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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후 국민연금 수급 개시까지 소득 단절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 OECD 중 가장 높아 청년 채용 줄지 않도록 정부 지원방안 필요

국가인권위원회가 법정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늘려야 한다고 권고했다. 노인 인구 1,000만 시대에 노후 빈곤의 제도적 사각지대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인권위 “정년 60세→65세 늘려야”
10일 인권위는 지난달 국무총리와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법정 정년 연장 추진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법정 정년 60세와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인 65세 사이의 간극으로 5년 이상 소득 단절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는 개인의 경제적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문제”라고 짚었다.
아울러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과 고용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점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일할 수 있는 가동연한을 기존 60세에서 65세로 상향 판결한 점(2019. 2. 21. 선고 2018248909) △OECD ‘2024년 한국경제보고서’에서 60세로 규정돼 있는 한국 법정 정년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밝힌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인권위는 법정 정년 연장이 청년층 채용 감소 등 부정적 영향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정부가 노동시장 실태조사 결과, 법원의 판례 등을 바탕으로 고령 근로자 고용 연장에 따른 기업의 인건비 증가 부담과 정년 연장 시 동반되는 고령 근로자의 임금 감소 부담을 완화할 수 있도록 임금피크제도의 실효적 운용 방안을 비롯해 정부의 필요한 지원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70세까지 일하는 일본
실제로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과거 60세였으나 연금개혁으로 2013년 61세로 높아졌고, 이후 5년마다 1세씩 높아지고 있다. 올해는 63세부터 국민연금을 받고, 2033년부터는 65세가 되어야 연금을 받는다. 65세 이상 고령자 고용률은 2023년 기준 37.3%로 OECD 회원국 중 1위로,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 반면 60~64세 고용률은 2019년에 12위에 그쳤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60~64세 고용률 증가 폭은 덴마크 13.3%포인트, 독일 8.4%포인트, 일본 8.1%포인트 등을 기록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이들 국가의 고용률이 높은 건 연금 수급연령을 65세 이상으로 늦추거나 고령층 고용 활성화 정책을 적극 추진한 것이 원인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 법정 정년 나이는 60세지만 근로자가 원하면 무조건 65세까지 일할 수 있다. 사실상 정년을 연장한 셈이지만 노동시장에 유연성을 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었다.
일본은 1998년 60세 정년 의무화 이후 줄곧 법정 정년을 60세로 유지하고 있다. 고령자가 많아지면서 이들의 일자리가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정년연장보다는 일단 퇴직 후 재고용하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을 늘렸다. 기업의 임금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조치였다. 근로자가 법정정년에 이르면 기업과 근로자는 고용확보조치에 따라 근로조건을 다시 정해 재고용된다. 2020년에는 이 재고용 기한을 70세까지 늘리는데 합의했다. 그 결과 일본 기업의 99.7%가 65세까지 계속고용제 도입을 완료했다. 이들 기업 중 정년 후 재고용하는 계속고용 방식을 선택한 곳이 69.2%로 가장 많고, 정년 연장 26.9%, 정년 폐지 3.9% 등이다. 정년을 70세까지 연장한 일본 기업도 29.7%에 달한다.
일본은 또 취업규칙 변경 절차를 개선해 기업이 고용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여지를 만들어 줬다. 근로자 합의 없이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수 없지만, '사회적 합리성이 있는 경우'에는 취업규칙을 바꿀 수 있다. 기업은 이를 통해 고령자의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게 됐고 고령자 역시 양질의 일자리에서 보다 긴 시간 동안 일할 수 있게 됐다.
해외 주요국, 정년 폐지했거나 65세까지 확대
다른 나라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홍콩, 대만의 경우 법정 정년이 65세다. 싱가포르는 현재 62세인 정년을 2030년 65세까지 단계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중국은 남성(60세)이 여성(50세)보다 법정 정년이 10년 긴데, 최근 법정 퇴직 나이를 65세로 높이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유럽의 경우도 최소 정년이 62세 이상이다. 대표적 '복지국가'로 불리는 스웨덴은 기업 상황에 따라 62세부터 68세까지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과 같이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진 독일은 현재 66세인 정년을 2027년까지 67세로 높이는 게 목표다. 스페인 역시 65세 10개월인 현재 정년을 2027년까지 67세로 높일 계획이다. 그리스는 법정 연령이 67세로, 단일 정년으로는 유럽국 중 가장 길다.
인도는 유일하게 공공 부문(60~62세)과 민간 부문(58~62세) 정년이 다르다. 태국은 합의·사규에 따라 정년을 정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인도네시아 법정 정년은 57세로, 남녀 통합 법정 정년이 전 세계에서 가장 짧다.
다만 유럽 내에서도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연금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정년을 연장해 수급 연령을 늦추자는 정부 주장과 이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것이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지난 3월 연금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정년을 연장하는 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진행했는데, 74.5%가 반대표를 던졌다. 연금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프랑스 역시 정부가 62세 정년을 64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전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헌법위원회 합헌으로 정년 연장안이 통과됐지만, 여전히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