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열병식은 ‘무기 세일즈 쇼’, 러·중 밀착 속 무기 수출국 야심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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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11마’ 8기, ‘화성-20’ 3기 공개 핵보유국 위상 과시하며 中·러 협력 부각 "무기 수출국 도약 겨냥한 생존 외교"

북한이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동원해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 열병식을 개최했다.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20형’과 극초음속 미사일 등 전략무기와 함께 신형 전차 ‘천마-20’, 드론 발사차량 등 재래식 전력의 현대화 성과도 과시했다. 이번 열병식은 북한 ‘생존외교’의 정점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또한 북한 입장에서 이번 열병식은 그 자체로 ‘수출용 무기 카탈로그’ 역할을 수행한 것이기도 하다. 핵보유국이자 무기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북한의 이중 전략은 제재 체제의 균열과 중·러 밀착 구도를 지렛대로 삼아 새로운 군사외교 질서를 구축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北, 美 본토 타격용 '화성-20형' 선보여
13일 조선중앙통신 등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10일 밤늦은 시간 김일성광장에서 노동당 창건 8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열병식을 진행했다. 북측 열병식 녹화방송을 살펴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중국·러시아 2인자, 베트남의 최고 권력자와 노동당 창건 80주년 열병식 주석단에 올라 반미·반서방 연대 퍼포먼스를 펼쳤다.
북한은 이번 열병식에서 신형 ICBM을 비롯해 다양한 탄도·순항미사일과 자폭드론, 신형 전차 등 핵·재래식 전력을 두루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이번 열병식의 주인공은 단연 최초 공개된 화성-20형이었다. 북측은 화성-20형에 대해 “타격의 사정권에는 한계가 없음을 선언하는 초강력 전략 공격무기”라고 소개했다.
이는 중국이 지난달 전승절 열병식에서 지구 전역에 도달하는 둥펑(DF)-5C·61을 공개했던 것과 비슷한 대미 무력시위로 평가된다. 자신들이 중·러에 버금가는 핵보유국이자 반미·반서방 진영의 핵심 군사대국임을 부각한 셈이다. 화성-20형은 기존 ICBM인 화성-19형과 마찬가지로 11축 이동식 발사대에 실린 모습으로 열병식에 등장했는데, 미사일을 덮고 있는 캐니스터(발사관)의 앞부분은 화성-19형보다 훨씬 뭉툭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화성-19형보다 탄두부 적재 공간과 탑재 중량을 늘리려는 시도로 보고 있다.
북한이 화성-20형을 본격적인 다탄두 미사일로 개발하고 있다는 관측도 군 안팎에서 제기된다. 1대의 ICBM에 핵탄두 여러 개를 탑재해 각각 다른 목표물을 동시에 공격하며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을 무력화한다는 구상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중국 방문 직전 화성-20형 개발 사실을 미리 공개했다. 당시 북측은 이 미사일의 엔진에 탄소섬유 복합재료를 활용해 추력이 화성-19형보다 40% 이상 향상됐다고 설명했다. 이미 사거리가 1만5,000㎞에 이르는 화성-19형보다 엔진 추력을 높인 것은 다분히 다탄두 탑재에 따른 중량 증가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다련장 자폭 드론 발사 차량 등 러 파병 영향 곳곳에
아울러 북한은 열병식에서 중장거리 극초음속미사일인 화성-16나도 동원했다. 이는 미국령 괌과 일본 오키나와 등 태평양의 미군 전진기지와 항공모함 등 한반도 유사시 증원전력 차단을 노린 무기체계로 파악된다. 단거리 극초음속 기종인 화성-11마 단거리 극초음속미사일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군사시설 등을 노린 전술핵 탑재 가능 전력으로 추정된다. 극초음속미사일은 마하5(시속 6,120㎞) 이상의 속도로 비행하며 하강 단계에서 좌우로 움직여 요격이 어렵다.
러시아 파병을 통해 드론 전술과 관련 기술을 습득한 북한군은 이동식 자폭드론 발사차량과 신형 전술미사일 발사대도 처음으로 공개했다. 북한판 ‘하롭(Harop)’으로 불리는 자폭드론 6기를 탑재하는 컨테이너 형태의 이동식발사대였다. 또 신형 전술미사일 발사대는 북한판 ‘스파이크’로 추정되는 미사일 탑재 발사대로, 전술미사일을 방사포처럼 동시에 쏘는 형태로 보였다. 탄도미사일과 전술미사일, 자폭드론을 혼합 운용해 한·미의 미사일방어 체계를 무력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또 신형 전차 천마-20은 지난 5월 김 위원장의 탱크 공장 시찰 때 처음 공개된 것과 동일한 모델로, 이번에 공식 명칭과 기동 장면이 공개됐다. 적의 대전차무기 접근 시 자동으로 반응해 요격하는 이른바 ‘하드킬’ 능동방어체계를 탑재한 것이 특징이다. 기동성을 강조한 신형 155㎜ 자주포의 경우 기존 152㎜ 계열 구형 자주포와 비교해 현대화·장거리화·기동성 강화에 초점을 둔 무기로 평가됐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12일 북한 열병식 분석자료를 통해 “다연장 순항미사일과 전술미사일, 자폭드론 발사대의 공개는 동시다발적(벌떼) 공격 능력 강화 목적”이라며 “서해5도 기습 점령을 겨냥한 ‘제41상륙돌격대대종대’와 산악 경보병부대인 ‘적후산악활동부대종대’ 등 특수부대의 대규모 참가도 눈에 띈다”고 분석했다. 특히 길리슈트로 위장한 적후산악활동부대종대와 신규 편성된 저격수 종대의 등장은 주목할 만하다. 길리슈트는 나뭇잎 등 자연물로 은신 복장을 구성해 열영상·무인기 탐지가 어렵게 한 것으로, 저격 임무 효율을 크게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지난 4월과 8월에도 길리슈트를 착용한 병력 훈련 영상을 공개했는데, 이번에는 규모를 더 키워 대거 등장시켰다.

방사포·초음속 미사일 등 최첨단 무기도 대거 등장
이는 오래된 재래식 무기로 점철됐던 과거와는 확연히 대조된다. 실제 이번 열병식에선 북한의 재래식 무기 체계가 빠르게 첨단화한 모습이 다수 포착됐다. 지대공·지대지 극초음속 미사일, 최신형 전차,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인 600㎜ 방사포, 드론 발사 차량 등 북한 최신 장비와 병력이 일제히 종대를 이뤄 행진했다. 특히 천마-20형 전차에는 한국군 K-2 흑표 전차에도 없는 대전차무기 능동방호 장비가 장착됐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열병식에 등장한 드론 발사 차량은 북한이 단발형 자폭 드론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군집 형태의 공세적 전술 시스템을 구축 중임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이 같은 무력 과시 행보는 러시아에 대한 무기 공급과 병력 파병을 계기로 외교적 레버리지를 극대화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국제 무기 시장에서 존재감을 강화하려는 명확한 의도를 드러냈다는 의미다. 제이슨 바틀렛 신미국안보센터(CNAS) 연구원은 미국 외교 전문지 더 디플로맷(The Diplomat) 기고문에서 "북한의 열병식 방송은 미국 적대국들에게 무기 카탈로그를 제공하는 것과 같다"고 짚었다. 북한의 최신 무기 정보를 러시아, 중국 등 미국의 적성 국가와 같은 잠재적 해외 구매자들에게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경제·군사적 활로를 찾은 북한이 국제연합(UN) 제재 무력화를 노리고 국제사회 ‘정상국가’ 복귀를 추진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후계자로 추정되는 딸 김주애가 이번 열병식에 등장하지 않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비등하다. 김주애는 지난달 초 중국 전승절 관련 행사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세습 정권 이미지를 탈피하고 ‘핵무기를 보유한 정상국가’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겠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