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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의 긴축과 보스턴의 침묵, 미국 지탱하는 ‘지식 기반 경제’ 무너질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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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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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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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지원 축소에 조용한 긴축 시작 
유학생까지 막히며 ‘돈줄’ 끊길 위기
지역사회 경제적 엔진 역할도 중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대학 기조가 갈수록 그 강도를 높이면서 4,000곳이 넘는 미국 내 대학들이 재정 위기에 직면했다. 최근에는 유학생 등록 차단 방침까지 더해지며 여러 명문대가 긴축 운영을 선언했고, 중소규모 대학들은 존립 자체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사태의 여파는 단순히 교육문제를 넘어 보스턴 등 대학 중심 도시의 경제기반까지 위협하는 모습이다.

재정난에 연구 중단 및 해고 속출

22일(이하 현지시각) 외신에 따르면 하버드대학교는 최근 앨런 가버 총장의 급여를 기존 급여의 4분의 3 수준으로 줄이기로 결정했다. 이는 미 정부의 연구비 삭감과 기부금 규제 강화로 재정난에 직면한 대학들이 대대적인 긴축에 들어갔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이와 관련해 호피 후크스트라 하버드 예술·과학대학 학장은 “예전처럼 넉넉하게 연구비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학교가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려면 강도 높은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대학원도 상황은 비슷하다. 하버드 보건대학원은 전체 예산의 절반가량을 정부의 연구비에 의존해 왔으나, 최근 거의 모든 지원이 끊기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당장 신입생 선발 인원을 줄이고, 커피·음식 제공이나 프린터·전화기 등 기본 비용도 크게 줄이고 있다. 하버드 보건대학원 관계자는 “22억6,000만 달러(약 3조160억원)에 달하는 연방정부 연구비 지원이 중단된 데 이어 추가로 4억5,000만 달러(약 6,300억원)가 삭감되면서 연구 중단, 인력 감축 등이 불가피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긴축에 돌입한 대학은 비단 하버드뿐만이 아니다. 컬럼비아대학교는 최근 정부가 반유대주의 논란과 관련해 300여 건의 연구비 지원을 끊으면서 해당 연구에 참여하던 연구원 180명을 내보냈다. 컬럼비아대는 내부적으로 안정화 자금을 마련해 단기적으로 연구를 이어가겠단 계획이지만, 쉽지 않다는 전언이다. 클레어 시프먼 컬럼비아대 임시 총장은 이달 초 현지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재정 부담과 연구 활동에 가해지는 압박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프린스턴대학교 역시 모든 부서에 앞으로 3년 동안 예산을 최대 10% 줄이라고 지시했다. 프리스턴대는 “정부 지원 연구비가 크게 줄고, 기부금에 붙는 세금도 올라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미시간주립대학교도 “정부 정책 변화에 따라 단기, 중기, 장기적으로 재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상황의 심각성을 알렸다.

이 같은 긴축 행렬의 배경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도 높은 압박이 자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초기부터 보수적 가치관과 일치하지 않는 학문 활동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숨기지 않았고, 이는 대학 운영의 자율성과 예산의 탄력성을 무너뜨리는 원인이 됐다. 가뜩이나 줄어드는 학생 수로 재정난을 호소하던 대학들은 ‘재정은 줄고, 규제는 늘어난’ 이중고에 직면한 셈이다.

위태로운 ‘지적 허브’ 위상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하버드대의 외국인 유학생 등록을 차단하겠다고 밝히면서 미국 내 대학들의 위기감은 한층 더 심화하고 있다. 대학의 수익 구조에서 유학생 등록금은 핵심 자금줄이기 때문이다. 이들 외국인 유학생은 내국인 대비 많게는 수배에 달하는 등록금을 지불하면서도 장학금 비율은 낮아 대학 현금흐름의 큰 축을 담당해 왔다.

이처럼 높은 유학생 의존도는 하버드나 MIT, 컬럼비아 같은 상위권 대학일수록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미국 교육부 산하 국립교육통계센터(NCES)에 의면 지난 2023년 기준 하버드대 전체 학생 2만5,000여 명 중 외국인 유학생은 6,800여 명으로 전체의 약 27%를 차지했다. 컬럼비아대의 경우 전체 학생의 39%가 외국인이었고, 전국적으로는 246개 대학에서 유학생 비율이 10% 이상을 나타냈다.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단순히 일부 대학 견제를 넘어 정책적으로 외국인 입학을 통제하고 국경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미 비자 정책 강화와 신원조회 확대 등으로 유학생 감소세가 나타나는 가운데 정부 차원의 직접적 규제까지 겹치면, 미국 고등교육이 전 세계에서 가진 ‘지적 허브’로서의 위상 자체가 흔들릴 것이란 게 교육 현장의 일관된 목소리다.

공실률 치솟으며 지역경제 휘청

더 큰 문제는 대학의 재정 위기가 지역 경제 전체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막대하다는 점이다. 이는 하버드대가 위치한 보스턴 지역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간 하버드는 보스턴 지역 내 최대 고용주이자, 도시 경제의 중심축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최근 하버드가 긴축 운영에 돌입하고 대규모 지출을 축소하면서 인근 상권과 부동산 시장, 연구 단지 전반에 ‘돈이 마르기 시작했다’는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 도시 내 고용과 소비가 모두 위축되면서 지역경제의 모멘텀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는 진단이다.

실제로 하버드대 인근의 생명과학 클러스터는 올해 들어 공실률이 30%를 넘어섰고, 대학과 연계된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들도 투자 유치에 실패하거나 입주가 미뤄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바이오테크, 약학, 의료기기 기업들이 밀집한 보스턴 생명과학 클러스터는 그간 하버드 및 MIT와의 학문적 연계를 기반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R&D) 생태계를 형성해 왔지만, 대학의 위기와 함께 기업 활동 위축을 피하지 못했다.

하버드대와 보스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미국 내 주요 대학들은 오랜 시간 인근 지역 사회의 경제적 엔진 역할을 수행했다. 교수와 학생 등 대학 구성원들의 직접적 소비는 물론 건물 신축, 연구소 운영, 학회 개최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도시의 자본 순환에 깊숙이 관여하는 식이다. 하버드와 컬럼비아 등 유수의 대학들이 긴축에 들어간 것을 두고 미국 교육 시스템의 재정 위기를 넘어 도시와 산업, 국가 경쟁력까지 연결된 ‘복합 위기의 전조’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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