평화를 위한 성실한 약속(a good-faith commitment to peace)'을 입증했다고 판단될 때까지 운송 중인 물자를 포함해 모든 군사원조를 멈추라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침이다. 독일 킬(Kiel) 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2022년부터 약 3년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금액은 약 1,197억 달러(약 174조5,000억원)에 이른다.
당초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광물·탄화수소·석유·천연가스 등 국유 천연자원의 채굴과 액화천연가스(LNG)·항만 등 천연자원 관련 인프라에서 얻는 수익의 50%를 양국이 공동 조성하는 재건투자기금(Reconstruction Investment Fund)에 납입하게 하기로 했다. 지난달 28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광물협정에 서명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지만, 정상회담 당일 두 정상이 고성으로 언쟁을 벌이면서 종전안을 둘러싼 파열음을 노출했고, 결국 예정했던 광물협정 체결도 불발됐다.
회담 불발 후 양측의 반응도 엇갈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파국으로 끝난 정상회담의 후폭풍을 수습하기 위해 미국을 향해 화해의 손짓을 보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 등 기존 요구 사항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진짜 문제'를 풀어가고 싶다고 발언 수위를 조절했다. 지난 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유럽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미국과의 관계가 계속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우리는 광물협정에 서명할 준비가 돼 있고 미국도 준비가 돼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3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전쟁 종식이 매우 매우 멀었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을 공유하며 "그가 할 수 있는 최악의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이 지원하는 한 평화가 오기를 원하지 않으며 미국은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라며 "유럽 정상들도 미국 없이는 우크라이나를 지킬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마이클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며 최근 미 공화당을 중심으로 제기된 젤렌스키 대통령의 사임론에 대해 언급했다.

트럼프 "광물협정은 美에게 매우 훌륭한 거래"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중심으로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공개 비판과 사임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의 광물협정을 계속 추진할 것이란 의지를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광물 협정은 중단됐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광물협정은 우리에게 매우 중대하고 훌륭한 거래"라고 답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한 대가를 희토류 등 천연 광물 자원으로 돌려받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어리석게도 3,500억 달러를 우크라이나에 쏟아부었지만, 미국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며 "그 돈이 있었다면 미 해군을 재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희토류가 필요하고, 지금 하는 일은 그 모든 것을 되찾는 과정"이라며 "반도체를 비롯해 산업 전반에서 희토류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협상 재개 가능성에 대해선 "그는 미국에 더 감사해야 한다"며 "미국은 언제나 그들과 함께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중단을 고려하느냐'는 질문에는 "현재로서는 논의된 바 없다"면서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한번 지켜보자"며 여지를 남겼다. 그러면서 4일 밤 9시로 예정된 미 의회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광물협정과 관련한 발표가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그는 "아마 내일(4일) 밤 대단한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며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넘겨주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국제사회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강대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을 희생시키는 비윤리적인 거래, 이른바 '더티 딜(Dirty Deal)'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을 배제한 채 러시아와의 직접 협상을 추진하고, 우크라이나 천연 광물 자원의 50%를 요구한 데 이어 협상 결렬 후 군사 원조 중단까지 거론한 점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미국이 경제·군사적 영향력을 앞세워 우크라이나가 불리한 협상을 받아들이도록 압박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형적인 협상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우크라 자원 점령 가능성에 주요국 우려 깊어져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종전 협상 과정에서 자신들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 내 주요 광물 자원의 개발권을 미국에 넘길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 NBC방송은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지난달 1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미·러 장관급 회담에서 러시아 측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매장된 광물 자원의 지분을 미국에 양도하거나 공동 개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이어 같은 달 24일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과의 희토류 개발 협력을 공개 제안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이에 대한 협력 의사를 내비쳤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특별군사작전 개시 이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루한스크(돈바스), 자포리자, 헤르손 지역을 점령하고 있다. 이 가운데 돈바스 지역은 전통적인 석탄 산업의 중심지로 희토류를 비롯해 우라늄·티타늄 등 전략적 광물 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 싱크탱크 세크데브(SecDev)에 따르면, 러시아가 압수한 광물 매장량의 가치는 12조4,000억 달러 규모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자원 공동 개발을 제안함으로써 우크라이나가 머뭇거리는 틈을 파고들어 거래에 능한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광물 자원을 두고 미국·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설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종전 협상은 한국의 희귀가스 공급망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까지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네온·제논·크립톤 가스의 20~30%가량을 우크라이나로부터 들여왔다. 2021년 기준 전체 희귀가스 수입량 중 우크라이나산 비중은 네온 23%, 제논 30%, 크립톤 18%였다.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산 희귀가스 수입이 중단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산으로 대체했으나, 공급 불안정 문제에 시달려야 했다.
미국·우크라이나 협상의 결과는 서유럽의 에너지·자원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WP)는 "서유럽 국가들은 자원 강국인 러시아·중국에 맞서 우크라이나의 자원을 공동 개발하는 방식을 모색해 왔다"며 "주요 에너지와 광물 공급원을 신속하게 다변화할 수 없다면 러시아·중국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어 에너지·자원 무기화가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최악의 경우 영토를 상실한 채 자원에 대한 접근을 완전히 차단당한 뒤 약소국으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