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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핵심 쟁점에서 평행선
中 “미국, 시장원칙 위반해”
압박을 넘어선 협박성 메시지도

미국과 중국이 관세를 둘러싼 무역협정을 두고 겉으로 협상 중이라는 메시지를 반복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존심과 체면을 앞세운 전면전을 펼치는 모습이다. 중국은 정부 기관의 공식 보고서를 통해 미국을 정면 비판하며 논리적 반격에 나섰고, 미국은 245%에 달하는 관세 폭탄을 선언하며 강한 압박을 유지하고 있다.
‘협상 중’ 분위기 속에서 중국 책임론 강조
29일(이하 현지시각) 외신에 따르면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전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5배 많은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고 짚으며 “지속 불가능한 125%, 145% 관세를 완화하는 것은 미국의 책임이 아니다”라고 중국의 책임론을 강조했다. 중국이 미국보다 5배 많은 제품을 수출하는 만큼 중국의 대미 관세 125%, 미국의 대중 관세 145%를 완화하는 것은 중국의 행보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의 통화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다소 높아졌던 미·중 무역회담에 대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으로,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국과 (관세) 협의를 위해 매일 접촉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가짜 뉴스”라고 일축했지만, 시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화적 제스처를 위한 것이란 해석이 주를 이뤘다.
베센트 장관은 중국과의 협상 대신 여타 국가들과의 대화에 집중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는 “(맞불 관세를 부과한) 중국은 옆으로 치우고, 다른 나라들과 매우 빠르게 움직일 것”이라며 “많은 아시아 국가가 최고 수준의 방안을 가지고 와 이 ‘공정성의 문제’를 풀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미국과) 첫 번째로 무역 합의를 하는 나라 중 하나가 인도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한다”고도 말했다.
애초 최우선 협상 대상으로 지목되던 일본은 예상보다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모습이다.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재생상은 지난 16일 관세 협의차 미국을 방문했지만, 양국은 뚜렷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 채 일본으로 돌아갔다. 당시 일본 정부는 미국이 제시한 조건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자국 산업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논리로 포장한 대미 비판
이런 가운데 중국은 최근 미국과의 관세 협상 국면에서 기존과는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단순히 감정적 비난을 통한 대응이 아닌, 22쪽 분량의 공식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정책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9일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이 발간한 ‘중·미 경제·무역 관계의 특정 사안에 대한 중국의 입장’ 보고서는 “미국이 시장 경제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는 주장을 골자로 관세 부과가 정당성을 잃었다는 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중국은 보고서 서두에서 “중·미 양국의 경제·무역 협력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지속적으로 개선돼 양국의 경제 사회 발전과 인민 복지 향상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짚었다. 실제로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2001년 이래 지난해까지 미국의 대중국 수출액은 191억8,000만 달러(약 27조2,000억원)에서 1,435억5,000만 달러로 23년 사이 648.4% 늘었다. 이는 같은 기간 미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수출액의 증가 폭(183.1%)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이어 보고서는 미·중 양국이 2020년 1단계 무역협정을 맺었음에도 미국이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한 차례의 무역 갈등을 빚은 바 있는 양국은 약 18개월의 분쟁을 끝마치는 일종의 ‘휴전 협정’을 체결했는데, 중국과 달리 미국은 협정 내용을 충분히 이행하지 않고 있단 주장이다.
심지어 보고서 말미에서 중국은 미국산 제품을 더 수입하려 제품 품질이 너무 낮아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대두와 소고기 등 농축산물을 예시로 들며 “일부 미국 제품은 가격과 안전성 측면에서 경쟁력이 없어 중국 기업이 시장 지향적인 방식으로 수입하려는 의지에 영향을 끼친다”고 짚었다. 미국산 대두, 소고기를 구입하기 위해 비슷한 품질의 남미산 제품보다 50%에 가까운 비용을 추가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양측의 태도는 갈수록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중국은 논리적 정당성을 주장하며 “우린 시장 원칙에 맞게 행동하고 있다”는 입장이고, 미국은 “말장난은 그만하고 행동으로 보여달라”는 식이다.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양보와 절충’은 실종된 채, 각자 자국의 체면과 원칙만을 반복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셈이다.

사실상 ‘무역 금지 선언’으로 치킨게임 돌입
백악관이 공식 발표한 대중 관세율은 최대 245%에 이른다. 지난 15일 백악관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중국은 보복 행동의 결과, 이제 최대 245%의 미국 수입품(중국의 대미 수출품) 관세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이는 앞서 10일 중국산 수입품에 매긴 합계 관세율이 총 145%라고 밝힌 데서 100% 높아진 수치다. 다만 백악관은 245%의 관세를 부과하는 품목 등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현지 매체들은 미국이 중국산 일부 품목에 대해 무역 금지에 가까운 압박을 가하겠다는 선언으로 해석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통적인 관세 협상 수위를 훨씬 넘어서는 강경 조치를 시사하면서 단순히 협상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체계적 전술을 구사하고 있단 설명이다.
중국은 “싸움이 두렵지 않다”며 적극적으로 맞서고 있지만, 사실상 수출 의존형 경제 모델 특성상 타격은 불가피하다는 게 시장 참여자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특히 미국 소비시장은 중국 제조업계에 여전히 핵심 수출 시장인 만큼 장기적인 관세 고착화는 산업 구조 전반에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반대로 “중국산 대체”를 외치는 미국 역시 실제로 저렴한 대안이 빠르게 채워지긴 어려운 실정이다. 관세 인상이 물가 상승 압박으로 이어지고, 이는 소비자 불만을 야기해 정치적 부담 또한 증폭되는 식이다. 양국의 양보 없는 자존심 싸움이 미국에는 인플레이션이라는 부메랑을, 중국에는 일자리 감소와 수출 둔화를 떠안기는 ‘치킨게임’의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게 외교계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