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 재정” 후폭풍에 흔들리는 ‘다카이치 트레이드’, 관료 반발 속 정책 시험대
입력
수정
“적자 어쩔 수 없다” 발언으로 시장 혼란 촉발 관료 조직은 재정 건전성 훼손 우려 표명 다카이치 경제 리더십 검증 시간 도래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신임 총재의 총리 취임을 앞두고 일본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그는 “적자 국채 발행도 불가피하다”며 재정 확대를 예고했지만, 금리 정상화를 추진하던 일본은행과의 충돌로 시장 불안이 커졌다. 재정 확대 기대에 증시는 단기 랠리를 이어 갔으나, 공명당의 연립 탈퇴 선언으로 ‘다카이치 트레이드’는 불안정해진 상황이다. 여기에 관료 조직의 반발과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맞물리면서 다카이치 내각은 출범 전부터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채권 더 찍어서라도 경기 부양”
14일 지지통신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최근 일본 내에선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신임 총재가 총리로 취임할 경우 금융시장의 혼란이 찾아올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카이치 총재가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다. 그는 선거 기간 내내 “적자 국채 발행도 불가피하다”며 재정 확대 의지를 거듭 밝히며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을 내세운 바 있다. 이러한 발언은 일본은행이 추진하던 금리 정상화 기조와 정면으로 충돌하며 조기 금리 인상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지통신은 “다카이치 총재가 총리로 취임하게 되면, 무분별한 지출이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짚으며 “금융정책과 재정정책 간 괴리가 국민 생활의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다카이치 총재는 지난 6일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의 책임 주체는 정부”라고 강조하며 일본은행의 독립성에 사실상 제동을 걸었고, 해당 발언 직후 일본 국채 장기물 금리는 일시적으로 1.68%를 기록하며 2008년 7월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시장에 미칠 여파를 고려하지 않은 다카이치 총재의 발언이 국채 매도세를 자극한 데 따른 결과다.
이 같은 정책 불확실성 속에서 일본 증권시장은 단기 기대와 불안이 교차했다. 재정 확대에 따른 경기 부양 기대감으로 닛케이 지수가 한때 4만8,000까지 치솟았으나, 금리 인상 지연으로 엔저가 가속화하며 수입 물가 상승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다이와증권 오타니 슌 수석 애널리스트는 “환율이 1달러=150엔을 넘어서면 국민 부담이 급격히 커진다”며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재정정책과의 충돌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선 다카이치 트레이드의 조기 종말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일본 매체 슈에이샤 온라인은 “정치적 혼란 속에서 공명당의 연립이탈이 이어지며 다카이치 트레이드가 급속히 무너지는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다카이치 트레이드는 그의 재정확대 공약을 바탕으로 △엔저 △주가 상승 △채권가격 하락이라는 3중 효과를 노린 거래 전략이었다. 그러나 공명당의 이탈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며 시장의 불안감만 커지는 양상이다. 슈에이샤는 “다카이치 트레이드가 조기 종말할 경우, 일본 금융시장 전반이 급락할 수 있다”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경고했다.
‘관치경제’와 ‘정치 주도 경제’ 충돌 양상
이 같은 비관적 전망 속에서도 일본 증시는 여전히 단기 랠리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닛케이225지수는 3일부터 9일까지 8% 이상 오르며 사상 최고치 행진을 기록했고, 일시적인 조정에도 상승 흐름이 이어졌다. ‘다카이치 랠리’라 불리는 이 현상은 다카이치 총재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재정 확대 정책과 통화 완화 기조가 시장의 기대를 자극한 결과로 읽힌다. 증권가에서는 2010년대 초반 ‘아베노믹스’ 초기 국면과 유사한 경기 부양 기대감이 형성됐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시장에서도 다카이치 총재를 ‘여성 아베’로 부르며 과거 아베노믹스의 완성판을 내세운 정책 기조가 재현될 것이라는 기대가 고개를 들었다. CNBC는 “다카이치의 경기 부양 의지가 주가를 끌어올렸다”며 “투자자들은 주가 상승, 국채금리 상승, 엔저를 핵심으로 하는 ‘다카이치 트레이드’에 뛰어들었다”고 보도했다. 엔·달러 환율은 8일 한때 152엔을 돌파해 8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고, 엔화 약세에 따른 수출 대기업의 실적 개선 기대가 증시를 지탱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관료 조직의 반응은 정반대다. 일본 재무성은 “적자 국채 발행 확대가 재정 건전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일본은행 역시 금리 인상 여지를 잃게 될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스미토모 미쓰이은행의 스즈키 히로후미 수석 전략가는 “현재의 엔화 약세는 일시적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며 “엔·달러 150엔은 정책적 개입의 분기점으로, 정부가 이 수준을 장기적으로 용인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야마구치 노리히코 수석 이코노미스트 역시 “지속적인 엔저 정책은 수입 물가 상승을 초래해 오히려 서민 경제를 압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포용력 시험대’ 오른 다카이치, 정치적 전환점 될까
이 같은 이유로 전문가들은 다카이치 총재가 향후 총리 지명 선거를 거쳐 정권을 공식 출범시킬 경우, 정책 조율 능력이 가장 먼저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핵심은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재무성의 건전 재정 기조와 일본은행의 금리 정상화 노선 속에 얼마나 부드럽게 녹여내느냐다. 초반 1~2주간 다카이치 내각이 재무성·일본은행과의 메시지 조율에 실패하면, 다카이치 트레이드의 변동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반대로 재정·통화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고 정책 일정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시장은 과열을 멈추고 안정적 신호를 회복할 가능성이 높다.
인사와 정치적 리더십에서도 과제가 적지 않다. 다카이치 총재는 당내 기반이 약한 대신, 결선에서 자신을 지지한 아소계 인맥을 중심으로 인사를 단행했다. 간사장·부총재·총무회장 등 핵심 요직을 이른바 ‘아소파’가 차지하면서 “파벌 부활”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된 상태다. 여기에 자민당 내 비자금 의혹 인사들이 그대로 남았다는 점도 여론의 비난을 샀다. 인사는 곧 정책 신호로 받아들여지는 만큼 차기 정권의 재정 확대의 범위와 재원, 순발행 규모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일본은행과의 조율 결과를 함께 공개하는 것이 관료와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전망이다.
대외정책에서는 이미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과거 강경 우파로 불렸던 다카이치 총재는 야스쿠니 추계례대제 참석을 유보하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달 말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일 및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둔 외교적 고려로 해석된다. 이는 다시 국민들에게 생활물가 안정과 중소기업 지원 같은 체감형 정책을 제시하고, 관료 조직과는 실무 중심의 조율 구조를 확립하려는 시도와 맞물린다. 다카이치 내각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고 실질적 리더십을 증명하기 위해선 취임 직후 1~2주 안에 이러한 균형 감각을 이뤄야 한다는 게 일본 안팎의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