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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자강' 시동 거는 EU, 국방비 증액에 유럽군 창설 논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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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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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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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폭주에 대서양 동맹 균열
EU 1259조원 '재무장 계획' 합의
"방위비 막대하게 증액" 성명 채택

유럽연합(EU)이 자체 국방력 강화를 위한 대규모 재정 투입에 나서고 있다. 유럽의 이 같은 행보는 사실상 독자 노선 채비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러시아와 밀착 행보를 보이며 군사적 지원 없는 종전을 추진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 가능성까지 시사하자 자강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힘의 외교'가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는 가운데, 유럽도 미국 없이 독립적인 안보 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라 있다.

EU 국방비 지출 'GDP 0.5%' 수준 확대 전망

9일(이하 현지시각) 골드만삭스 보고서에 따르면 EU 회원국들은 2027년까지 연간 국방비 지출을 800억 유로(약 126조원)씩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전망이다. 이는 EU GDP(국내총생산)의 약 0.5%에 해당하는 규모다. 국방에 100유로를 지출할 때마다 GDP가 약 50유로 증가한다는 의미다. 유로 지역의 국방비는 2024년 GDP의 1.8%를 차지했는데, 골드만삭스는 2027년까지 이 비율이 2.4%로 증가할 것으로 관측했다.

앞서 EU 27개국 정상들은 지난 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특별정상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유럽 안보와 방위에 대한 지출을 계속해서 막대하게 증가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정상들은 성명에서 “전략적 의존성을 줄이며 (회원국 간) 중요한 역량 격차를 해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략적 의존성을 줄이겠다는 건 현재 유럽 안보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에 기대는 걸 줄이자는 말이다. 트럼프 행정부 등장 후 미국이 유럽 안보에서 발을 뺄 가능성을 염두에 두자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위해 정상들은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에 모든 회원국 차원에서 국방비를 대폭 증액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조처를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지난 4일 ‘유럽 재무장 계획(REARM Europe Plan)’을 27개 회원국 정상에게 제안했다. 유럽 대륙 내 방위 투자를 위해 최대 8,000억 유로(약 1,259조원)를 동원해 재무장에 나선다는 계획이 골자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독일에서 나타나고 있다. 차기 총리인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는 최근 군비 확대 등을 위해 10년간 총 5,000억 유로(약 788조원) 규모의 특별기금을 조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의 부채 한도 규정에서 국방비는 예외를 인정하도록 헌법도 바꾸겠다고 했다. 독일 재무장을 막던 걸림돌이 제거되는 셈이다. 이 정책이 시행된다면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은 예상보다 빠른 GDP 성장률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안토니오 코스타 EU 이사회 의장, 우르줄라 폰 데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EU 이사회

복지 예산 축소해 군사력 강화

러시아의 위협과 미국 고립주의 강화로 자강 안보가 절실해진 EU는 막대한 방위비를 복지 예산으로 충당할 전망이다. 지난 1월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EU 회원국을 향해 "복지 예산 일부를 국방 예산에 쓰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발언은 트럼프 체제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나토 회원국을 향해 GDP 대비 5%까지 국방비 지출을 늘리라고 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를 핑계로 나토 체제에서 이탈하거나 기존 질서를 뒤흔들 수 있는 만큼 미국에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추자는 취지다.

유럽은 전 세계 인구의 7%만을 차지하는 작은 대륙이지만, 세계 경제 생산량의 4분의 1(25%)을 만들어내면서 전 세계 사회복지 지출의 절반(50%)을 사용하는 불균형적 상황에 처해 있다. 이를 두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의 복지국가는 20세기 후반 특수한 역사적 조건에서 형성된 것으로, 나토를 통한 미국의 암묵적 보조금이 유럽 정부들이 복지에 더 많은 예산을 쓸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 속 유럽의 복지 지출 부담은 인구 고령화로 더욱 가중되고 있다. 1972년 영국에서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3%였던 것에 비해 현재는 약 20%로 증가했다. 프랑스도 비슷한 수준이며 독일은 이보다 더 높다. 이에 대해 FT는 "유럽이 알고 있는 복지국가는 어느 정도 후퇴해야 한다"며 "그것은 100세까지 사는 것이 진부한 세상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뤼터 사무총장은 나토와 EU를 더 긴밀하게 연결하자고도 제안했다. EU는 경제 동맹이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안보 상황이 바뀐 만큼 협력 분야를 더 확대하자는 것이다. 이는 EU 집행위원회가 국방 담당 집행위원을 신설하는 등 나토와의 업무 중복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더 효율적으로 일하자'는 뜻이기도 하다. 이미 양 기관의 군사 협력 규모는 커지고 있다. 앞서 안토니오 코스타 EU 이사회 의장은 2월 열린 유럽 방위 관련 비공식 회의에 뤼터 사무총장을 초청한 바 있다.

'유럽군 창설' 목소리 확산

유럽 내 자강론이 커지는 가운데 EU 회원국들은 다시 '유럽군' 출범 필요성을 강조하며 본격적인 홀로서기도 논의하고 있다. 유럽이 미국 등 다른 열강과 별도로 통합 상비군을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은 19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나왔으나 자금 문제 등으로 계속 무산됐다. 또한 트럼프와 달리 이전 미국 행정부들은 유럽군 창설이 나토의 위축과 동시에 미국의 영향력 감소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던 만큼, 유럽군 창설 논의는 그야말로 지지부진했고 개념적 논의 차원에 머무르는 데 그쳤다. 하지만 유럽 각국은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불법 합병하면서 위기를 느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각국에 나토 방위비 분담금을 늘리라고 거세게 압박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에 프랑스는 트럼프 1기 정부가 유럽 동맹과 거리를 두자 2018년 유럽군 창설을 다시금 촉구했으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인 2022년 3월에도 EU 군대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최근 들어서는 자국 핵무기로 다른 유럽 국가들도 지켜주는 '핵우산론'을 띄웠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5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러시아가 북한과 이란을 우크라이나 침공에 끌어들이며 유럽에 심각한 안보 위협을 제기하고 있지만, 미국이 이 전쟁에 대한 입장을 바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등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점점 더 위험해지는 세계에서 프랑스는 방관자로 남아 있을 수 없다"며 "유럽의 미래가 미국과 러시아에 의해 결정돼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프랑스가 유럽 안전 보장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미다.

독일에서는 다수당인 기독민주당을 중심으로 징병제를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14년 만에 나왔다. 2011년 모병제로 전환한 뒤 국방력이 크게 약화된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주독 미군 철수까지 언급하자 대응책 모색에 나선 것이다. 독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1,000억 유로(약 157조5,000억원)의 특별 국방 예산을 편성하고, 입대 장려 프로그램도 강화했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는 인식이 크다. 폴란드도 연말까지 남성 전체에 대한 군사훈련 의무화를 추진하면서 자체 핵무기를 보유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7일 의회 연설에서 “15만 명 안팎 수준인 병력을 50만 명으로 늘리겠다”며 “자체 핵무기를 보유한다면 더 안전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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