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의 시대 더 빨라진다”, 전세보증 문턱 ‘집값 70%’로 높아지면 빌라 80% 가입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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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기 만기 빌라 전세계약 10건 중 8건 동일 조건 재계약 시 보증 가입 막혀 빌라 월세화 가속 전망

정부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조건을 '주택가격의 70%'로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가운데, 당장 오는 4분기 만기 전국 연립·다세대(빌라) 전세 계약 10건 중 8건이 기존 보증금으로는 전세보증에 가입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미 역전세난과 전세사기를 계기로 전세 기피 현상이 심화되는 상황 속, 보증 가입 불가 계약이 대거 발생할 경우 빌라 임대 시장은 월세 중심으로 크게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수십 년간 전세가 지배해 온 한국 부동산 시장의 근본적 전환을 보여주는 징후로 평가된다.
빌라 전세 78.1% 보증 절벽 직면
2일 부동산 중개 플랫폼 집토스는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데이터를 바탕으로 올해 4분기 계약이 만료되는 전국 빌라 전세 계약 2만4,191건을 분석한 결과, 기존과 동일한 보증금으로 전세보증 가입이 어려워지는 계약이 1만8,889건(78.1%)에 달한다고 밝혔다. 지역별로 보면 인천이 93.9%로 가장 높았고, 경기도 80.2%, 서울 75.2%가 보증 가입이 불가한 계약으로 조사됐다.
현재 전세보증은 보증금이 '주택가격의 90%' 이내일 때 가입 가능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한국주택금융공사(HF) 규정상 빌라 주택가격은 통상 공시가격의 140%로 인정돼 사실상 보증금이 공시가격의 126%까지면 가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가입 조건이 주택가격 70%로 낮아지면 기준선은 공시가격의 98%로 급격히 내려가며, 많은 계약이 보증 가입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된다.
보증 가입이 불가능해지는 계약들은 전국 평균 3,533만원의 보증금을 낮춰야만 새로운 기준을 충족할 수 있다. 수도권 기준 서울 3,975만원, 경기 3,333만원, 인천 2,290만원 수준이다. 보증보험 가입이 필수인 현재 시장에서 임대인이 보증금을 수천만원 낮추지 않으면 다음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마지막 전세 정리 국면 진입하나
시장에서는 보증 가입 조건이 강화될 경우 가뜩이나 가파른 빌라의 월세화가 더욱 가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2020년 39.4%였던 서울 지역 아파트와 빌라, 단독·다가구, 주거용 오피스텔의 주택 월세(보증부 월세 포함) 비중은 올해 들어 58.8%로 급증했다. 전월세 신고제 도입 전인 2021년 6월 전까지는 주로 보증금을 지키기 위한 확정일자 신고 기반의 집계가 많고, 이에 따라 월세보다 전세의 신고 비중이 높았던 점을 고려해도 큰 폭의 증가다.
2021년 6월 전월세 신고제 도입과 임대차 2법 시행에 따른 전셋값 상승 여파로 2021년 월세 비중은 45.3%로 늘어난 뒤 전세사기와 역전세난의 후폭풍이 몰아친 2022년에는 월세가 51.2%로 과반을 차지했다. 이후 3년간 월세 비중은 7.5%포인트가량 확대돼 전월세 계약 10건 중 6건이 보증부 월세 거래였다.
최근 5년간 서울 주택의 월세 전환은 빌라 등 비아파트가 주도했다. 서울의 빌라 월세 비중은 2020년 29.5%에서 빌라 전세사기의 후폭풍으로 2022년 39.5%, 2023년 48.2%로 증가했고 지난해(54.9%)부터 50%를 넘기 시작해 올해는 7월 현재 월세 비중이 58.4%로 급증했다. 5년 전 대비 거의 2배 수준으로 월세 주택이 늘어난 것으로,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역전세난과 전세사기가 사회문제로 번지며 빌라 등 비아파트의 전세 기피 현상이 심화한 영향이 크다.
이와 관련해 대한주택임대인협회 성창엽 회장은 "전세사기 문제가 터지기 전에는 신축 빌라나 도시형생활주택 등을 중심으로 고가의 전세 수요가 많았지만 지금은 청년층일수록 보증금 반환 사고를 우려해 보증금을 최대한 낮추고 월세 전환을 요구한다"며 "전셋값은 오르는데 보증 가입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전세를 낮추고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전환하는 비자발적인 월세 전환도 많다"고 말했다.
아파트, 시세차익에서 월세 수익 자산으로
이처럼 수십 년간 주택 임대시장을 지배해 온 전세 제도가 급속히 쇠퇴하는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한국 부동산 시장이 근본적인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고 진단한다. 월세 시장의 급속한 확산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고금리 기조의 지속으로 전세자금 대출의 부담이 가중되면서 세입자들이 상대적으로 초기 부담이 적은 월세를 선호하게 됐고, 전세사기의 빈발로 전세 제도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훼손됐다. 여기에 1~2인 가구의 지속적 증가로 금전적 부담이 적은 월세를 선호하는 주거 수요층이 확대됐다.
임대인 측면에서도 월세 선호 현상이 뚜렷하다. 부동산 가격 상승세 둔화로 시세차익 기대가 줄어든 상황에서, 매월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월세가 매력적인 투자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임대인들은 전세보증금 반환 리스크를 회피하면서도 지속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월세를 선호하고 있다.
이러한 월세화 진행 속도는 지역별로 상이한 양상을 보인다.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높은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전세보증금 부담이 가중되면서 월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는 반면, 지방의 경우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역전세 우려로 임대인들이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지방 비아파트의 월세 비중은 83%를 넘어서며 월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서는 빌라뿐 아니라 아파트 월세 투자의 매력도 크게 개선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아파트는 시세차익 위주의 투자 대상으로 여겨져 왔으나, 최근 월세 수익률이 상당한 수준으로 개선되면서 수익형 부동산으로서의 가치가 재평가받고 있다. 서울 기준 소형 아파트의 월세 수익률이 연 3~5% 수준을 보이고 있으며, 수도권 외곽 지역의 경우 5~7%의 수익률도 기대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월세 시장 성장세가 장기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투자자들도 한국의 월세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업형 임대주택 시장의 성장과 함께 월세 투자 환경이 더욱 개선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