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글로벌 AI 경쟁 구도 속 애플 낙오 조짐 구조적 모멘텀 상실에 따른 투자의견 하향 기술경쟁·정책압박·시장신뢰 3중 위기

인공지능(AI)이 글로벌 경제의 핵심 동력이 된 가운데, AI 경쟁에서 뒤처진 애플이 투자사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M7(마이크로소프트·메타·아마존·알파벳·애플·엔비디아·테슬라) 빅테크 중 성장성 우려 속에 천덕꾸러기가 된 애플은 추천의견 강등이라는 악재까지 더해진 상황이다.
애플 투자 등급 강등
4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애플은 0.22% 하락한 202.82달러로 정규장을 마감했다. 올해 들어 19% 가까이 폭락했다. 시가총액도 3조290억 달러(약 4,109조원)로 줄어 3조 달러를 턱걸이하고 있다. 애플을 포함해 M7 가운데 4개 종목이 올 전체 주가 흐름이 마이너스(-)지만 애플의 낙폭이 가장 크다.
테슬라는 이날 3% 넘게 급락했으나 그래도 올해 주가 낙폭이 17%를 조금 넘었고, 알파벳과 아마존은 각각 11%, 5% 넘게 하락했다. 메타플랫폼스가 17% 상승률로 M7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오름세를 보였고, 시가총액 1위로 올라선 엔비디아는 올해 5.3% 상승했다. 엔비디아에 시총 1위 자리를 빼앗긴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올해 상승률이 10%를 조금 넘는다.
애플은 M7 중 올해 최악의 주가 성적을 내고 있지만 투자은행(IB)은 애플이 여전히 고평가돼 있다고 판단했다. 투자전문매체 배런스에 따르면 니덤 애널리스트 로라 마틴은 이날 분석노트에서 애플 추천의견을 매수에서 보유(중립)으로 강등했다. 또 225달러였던 목표주가는 없앴다. 마틴은 애플의 이번 회계연도 예상 주당순익(EPS) 대비 주가수익배율(PER)이 26배 수준이라며 이는 여전히 높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에서의 판매 부진 등으로 애플의 주가가 더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앞서 유명 증권사 제프리스도 애플의 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올해 초 제프리스는 아이폰 판매의 약세를 반영해 애플에 대한 신용등급을 ‘보유’에서 ‘저조’로 내렸다. 제프리스는 애플의 중국 시장 포지셔닝이 특히 약하다고 보고 있다. 같은 기간 루프캐피탈도 애플의 공급망을 조사한 결과, 아이폰 수요가 상당히 감소할 것을 전망하면서 애플주에 대한 등급을 매수에서 매도로 강등했다.
졸속·악평에 애플 AI 모델 참패
시장이 애플의 주가 전망을 일제히 내려 잡은 건 애플이 AI에 압도적으로 뒤처져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블룸버그는 애플의 AI는 다른 기업에 비해 상당 부분 뒤처져 있다고 혹평했고, 애플 시니어 개발자들조차도 애플이 현재 위기에 처해 있으며 가라앉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애플 수석 부사장인 에디 큐는 아이폰이 노키아를 잡았듯, 10년 안에 아이폰이 사라질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이 같은 비관론 이면엔 애플의 AI 서비스 중 하나인 애플 인텔리전스가 자리한다. 애플 인텔리전스는 오픈AI의 챗GPT 출시 전에는 계획조차 없었던 프로젝트다. 챗GPT가 고공행진하자 당장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플이 지난해 말 부랴부랴 졸속으로 내놓은 AI모델이 애플 인텔리전스다.
그러나 출시 지연부터 시작해 급하게 내놓은 만큼 부작용도 많았고, 오작동과 허위광고 논란까지 빅테크로서는 큰 치욕일 정도로 홍역을 앓았다. 애플 인텔리전스는 패치를 통해 버그가 하나 해결되면 버그 3개가 생기는 등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애플의 AI 역량에 대해 ‘참혹하다’는 표현까지 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종말을 예측하는 현 상황에서 아이폰 하나로, 기술력이 아닌 디자인과 생태계만으로 스마트폰 시대를 군림했다는 오명을 쓰고 있는 형세다.

애플 생태계 강제 개방 위기, 트럼프 관세도 악재
하지만 이런 애플의 자체 생태계조차 강제 개방될 위기다. 지난 3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애플에 아이폰·아이패드 등 애플 기기의 상호운용성을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린 바 있다. EU 집행위는 디지털시장법(DMA)의 취지를 들어 “상호운용성 확보를 통해 개발자에겐 개방적인 환경을, 소비자에겐 선택권을 제공하고, 시장 내 혁신을 촉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애플의 폐쇄적 생태계를 정면으로 겨냥한 조치다.
애플은 곧바로 반기를 들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애플은 지난달 30일 룩셈부르크 EU 일반법원에 집행위를 상대로 소장을 제출했다. 애플은 성명에서 “EU의 명령은 비현실적이고 과도한 비용을 초래한다”며 “민감한 정보가 경쟁사에 넘어가게 돼 개인정보 보호 및 보안에도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애플만을 특정한 규제는 자사 기술 개발 능력을 제한하고, 유럽 소비자에게는 더 열악한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 속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전쟁도 애플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세계 각국에서 수입되는 상품에 대해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뒤, 며칠 후 스마트폰과 일부 전자제품에 대해서는 예외로 지정했다. 그러다 지난달 돌연 ‘해외 생산 스마트폰’에 최소 25%의 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서 "나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아이폰이 인도 혹은 다른 나라가 아닌 미국에서 제조되기를 바란다고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에게 오래전 알린 바 있다"며 "그렇지 않다면 애플은 최소 25%의 관세를 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전문가들은 애플이 해외 생산 기지를 미국으로 이전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댄 아이브스 웨드부시 증권 애널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직후 자신의 투자자 노트에서 “생산을 완전히 미국으로 이전하려면 최소 5~10년이 걸릴 것”이라며 “그럴 경우 아이폰 가격은 3,500달러(약 479만원) 수준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