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러 동맹 속 높아진 북한 위상, ‘신냉전 구도’ 속 한국·일본은 외교 난제 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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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동맹 내 북한 위상 부각
10년 사이 없어진 ‘회색 지대’
경제·군사 블록 강화 움직임 커져

중국과 북한, 러시아가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를 계기로 한자리에 모여 군사 동맹을 과시했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으로부터 특급 대우를 받으며 북한의 위상이 ‘군사적 전초기지’로 부상했음을 드러냈다. 이는 불과 10년 전 방중 당시의 주변적 위치와 극명히 대비되면서 ‘신냉전 시대’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전략적 동맹 성격 강화
4일(현지시각) 유라시안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외교계에선 중국과 러시아, 북한이 그간 구축해 온 공동전선을 한층 강화하는 단계에 돌입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러시아와 북한은 지난 6월 상호방위 조약을 맺고 상호 군사 지원을 약속했으며, 중국과 러시아는 에너지 무역을 기반으로 협력을 강화해 왔다. 여기에 세 나라 정상의 연이은 회동은 정치·안보 분야에서 사실상 준(準)동맹 관계를 제도화하는 흐름으로 해석된다.
지난 3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중국 승전 80주년 열병식은 이러한 결속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나란히 행진하는 모습은 북·중·러 삼국이 단순한 이해관계를 넘어 공동의 전략적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드러냈다. 외신들은 이 장면을 “새로운 군사 블록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표현하며 앞다퉈 보도했다.
이 같은 결속은 미국·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대응 구도와 맞물리며 새로운 구도를 형성한다. 국제전략연구소(IISS) 분석에 의하면 NATO는 항공모함과 전투기 등 첨단 공군 전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중·러·북은 병력 규모와 핵무기 보유량에서 앞선다. 잠수함 전력은 양측이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 국방부 역시 일찌감치 “중국의 조선 능력이 미국의 200배에 달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내놨고, 이후 태평양 중심 전략과 군비 증강을 가속한 바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북한이 북·중·러 삼각 축에서 ‘사회주의 혁명 동지’로 불리며 최우선 순위의 전략적 동맹으로 자리매김했단 사실이다. 중국과 북한은 최근 회담에서 “우리는 운명 공동체”라고 선언하며 정치·군사적 유대를 강화했고, 시 주석 역시 이번 행사에서 김 위원장을 각별히 예우하며 관계 복원 의지를 명확히 했다. 이는 러시아와의 밀착을 계기로 소원해졌던 북·중 관계가 다시 공고히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양극 체제’ 고착화 조짐
불과 10년 전만 해도 중국은 전략적으로 북한과 거리를 두면서 한국과의 협력을 병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전승절 70주년 행사에 참석했을 당시, 중국은 박 전 대통령을 주요 손님으로 예우하며 한중 관계 개선에 총력을 기울였다. 반면 북한은 행사에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참석하는 데 그쳤고, 의전 서열에서도 변방에 배치됐다. 이와 같은 10년 전의 ‘모호한 삼각관계’는 중국 외교 무대에서 북한의 비중이 훨씬 커지면서 커다란 변화를 맞았다.
그러는 동안 북·중·러를 제외한 국제사회에서도 블록화가 진행됐다. 미국과 NATO는 2022년 유럽·인도태평양을 연계한 전략 문서를 통해 중·러 동시 억제의 프레임을 명문화했고, 미국은 이듬해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연례 정상협의, 미사일 경보정보 공유, 연합훈련 확대 등 제도화에 속도를 냈다. 일본 역시 안보문서 개정으로 ‘반격능력’ 보유를 선언했고, 이후 호주·영국·미국의 AUKUS(2021년)와 상호운용성 협력을 넓혔다. 한국 또한 공급망·반도체·배터리 등 경제안보 의제를 동맹 틀에 결합하며 군사·산업 두 축 모두에서 미·일과 정합성을 높였다.
이 같은 블록화를 두고 외교계에선 “과거의 ‘회색 지대’가 지난 10년간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급격히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북·중·러 측의 상징과 메시지는 ‘내부 결속의 과시’, 한·미·일·NATO 측의 제도화는 ‘상호운용의 일상화’로 수렴했다는 진단이다. 이는 곧 양측이 군사부문에서는 물론 기술·금융·에너지로 전장을 넓히는 전면적 경쟁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한국도 외교적 전략 조율 과제 직면
이처럼 북·중·러 결속이 노골화되면서 일본은 대응책 마련에 분주해졌다. 아사히, 요미우리 등 주요 현지 언론은 미국이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이 스스로 ‘안보 네트워크’를 확대하려는 행보를 보도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지역 안보에 중대한 관심을 갖고 정보 수집과 분석을 강화하겠다”고 밝혔고, 외무·방위 당국 역시 호주·한국·필리핀 등과의 협력 일정을 빠르게 조율하고 나섰다. 이는 북·중·러 결속을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해 미국 중심 억지력에 더해 자구책을 병행하겠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다만 일본의 가장 큰 고민은 미국의 태도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 우선순위’를 낮추고 자국 우선 기조를 강화하면서 아시아 내 다자안보 체제가 흔들린다는 불안감에서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미국의 관세 정책에 반발해 상하이협력기구(SOC) 정상회의에 참석한 사례, 올가을 인도에서 예정된 쿼드(Quad) 정상회의에 트럼프 대통령 불참설이 제기된 상황이 이를 뒷받침한다. 일본은 북·중·러를 견제할 서방 진영의 리더십이 미국에서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점을 가장 큰 변수로 보고 있다.
이에 그 공백을 메우려는 자구책을 하나둘 현실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일본은 호주와 2+2 외교·국방장관 회의를 통해 군사 협력을 과시하고, 이어 나카타니 겐 방위상이 한국 방문을 추진하며 한·일 국방장관 회담을 조율 중이다. 여기에 필리핀까지 포함해 ‘유사 상황 국가 간 협력 네트워크’를 다층적으로 연결하는 움직임 또한 전개 중이다. 북·중·러의 외교적 연대가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일본이 주도적 움직임을 보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중국과의 관계 조율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일본 정부는 오는 10월 한국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중·일 정상회담을 모색하며 갈등 관리와 협력의 균형을 노리고 있다. 이처럼 북·중·러 결속을 견제하면서도 중국과의 완전한 대립을 피하려는 ‘투 트랙 외교’ 전략은 한국 정부에도 요구되는 사항으로, 군사 블록화 흐름 속에서 동북아 외교 지형의 불안정 또한 갈수록 커지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