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의약품에 100% 관세 폭탄 "美 현지 공장 없으면 면제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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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무역확장법 제32조'에 따라 조사 착수 당초 예고했던 최대 250%보다는 관세율 낮아져 적용 대상 등 모호한 부분 많아 후속 조치 있을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내 제조시설을 운영하지 않는 제약회사와 의약품에 10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지난 4월 미 상무부의 의약품 조사가 개시된 지 5개월 만이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최대 250%의 고율 관세를 예고했던 것과 비교하면 관세율은 낮아졌지만, 글로벌 제약시장에 미치는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건설 중인 공장'도 면제 대상에 해당
25일(이하 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다음 달 1일부터 미국 내 제조시설을 건설하지 않는 제약회사 브랜드와 특허 의약품에 대해 100%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방침의 예외 조건도 함께 설명했다. 그는 “회사가 미국 내에 제약 생산 공장을 건설 중일 경우 관세는 부과되지 않는다”며 "건설 중이라 함은 기초 공사가 시작됐거나 실제로 공사가 진행 중인 상태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결정은 미 무역확장법 제32조(Section 232)에 따른 조치로, 해당 조항에 따르면 미 대통령은 특정 품목의 수입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상무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수입 규제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미 상무부는 지난 4월 의약품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으며, 올해 7월 보고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이 수입 의약품에 부과하는 관세는 15~25% 수준이다.
의약품에 자동차보다 높은 관세 부과해야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의약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해 왔는데 이 과정에 관세율이 수차례 달라졌다. 이번에 확정된 의약품 관세율 100%는 이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했던 수치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지난 7월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회의에서 의약품 관세와 관련해 "1년 또는 1년 반의 유예 기간을 줄 것이며, 이 기간 내 미국에 들어오지 않으면 그 이후에는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매우 높은 세율이 적용될 것"이라며 "예컨대 200% 수준"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어 지난 8월 CNBC와의 인터뷰에서는 "처음에는 소량의 관세를 부과하지만, 1년 여의 유예기간이 지나면 관세율을 150%로 올리고 이후에는 250%로 인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전인 지난 16일에도 영국 방문을 위해 백악관을 나서면서 기자들에게 의약품 관세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의약품과 반도체는 자동차보다 이익률이 더 높다"며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데, 이보다 수익성이 좋은 의약품과 반도체에는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했다.
오락가락했던 관세율만큼이나 부과 대상과 적용 범위에도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특히 바이오시밀러나 제네릭은 면제 대상인지, 미국 내 의약품 위탁생산(CMO) 방식이 '미국 내 생산공장 건설 중인 업체'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다. 제약업계에서는 모두 면제 대상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국가별 무역 협상도 중요한 변수다. 일례로 유럽연합(EU)은 이미 유럽산 의약품에 대해 15% 상한선을 두는 별도의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시행 시점이 임박한 만큼 조만간 미국 측의 후속 발표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제약회사들, 美 생산 확충에 주력
트럼프 대통령의 100% 관세 조치 발표 이후 각국 정부와 제약업계는 분주히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최근 체결한 미·일 무역협정에 따라 일본산 의약품에 15%의 관세가 적용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달 양국이 발표한 공동성명에는 타국에 부과되는 세율을 초과하는 관세율은 적용하지 않을 것이란 내용이 담겨 있다. 사실상 EU 등과 동일한 최혜국 대우를 확보한 셈이다. 그러나 지난 4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미·일 관세 조치 대통령령에는 이 같은 내용이 명시되지 않아 불안 요인으로 남아 있다.
미국 현지에 생산공장을 확대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후지필름은 지난 24일 미 노스캐롤라이나주 홀리스프링스에 있는 신공장의 준공식을 열고 내부 시설을 공개했다. 총 32억 달러(약 4조5,000억원)가 투입된 이 공장은 도쿄타워가 통째로 들어갈 만한 길이의 복도를 중심으로 동서 양쪽에 건물이 들어선 구조로 미국 내 가장 큰 규모의 의약품 개발·제조 위탁(CDMO) 거점이다. 올해 안에 가동하는 탱크 8기만으로 연 5,000만 회분의 바이오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으며, 2028년까지 같은 규모의 탱크 8기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시가총액 기준 스위스의 양대 제약사인 로슈와 노바티스도 미국 판매 물량 전부를 현지 생산하기로 했다. 로슈는 미국 공장의 생산 물량을 크게 늘려 현지 수요를 모두 채우고, 남는 물량은 다른 나라로 수출할 계획이며, 노바티스는 주요 의약품을 전부 미국에서 생산함으로써 추후 자국에서의 대미 수출을 중단할 방침이다. 두 회사는 기존에도 미국에 현지 법인을 두고 상당량의 의약품을 현지 생산체제를 운영해 왔으며, 올해 로슈는 500억 달러(약 70조원), 노바티스는 230억 달러(약 32조원) 규모의 신규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도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셀트리온은 2년치 재고를 미국에 이전하고, CMO 계약 확대를 추진 중이다. 지난 23일에는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의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장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SK바이오팜도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의 현지 재고를 확보하는 동시에, 위탁생산 등을 통해 생산량 확대에 나섰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대웅제약 등도 파트너사와의 협의를 통해 대응책을 논의 중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지 재고 확보 등 다양한 준비를 해둔 만큼 단기적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