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고교생 쓰러져도 장소·일정 그대로, 어른들 사정에 묶인 ‘여름 고시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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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도 멈춰 세운 살인적 더위 청춘·근성 서사의 상징 고시엔은 폭염 경기 강행 개최 시기·장소 둘러싼 전면 개편 요구 확산

일본의 대표적인 여름 스포츠 행사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이른바 ‘여름 고시엔’이 기록적인 폭염으로 존립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일본의 지난해 여름 평균기온이 1898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올해 대회도 가장 더운 8월에 49개 고교 대표팀을 불러 모았다. 프로야구와 다른 고교 스포츠는 경기 중단과 돔구장 전환, 개최지 이전에 나섰지만 고시엔은 100년 넘게 이어진 장소와 일정을 고수하고 있다. 선수들이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7회제 도입과 경기시간 조정 등이 논의되고 있으나, 개최 시기와 장소를 바꾸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은 어려워 보인다.
열사병 공포 속 개막
6일 일본고교야구연맹(JHBF)에 따르면 2026년 고시엔은 전날 오사카 인근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서 개막했다. JHBF와 아사히신문사가 공동 주최하는 이번 대회에는 전국 49개 대표팀이 출전하며, 결승전은 오는 22일 열린다. 하지만 가장 더운 시기에 개최하는 데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고시엔은 효고현에 있는 한신타이거즈의 홈구장 이름인 ‘고시엔(甲子園)’에서 열리기 때문에 불리는 이름이다. 이곳은 지난해 여름 35~40도에 이르는 폭염이 이어졌던 곳이다.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2025년 일본의 여름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2.36도 높아 1898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의 여름 평균기온은 100년당 1.38도씩 상승하고 있다. 2023년과 2024년에 이어 2025년까지 기록적인 고온이 반복되면서 8월 고시엔의 폭염은 일시적인 기상이변의 범주를 벗어났다. 지난해 경기 당시에는 더위 때문에 탈진하거나 어지럼증 등으로 경기를 계속하지 못하는 선수가 속출했고, 들것에 실려나가는 선수도 있었다. 특히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고등학생들에겐 더 가혹한 환경이다.
선수·관중 동시 위협
올해 본선에 앞선 지방대회에서도 이미 경고음이 울렸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나라현 가시하라시에서 열린 고교야구 나라대회 3회전에서 지벤가쿠엔 선수 여러 명이 열사병 증상을 호소했다. 결국 봄 선발대회 준우승팀인 지벤가쿠엔은 에이스 스기모토 마히로 등 주전들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6대 9로 패했다. 당시 지벤가쿠엔이 사용한 3루 측 벤치는 강한 서쪽 햇빛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그늘이 진 1루 측 벤치를 사용한 나라대 부속고의 다나카 가즈노리 감독은 “상대 선수들은 벤치에서 쉴 때조차 햇볕을 받아 정말 힘들어 보였다”고 상황을 전했다.
폭염은 그라운드뿐 아니라 응원석도 동시에 덮친다. 고시엔구장 내 학교 응원단이 밀집해 있는 알프스석은 직사광선과 달궈진 좌석의 복사열에 장시간 노출되며, 악기 연주와 구호가 이어질수록 체온 상승과 탈수 위험도 커진다. 더욱이 관중석에는 선수와 주최측에 적용되는 정기적인 냉각 휴식도 없다. 이처럼 고시엔 특유의 집단 응원은 폭염 속에서 또 다른 안전 변수로 작용한다. 수시간 동안 이어지는 함성은 체온 상승과 수분 손실을 가속해 관중의 온열질환 위험을 키운다.
표1. 폭염에도 ‘여름 고시엔’ 유지하는 이유
| 구분 | 핵심 내용 |
|---|---|
| 구장 확보 제약 | 고시엔은 다른 계절에 프로야구가 사용하며, 지방 구장도 대학야구 등의 예약으로 대체 개최가 어려움 |
| 분절된 운영 체계 | 프로·대학·고교야구를 통합 조정하는 단일 기구가 없어 종목 전체의 일정을 일괄 변경하기 어려움 |
| 학교 일정 고착 | 여름방학 개최로 수업 결손을 줄일 수 있으며, 지역예선부터 전국대회까지 여름 중심의 운영 체계가 정착 |
| 문화적 상징성 | 폭염 속 근성·인내·희생을 강조하는 ‘여름 고시엔’ 서사가 국민적 정서와 대회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음 |
| 흥행 가치 | 전국 학교와 지역사회, 동문을 결집하는 여름철 대형 콘텐츠로서 방송·상업적 가치가 큼 |
| 미디어 재생산 | NHK와 BS아사히가 전 경기를 전국에 생중계하며 ‘여름 고시엔’의 상징성과 대중적 관심을 지속적으로 확대 |
구장도 일정도 출구 부재
하지만 JHBF는 고시엔 일정이나 장소를 바꾸지 않고 있다. 단지 올해 폭염 대책을 전년보다 세분화했을 뿐이다. 여기엔 ‘어른들의 사정’이 있다. JHBF 관계자는 닛케이에 “여름이 아닌 다른 시기에 고시엔은 프로야구가 사용하고 있고, 지방 구장도 대학야구 등이 이미 예약해 두고 있어 경기장을 확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시엔이라는 상징적 장소를 바꾸기도 어렵고, 일정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 야구에는 축구협회처럼 프로와 아마추어를 모두 총괄하는 단일 조직도 없다. 프로야구와 대학야구, 고교야구가 각각 따로 움직이는 구조여서 전체 일정을 조정해 고교야구 대회를 다른 계절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학교 일정도 걸림돌이다. 여름방학에 대회를 열면 수업 결손을 줄일 수 있고, 지역예선부터 전국대회까지 이어지는 일정도 이미 여름을 중심으로 굳어져 있다. 개최 시기를 바꾸려면 전국 학교와 야구단체, 구장 운영 주체가 얽힌 기존 시스템을 모두 다시 짜야 한다.
청춘 서사에 갇힌 폭염 관행
여기에 여름 고시엔 자체를 하나의 로망으로 받아들이는 문화도 변화를 어렵게 한다. 일본에서 고시엔은 단순한 학생 스포츠가 아니라 뜨거운 햇볕 아래서 끝까지 버티는 모습을 통해 근성과 인내, 희생과 팀워크를 보여주는 국민적 드라마로 소비되고 있다. 땀에 젖은 유니폼과 흙투성이 얼굴, 패전 뒤 눈물을 흘리며 고시엔의 흙을 담는 선수들의 모습은 대회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더운 날씨를 견디며 싸우는 과정까지 ‘청춘의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이면서, ‘더울수록 고시엔답다’는 정서도 오랫동안 형성됐다.
방송사와 언론도 이런 이미지를 강화해 왔다. 여름방학 동안 장기간 진행되는 고시엔은 전국 학교와 지역사회, 동문을 하나로 묶는 초대형 콘텐츠다. 이 때문에 개최 시기를 선선한 계절로 옮기면 여름 고시엔이라는 문화적 상징과 흥행 상품 자체가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 같은 정서는 전국 단위 중계망을 통해 해마다 재생산된다. 올해 대회는 NHK가 TV·라디오와 인터넷으로 전 경기를 내보내고, BS아사히도 4K 채널을 통해 개막식부터 결승까지 생중계한다.
방송의 파급력은 매년 결승전에서 수치로 확인된다. 지난해만 해도 오키나와쇼가쿠쿠고가 출전한 결승전은 오키나와 지역 평균 가구 시청률 46.3%, 순간 최고 시청률 52.3%를 기록했다. 지역 대표교의 경기가 학교와 동문, 주민 전체를 결집시키는 대형 이벤트로 확장되면서 방송 편성과 온라인 유통, 지역 응원 문화도 8월 일정에 맞춰 고착됐다. 또한 아사히신문이 대회 운영과 지역예선에 직접 참여하는 주최 구조까지 맞물려 있어, 혹서기 개최 관행은 미디어와 지역사회가 함께 떠받치는 거대한 흥행 체계로 굳어졌다.
이 같은 경직성은 JHBF의 공식 문서에도 각인돼 있다. JHBF는 지난해 12월 최종보고서에서 고교야구를 학교 교육의 일부로 규정하면서 전국대회를 여름방학 중에 열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폭염 대책을 다룬 검토 과정에도 ‘전국대회를 고시엔에서 계속 연다’는 전제가 적용됐다. JHBF는 고시엔이 고교야구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고 각종 문화 행사에도 ‘○○고시엔’이라는 명칭이 확산됐다는 점을 개최 유지의 근거로 들었다. 1924년 개장 이후 100년 넘게 전국대회를 치른 역사와 사회적 상징성을 근거로, 향후에도 고시엔 개최가 바람직하다는 입장도 함께 담았다.
멈추고 옮기는 스포츠계, 고시엔은 고집
그러나 아무리 전통과 흥행성이 크더라도 폭염 속 경기 강행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 JHBF 스스로 고교야구를 학교 교육의 일부로 규정한 만큼 대회 운영의 최우선 기준은 미성년 선수의 안전이어야 한다. 선수들이 경련과 탈진으로 쓰러지고 들것에 실려 나가는 경기를 청소년 성장 드라마로 포장하기는 어렵다. 혹독한 환경을 견디는 과정에 의미를 부여할수록 안전 책임은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같은 폭염 앞에서 프로야구는 이미 경기 중단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4일 인천 경기에서 관중이 온열질환 증세로 쓰러지자 5·6일 1·2군 전 경기를 모두 취소했다. 올해 폭염으로 취소된 경기는 15경기로 늘었다. 일본에서도 지난달 22일 사이타마현 롯데우라와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군 경기가 선수들의 잇따른 이상 증세로 중단됐다. 당시 기온은 38.7도까지 올랐으며 일본 프로야구 공식전이 폭염으로 취소된 첫 사례로 기록됐다. 일본야구기구(NPB)는 기온이 40도 안팎에 도달하면 주최 구단이 경기를 취소할 수 있는 기준도 검토하고 있다.
일본 프로야구의 경기장 투자도 기후 변화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 지바시와 지바롯데 마린스, 이온몰은 ZOZO마린스타디움을 대체할 신구장을 2034년까지 건설하면서 고정식 돔 형태를 검토하고 있다. 당초 600억 엔(약 5,390억원) 규모의 야외 구장이 유력했으나 폭염 우려와 구단·시민의 요구가 커지면서 1,000억 엔(약 8,980억원)을 웃도는 실내형 구장으로 계획을 바꿨다. 건설비가 400억 엔(약 3,590억원) 이상 늘어도 선수와 관중의 안전, 연중 시설 활용도를 확보하겠다는 판단이다.
일본 고교축구는 개최지를 옮기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전국 고교 체육대회 축구 종목은 2024년부터 여자 경기를 홋카이도, 남자 경기를 후쿠시마에서 열고 있다. 폭염이 심한 지역과 시간대를 피하기 위해 오랜 개최 관행을 바꾼 것이다. 전국 학교와 응원단이 이동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랐지만, 청소년 선수의 안전을 우선하면서 대회 운영 방식도 달라졌다.
대증요법만으론 부족
JHBF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올해는 대회 초반 경기를 오전과 오후로 나누는 2부제 적용 기간을 늘리고, 5회 종료 뒤 8분간 선수들의 체온을 낮추는 냉각 휴식을 운영한다. 아이스 슬러리와 경구수분보충액을 비치하고 물리치료사 12명 안팎도 현장에 배치했다. 다만 제3일부터 제10일까지 오후 경기는 하루 중 기온이 가장 높아지는 오후 1시 30분에 시작한다. 제11·12일에도 오후 1시와 3시 30분 경기가 예정돼 있다. 습구흑구온도(WBGT·기온과 습도, 햇빛 등을 반영한 폭염 위험 지수)를 측정해 주의를 환기하고 있지만 일정 수치를 넘으면 경기를 자동으로 중단하는 규정은 공개 대책에 담지 않았다.
JHBF가 검토 중인 7이닝제에도 한계가 있다. JHBF 검토회의는 9회 경기를 7회로 줄이면 평균 경기시간이 약 2시간에서 1시간 30분으로 단축되고, 투구 수도 130개에서 100개로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를 통해 선수들이 폭염에 노출되는 시간을 30분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JHBF의 설명이지만 그라운드의 기온과 습도, 복사열은 그대로다. 경기 전 훈련과 대기, 이동, 응원단 활동도 정규 이닝과 관계없이 이어진다. 고토우라 요시히로 교토부립 마이즈루어린이재활센터 정형외과부장은 “기온이 더 오르면 7이닝 경기조차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고시엔구장을 돔구장으로 전환하는 것도 비용과 부지 문제가 얽혀 있다. 고시엔구장을 운영하는 한신전기철도는 고시엔구장에서 프로야구와 고교야구 경기를 계속 치르며 공사해야 하고, 주변 부지도 협소해 돔 전환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신 150억 엔(약 1,350억원)을 들여 학교 응원단이 밀집하는 알프스석까지 차양 지붕을 확장하고 있는데, 응원석의 직사광선은 줄어들지만 선수들이 뛰는 그라운드는 외부 기상에 계속 노출된다. 이에 일본 야구계 내부에서도 7회제나 지붕 설치 같은 대증요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스에 와타루 센다이이쿠에이고 감독은 “장소와 시기, 개최 방식을 바꿀 수 있는지부터 논의해야 한다”며 성역 없는 개혁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