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바이오] 유럽 기후전략, 감축과 협력의 균형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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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배출과 현재 책임의 균형 유럽 기후 전략, 전환 시점 CBAM, 공급망 탈탄소화 지원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초 기준 전 세계에 남은 탄소예산은 약 2,350억 톤으로 추산됐다. 이는 지구온난화를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인류가 추가로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이다. 현재와 같은 배출이 이어질 경우 약 6년이면 모두 소진되는 규모다. 이와 같이 탄소예산이 빠르게 줄어들면서 국가별 감축 책임을 둘러싼 논의도 본격화하고 있다. 대기 중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수백 년 동안 잔류하며 현재와 미래의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 유럽과 미국은 탄소집약적인 산업화를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중국과 인도는 훨씬 늦게 산업화 단계에 들어섰다. 어느 국가도 과도한 탄소 배출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적 배출 규모와 경제 발전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동일한 감축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 역시 기후 형평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탄소예산의 기준
이 같은 논의의 출발점은 탄소예산이다. 탄소예산은 정치적 협상이 아닌 과학적 분석에 기반해 산출된다.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결정하는 만큼, 남은 탄소예산은 기후 목표 달성 가능성을 판단하는 핵심 지표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이를 국가별로 어떻게 나눌지는 과학의 영역을 넘어 형평성과 책임에 대한 국제사회의 합의가 필요한 문제다. 국가별 탄소예산을 배분하는 대표적인 기준은 '1인당 누적 배출량 균등 배분' 원칙이다. 인구 비중보다 많은 탄소를 배출한 국가는 다른 나라가 사용할 탄소예산까지 먼저 소비한 것으로 간주돼 '탄소 부채(carbon debt)'를 부담하게 된다. 반대로 누적 배출량이 적은 국가는 상대적으로 더 큰 탄소예산이 주어진다.

탄소 형평성과 현재의 감축 책임
1870년부터 2022년까지의 누적 배출량과 인구를 반영한 분석에 따르면,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상당한 규모의 탄소 부채를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과거의 배출 기록을 넘어 앞으로 부담해야 할 기후 책임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산업화와 사회기반시설을 구축한 유럽이 개발도상국에 같은 비용과 속도의 에너지 전환을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탄소 형평성을 논할 때 역사적 책임만으로 현재의 배출 문제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중국은 2023년 기준 전 세계 에너지 관련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35%를 차지하는 최대 배출국이며, 인도의 연간 배출량도 이미 유럽을 넘어섰다.
과거의 배출 책임이 크다고 해서 현재의 대규모 배출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산화탄소는 어느 나라에서 배출되든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같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후정책은 역사적 책임과 현재의 감축 역량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유럽은 역사적 배출에 상응하는 재정과 기술 지원을 확대하고, 중국은 세계 최대 배출국에 걸맞은 감축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인도에는 기후금융과 기술 지원을 확대해 저탄소 성장 기반을 마련하도록 지원하는 방안이 요구된다.

중국의 친환경 산업과 유럽의 새로운 역할
이 같은 변화는 기후 협력 방식에도 새로운 과제를 안겼다. 과거에는 유럽이 친환경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는 방식이 기후 불평등을 해소하는 대안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중국이 친환경 산업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기존 구도도 빠르게 재편되는 양상이다. 중국은 장기간 추진한 산업정책과 거대한 내수시장, 공급망 경쟁력을 바탕으로 친환경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태양광 모듈 생산능력 대부분을 차지하는 데 이어 배터리셀 생산과 전기차 판매에서도 세계 최대 규모를 구축했다. 반면 유럽은 연구개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대량 생산과 가격 경쟁력에서는 중국에 뒤처지는 모습이다.
이러한 변화는 유럽의 기후 전략에도 새로운 접근을 요구한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도 친환경 기술 확산은 가로막지 않는 균형이 필요하다. 전략적으로 육성할 제조 분야와 국제 협력을 확대할 분야를 구분하는 정책도 빼놓을 수 없다. 유럽은 금융과 기술 표준, 전력망 구축, 전문인력 양성 등 경쟁력을 갖춘 분야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반면 배터리와 저탄소 소재, 장기에너지저장장치 등 전략 기술은 자체 생산 기반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일반 친환경 설비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제품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와 같이 유럽의 금융 역량과 중국의 제조 경쟁력, 개발도상국의 생산 기반을 연계하는 협력 모델이 세계적인 탄소 감축을 앞당길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된다.
CBAM과 국제 협력의 역할
유럽의 산업 전략이 변화하는 만큼 무역정책도 그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정책 수단이다. 철강과 시멘트, 비료 등 탄소집약적 제품을 수입할 때 유럽연합(EU) 탄소가격에 상응하는 비용을 부담하도록 해 탄소 누출을 줄이고 역내외 기업 간 경쟁 여건을 맞추는 것이 핵심 목표다. 그러나 CBAM을 국가 간 탄소예산을 거래하는 제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탄소 감축 없이 비용만 이전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경우 실제 배출 감축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또한 충분한 지원 없이 국경에서 탄소비용만 부과하면 감축 역량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에는 새로운 무역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CBAM은 비용 부과를 넘어 감축 투자를 촉진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필요가 있다. 확보한 재원의 일부를 공급망 전반의 탈탄소화에 다시 투자해 주요 수출국의 전환을 뒷받침해야 한다. 철강과 비료 산업의 저탄소 공정 전환을 지원하고 중소기업의 배출량 측정과 검증 체계 구축을 돕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영향이 큰 국가를 대상으로 전환 기간을 차등 적용하거나 자국의 감축 성과를 일정 부분 인정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할 만하다.
기후위기 대응의 성패는 유럽만의 감축 노력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탄소 배출은 세계 공급망을 따라 이동하는 만큼 글로벌 차원의 감축이 함께 이뤄져야 정책 효과도 커진다. 이를 위해 유럽은 역내 배출 감축과 함께 글로벌 친환경 공급망을 적극 활용하고, CBAM 재원을 국제적인 탈탄소 투자로 연결하는 역할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이 뒷받침될 때 유럽은 역사적 배출에 대한 책임을 이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적인 탄소 감축을 이끄는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Europe’s Carbon Budget Debt Cannot Be Paid with a Border Tax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