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불확실성 부각’ 美 증시 급락 글로벌 투자자금 미국 시장 외면 트럼프, 대중국 투자 제한 움직임

지난 2년간 글로벌 증시를 주도해 온 미국 증시가 최근 약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자금이 미국을 이탈하는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종잡을 수 없는 관세 정책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 경기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도 투심 냉각을 더욱 부추기는 양상이다.
투자자들, 美 증시서 이탈
6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가 대규모 관세 정책을 시행하자 투자자들은 미국이 아닌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USMCA 규정을 준수하는 모든 멕시코산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25% 관세를 4월 2일까지 면제한다고 밝혔다. 전날 캐나다와 멕시코 산 자동차에 대한 한 달 관세면제를 발표한 이후 다시 새로운 내용을 발표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였다.
관세 유예 자체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뉴욕 증시는 이 소식에 투매로 대응했다. 트럼프의 정책이 그 영향력에 비해 지나치게 가변적이라는 점이 오히려 불안감을 자극한 것으로, 유럽과 중국이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펼치는 상황에서 미국 내 경제 신뢰도는 흔들리는 모습이다.
이런 와중에 미국 경제도 상황을 받쳐주고 있지 않다. 2월 셋째주(16~22일) 미국의 주간 신규실업수당 청구건수는 24만2,000건으로 전주 대비 2만2,000건 증가했는데, 이는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에 미국 증시에 대한 기대감도 낮아지고 있다. 실제로 올해 들어 유럽 유로스톡스(EURO STOXX)는 9% 상승했고, 홍콩 증시에 상장된 기술주들은 30% 가까이 급등했지만,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1.8% 고꾸라졌다. 특히 미국의 은행업종은 올해 들어 8% 하락한 반면, 유럽 은행업종 지수는 15% 상승하며 상반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를 두고 미국 자산운용사 스테이트스트리트 글로벌마켓의 팀 그라프 유럽·중동·아프리카(EMEA) 지역 거시전략책임자는 "전 세계가 이제 미국 모델이 변화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며 "미국은 더 이상 예전처럼 신뢰할 만한 무역 파트너가 아니며 각국은 자국의 경제 방어에 집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외환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로화 가치는 4개월 만에 처음으로 1.07달러를 돌파하며 강세를 보였으며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기존의 유로화 약세 전망을 철회하고 있다.

美 불확실성에 유럽·중국으로 포트폴리오 조정
이에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국 자산을 선호하던 투자자들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부터 유럽과 중국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있다. 로이터는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자료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달러 강세를 예상한 투자자들의 순매수 포지션이 절반 이상 줄어든 160억 달러(약 21조4,000억원) 수준으로 축소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유럽 증시로 향하는 자금들의 속도가 빨라졌다. 시장정보업체 EPFR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유럽 주식 펀드로 60억3,000만 달러(약 8조7,000억원)가 순유입됐다. 같은 기간 미국 주식펀드에서 56억6,000만 달러가 빠져나간 것과 대조적이다. 유럽 주식 펀드로 향하는 증시 자금은 직전 주의 33억 달러에서 두 배가량 불어났다.
중국의 경우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발 호재까지 맞물려 글로벌 투심을 자극하는 모양새다. 블룸버그 데이터에 따르면 딥시크가 가성비 대규모언어모델(LLM) 'R1'을 출시한 지난달부터 약 17개 기술기업이 홍콩에서 주식 발행이나 2차 공모를 통해 총 520억 홍콩달러(약 9조6,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이는 1월에 조달된 72억 홍콩달러(약 1조3,000억원)와 비교해 6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런 흐름은 중국 본토의 규제 단속과 부진한 소비자 지출로 인해 약세를 보였던 중국 기술주에 대한 투자자 수요가 다시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전쟁 우려로 인한 미국 주식시장의 불확실성이 투자자들로 하여금 글로벌 경쟁사 대비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중국 기술주로 자금을 분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관세전쟁'에 이은 '투자전쟁'
상황이 이렇자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대중국 투자 제한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말 재무부를 포함한 여러 정부 부처에 중국 투자에 대한 신규 또는 확대 제한을 검토하라는 각서를 발표했다. 이 검토는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면제됐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하며, 사모펀드(PEF)와 벤처캐피털(VC), 상장 증권 투자까지 포함할 가능성이 있다.
특기할 만한 점은 이번 각서가 연기금과 대학 기부금의 투자 출처를 처음으로 언급했다는 것이다. 그간 일부 미국 정치인은 이들 기관이 중국 기업에 지나치게 많은 자금을 지원한다고 비판해 왔다. 미국 무역단체 퓨처유니온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공적 연금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중국 기업에 688억 달러(약 99조5,0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일부 미국 주는 이미 중국 투자를 청산하도록 지시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최근 조치는 이러한 투자 회수에 더 큰 긴급성을 부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투자 제한을 고려하는 분야는 광범위하다. △첨단 제조업 △생명공학 △극초음속 △항공우주 △지향성 에너지는 물론, 미국이 '군사-민간 융합 전략'이라고 부르는 것과 관련된 기타 분야들도 포함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 미국 내 외국인 투자 위원회(CFIUS)에 의료, 농업, 에너지, 원자재 및 미개발 지역 구매를 포함한 전략적 분야에 대한 중국의 투자를 제한하도록 지시했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반도체, AI, 양자 컴퓨팅 부문에 대한 미국의 투자를 위한 심사 프로그램을 수립했고, 올해 1월 2일부터 발효됐다. 그러나 이 규정에서는 상장 증권 및 파생상품을 제한 조항에서 제외했다.
이에 중국 측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미국이 국가안보의 개념을 과도하게 확대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에 투자하는 중국 기업의 신뢰를 떨어뜨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허리펑 중국 부총리는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에게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관세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으며,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건설적인 대화를 통해 양국의 이견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국 간 경제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글로벌 투자자들은 미·중 관계의 변화와 그에 따른 투자 환경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