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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부터 기반시설 훼손까지” 폭염이 드러낸 유럽의 기후 대응 취약성, 낡은 인프라·정치 갈등이 피해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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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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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스페인, 폭염發 산불로 수십만 명 대피
유럽 폭염 대응 체계 미흡, 인프라 충격에 사망자까지 속출
강력한 규제와 정치적 대립으로 에어컨 보급 지지부진

프랑스와 스페인이 대규모 산불 피해에 직면했다. 유럽 서남부를 강타한 기록적인 폭염이 역내 각국의 사회 기반 체계 전반을 뒤흔드는 것을 넘어, 대규모 재난 사태의 도화선으로 작용하는 양상이다. 이처럼 유럽이 이상기후 속 특히 막대한 혼란을 겪는 원인으로는 인프라 노후화로 인한 대응 역량 저하, 에어컨 보급 확대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 등이 꼽힌다.

유럽 덮친 산불 위협

26일(이하 현지시각) CNN은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산불로 인해 대피한 누적 인원이 총 30만 명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남서부 지롱드주 및 랑드주 일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이 통제 불능 상태로 확산하고 있다. 지롱드 당국은 보르도 인근 마을에서만 5만5,000명에게 추가 대피령을 내렸으며, 누적 대피 주민이 22만 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현지 소방 당국은 최전선에서 진화 작업을 벌이던 중 대원 최소 68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는 엑스(X, 구 트위터)를 통해 "전국에서 약 30건의 산불이 동시에 발생해 거의 10만㏊(헥타르)에 달하는 면적이 불에 탔다"면서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서부에서는 대형 산불 2건이 26일 오후 강풍을 타고 하나로 합쳐지면서 막대한 혼란이 발생했다. 마드리드 외곽과 중앙 지역에서만 7만 명 이상이 대피했고, 토레도 인근 8개 지자체에도 추가 대피령이 내려졌다. 당국은 외출 자제와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으며, 스페인 정부는 이번 산불로 인해 사상 최초의 국가비상사태까지 선포했다. 발렌시아 인근 마니세스 지역에선 산불로 인해 1명이 숨지는 등 인명 피해가 발생하며 현지 당국이 이틀간의 애도 기간을 설정하기도 했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올해 스페인에서만 이미 13만㏊가 잿더미가 됐다고 밝혔다.

'역대급' 폭염이 불씨

이러한 대규모 산불은 돌발적인 재난이라기보다, 올해 봄부터 유럽을 연이어 강타한 이상 고온·가뭄의 결과물로 평가된다. 유럽에는 지난겨울~초봄에 걸쳐 평년보다 많은 비가 내렸고, 이는 풀과 관목 등 지표 식생의 생장을 촉진했다. 이후 지난 5월부터 유럽 남서부를 중심으로 기온이 급격히 오르고 강수량이 줄자, 이들 식생은 단기간 내 말라붙어 불길을 확산시키는 대규모 가연물로 변모했다. 토양 속 수분이 고온과 강한 일사로 빠르게 증발해 수주 만에 가뭄이 심화하는 이른바 ‘플래시 가뭄’ 현상도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폭염은 지난달 들어 한층 심화했다. 유럽 상공에 형성된 강한 고기압이 장기간 정체하면서 구름과 비의 유입을 차단하고, 북아프리카와 사하라 사막에서 올라온 뜨거운 공기를 서유럽과 지중해 연안에 계속 공급한 것이다. 지난달 말에는 스페인·포르투갈·프랑스·이탈리아·독일 등에서 40℃ 안팎의 고온이 이어졌고, 서유럽은 관측 이래 가장 더운 6월을 보냈다. 이후 이달 들어서는 누적된 위험 요인이 폭발하듯 곳곳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고, 일부 역내 국가에서는 산불이 자체적으로 강한 상승기류와 번개를 만들어 새로운 불씨를 퍼뜨리는 ‘화재 적란운’까지 관측됐다.

역내 각국 사회적 혼란 가중

폭염은 교통·전력·보건 등 유럽의 사회 기반 체계 전반에도 막대한 부담을 가하고 있다. 지난달 독일에서는 노후 콘크리트 도로가 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솟아오르거나 갈라지는 이른바 ‘블로업’ 현상이 대거 발생했다. 아우토반 곳곳에서 차로가 폐쇄되거나 속도 제한 조치가 시행될 정도였다. 독일 철도망 역시 정상 운영에 난항을 겪었다. 고온에 노출된 철제 레일은 팽창하면서 휘어질 위험이 있고, 전기·전자식 신호 장비와 냉방 장치도 설계 온도를 넘어설 시 고장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전력 부문 인프라에도 비상이 걸렸다. 프랑스 전력공사 EDF는 강과 하구의 수온이 높아지자 냉각수를 방류로 인한 생태계 교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원전 가동 수준을 조절하고 있다. 이달 초부터는 지롱드강 수온 상승으로 블라예 원전의 발전량이 감소했으며, 중순에는 노장·뷔제·골페슈 원전의 원자로 3기가 가동을 일시 정지했다.

공공 서비스 부문 역시 폭염으로 인해 신음하고 있다. 지난달 프랑스에서는 냉방 시설이 부족한 학교 1,350여 곳이 휴교하거나 수업 시간을 단축했고, 영국에서도 일부 학교가 운영 일정을 조정했다. 유럽 대부분의 학교가 여름방학에 들어간 최근에는 병원과 요양시설, 소방·구급 당국이 충격의 최전선에 놓였다. 고온이 장기간 이어지면 탈수와 열탈진 환자가 늘어나는 데다, 심혈관·호흡기 질환 등 만성질환자 및 고령층의 응급실 이송도 급증하는 탓이다. 여기에 냉방 시설이 부족한 병원과 요양시설은 입원 환자의 체온 관리에도 어려움을 겪게 되며, 구급대와 소방 인력은 산불 진압과 폭염 환자 대응을 병행해야 한다.

이상기후 대응책 미비

유럽에서 이처럼 막대한 폭염 피해가 발생한 것은 도시와 사회 기반 시설이 기온 상승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기상기구(WMO)와 유럽연합(EU)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에 따르면, 유럽의 최근 30년간 기온 상승 폭은 10년당 약 0.56℃로 세계 평균의 두 배에 달한다. 하지만 유럽의 주택, 학교, 철도, 도로, 전력 설비 등은 여전히 온화했던 과거 기후를 기준으로 설계돼 있다. 특히 중·북부 유럽의 주택은 오랜 기간 여름철 냉방보다 겨울철 난방과 열 손실 방지에 초점을 맞춰 건설됐다. 폭염이 장기화하면 건물 내부에 축적된 열이 충분히 배출되지 못해 실내 온도가 바깥보다 더 높아지고, 냉방 취약 계층의 건강 피해가 급격히 확대되는 구조다.

낮은 에어컨 보급률도 위기를 가중하는 요소다. 여름이 짧고 온화한 편이었던 유럽은 지금까지 가정용 냉방을 필수 설비로 여기지 않았고, 높은 전기 요금과 각국 정부의 엄격한 기후 정책도 에어컨 확산을 억제했다. 제도상 냉방 설비를 추가하는 것 역시 간단하지 않다. 특히 역사적 외관을 보호해야 하는 파리 중심부와 문화재 인근 지역의 경우 건물 외벽·지붕에 실외기를 설치할 때 공동주택 관리기구나 지방 당국의 허가가 필요할 수 있다. 다만 폭염으로 인한 위협이 가시화한 최근에는 저렴한 중국산 에어컨을 중심으로 보급 속도가 조금이나마 빨라지는 추세다. 앞서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이달 초 “북유럽과 프랑스 지역의 중국 TCL 에어컨 매출이 전년 대비 300% 이상 폭증했고, 스페인에선 100% 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에어컨 확대, 정치적 쟁점으로

에어컨을 둘러싼 '이념 전쟁' 역시 폭염 대응 능력을 약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일례로 프랑스에선 내년 4월 치러지는 대선의 주요 쟁점 중 하나로 에어컨 규제 해제가 급부상하고 있다. 프랑스 극우 국민연합(RN) 소속 의원인 장필리프 탕기는 최근 “2003년 폭염 이후 대규모 에어컨 설치 계획이 추진됐어야 했다"며 "그러나 불행히도 프랑스에서 (에어컨 사용은) 좌파가 오랫동안 강요해 온 이념적 금기 사항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발언과 관련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수 진영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EU가 시행해 온 과도한 녹색 정책을 겨냥한 포퓰리즘 전략으로 에어컨 사용 옹호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극좌 정당인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는 “전국적인 에어컨 설치는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는 잘못된 해결책”이라며 대안으로 녹지 확대, 건물 단열 개선을 제안하고 나섰다.

독일에서도 에어컨을 둘러싼 정치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독일 내 정당 지지율 1위인 극우 성향 독일대안당(AfD) 소속 마르크 베른하르트 건설 담당 대변인은 “에너지 효율 등급 같은 ‘기후 히스테리’가 에어컨 설치를 막는 건설 정책을 낳았고, 그 결과 폭염 사망자가 늘고 있다”며 “기후 이데올로기의 제단 위에서 시민들이 희생되는 일을 막겠다”고 공언했다. 반면 극좌 성향 녹색당은 에어컨 보급 확대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경우에만 에어컨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탈탄소 캠페인, 대규모 가로수 식재 정책 등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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