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나가는’ 이스라엘, 중재국 카타르 전격 공습 “휴전협상 파국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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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하마스 고위 지도자 겨냥 정밀 타격" 트럼프 "미국·이스라엘 목표 진전시키지 않아" 가자지구 휴전 협상 위기 봉착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와 23개월째 전쟁 중인 이스라엘이 카타르 수도 도하에 체류 중인 하마스 지도부를 정밀 공격했다. 이스라엘이 ‘휴전 중재국’인 카타르 본토에서 군사작전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하마스와 휴전 협상도 파국 위기에 처할 전망이다.
이스라엘, 하마스 지도부 표적 공격
9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CNN에 따르면 이스라엘 방위군은 이날 오후 3시 50분쯤 도하에 체류 중인 하마스 최고 지도부 인사들의 주거지를 공습했다. 해당 지역에선 큰 폭발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이 목격됐다. 이스라엘군은 “국내 정보기관 신베트와 협력해 공군이 도하에서 정밀 타격 작전을 수행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밀 무기를 사용했다”며 “하마스 테러 조직을 격퇴하기 위해 작전을 계속 수행하겠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측은 정확한 공격 대상을 밝히지 않았지만, 중동 매체 알자지라는 휴전 협상을 위해 파견된 하마스의 대표단이 이스라엘의 표적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현지 언론은 이번 공격으로 하마스 수석 협상가 칼릴 알하이야(Khalil Al-Hayya)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으나, 하마스는 이날 공격으로 인한 사망자는 없다고 반박했다. 알하이야는 전날에도 셰이크 모하메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카타르 총리와 회담하는 등 휴전 협상을 주도해 온 인물이다.
하마스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정치국 인사들은 수년간 도하에 거점을 두고 활동해 왔다. 카타르는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미국·이집트와 함께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서 휴전을 중재해 온 국가로, 하마스 정치국 본부도 카타르에 있다. 이스라엘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받은 이후 2년간 전쟁을 이어오면서 하마스와 연대하는 친이란 무장세력을 노려 레바논, 시리아, 예멘 등에서 군사작전을 벌였지만 카타르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스라엘은 그간 반복적으로 해외에 거주하는 하마스 지도부를 섬멸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지난 5월에도 이스라엘 카츠 국방장관은 “알하이야를 반드시 제거할 것”이라고 천명했고, 에얄 자미르 이스라엘군 참모총장도 최근 해외에 거주하는 하마스 지도부를 암살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마스 “인질 전원 석방” 선언했지만, 이스라엘 “기만일 뿐”
이번 공습은 미국이 주도해 온 가자지구 휴전 및 인질 석방 중재를 크게 흔들 수 있는 변수로 평가된다. 카타르 공격이 일어나기 일주일 전인 지난 3일에도 이스라엘 총리실은 하마스가 중재국이 제시한 '60일 휴전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히자 “새로운 것이 전혀 없는 선전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총리실은 모든 인질이 석방되고 하마스가 무장 해제되며 가자지구가 비무장화되고 이스라엘이 안보 통제권을 확립하고 대체 민간 행정기구가 수립될 때까지 전쟁을 끝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하마스는 “생존 인질 10명과 일부 시신 송환을 포함한 60일 휴전에 동의한다”며 전쟁 종식을 위한 포괄적 합의에도 임하겠다고 했다. 합의안에는 모든 인질 석방과 일정 규모의 팔레스타인 수감자 교환, 이스라엘군 완전 철수, 국경 개방, 가자 재건 착수가 포함돼 있다. 하마스는 가자 통치를 위해 기술관료로 구성된 독립적 행정기구도 세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의 제안은 또 다른 기만일 뿐”이라며 거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카츠 장관도 “하마스가 조건을 수용하지 않으면 가자시티를 라파와 베이트하눈처럼 잿더미로 만들겠다”고 경고했다. 또한 이스라엘 측은 이번 카타르 공격이 최근 예루살렘과 가자지구 내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보복이라며 작전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공습 동의한 적 없어”
이번 공격에 앞서 이스라엘 당국은 백악관 측에 공격 사실을 미리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공습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9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오늘 아침 미군으로부터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공격 중이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히며 즉시 스티브 윗코프 중동 특사에게 카타르에 경고 통보를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통보가 이뤄졌지만 불행히도 공격을 막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카타르를 미국의 강한 동맹이자 친구로 본다. 이번 일이 그들의 영토에서 발생한 것에 매우 유감”이라며 “모든 인질과 사망자의 시신 인도를 원하며, 전쟁이 지금 당장 끝나길 원한다”고 적었다. 또 공격 이후 네타냐후 총리와 통화해 평화 의지를 확인했고, 카타르 국왕 및 총리와도 통화하며 지지와 우정에 감사를 표했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이들에게 이러한 일이 다시는 그들의 영토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했으며,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에게 카타르와의 방위협력협정을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백악관도 이번 공격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하마스 제거 자체는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우리와 함께 평화를 중재하려고 매우 열심히 노력하고, 용감하게 위험을 감수하는 주권국이자 미국의 긴밀한 동맹인 카타르 내부에 대한 일방적인 폭격은 이스라엘이나 미국의 목표를 진전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레빗 대변인은 다만 “하마스는 매우 유감스럽게도 카타르의 수도 도하의 한 구역에 있었다”며 “가자지구 주민들의 고통에서 이득을 얻는 하마스의 제거는 가치가 있는 목표”라고 덧붙였다. 네타냐후 총리의 공격 결정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불편하게 여기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대통령은 이번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우려를 매우 분명히 밝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