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 Home
  • 딥폴리시
  • [딥폴리시] 거리의 분노가 바꾼 베이징의 외교 계산법

[딥폴리시] 거리의 분노가 바꾼 베이징의 외교 계산법

Picture

Member for

7 months 3 weeks
Real name
김은실
Position
연구원
Bio
세상을 과학의 언어로 읽고, 사실 위에 통찰을 더하는 글을 전합니다. 복잡한 현상 속에서 본질을 찾아 독자와 함께 사유하겠습니다.

수정

거리의 분노, 외교 질서의 새로운 변수
중국 외교, 권력보다 협력의 지속성
신뢰와 투명성, 외교 자본의 중심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5년 9월, 네팔의 거리에서 시작된 Z세대의 시위가 권력 교체와 외교 질서를 동시에 흔들었다. 정부가 26개의 SNS 플랫폼을 전격 차단하자 불만은 폭발했다. 정치 불신과 부패, 청년 실업이 쌓인 현실에서 표현의 자유 제약은 마지막 불씨가 됐다. 첫날 19명이 숨지고, 3주 만에 사망자는 74명으로 늘었다. 카트만두 중심부에는 군이 투입됐고, 국가 기능은 사실상 정지됐다. 이 시위는 단순한 SNS 차단 항의가 아니라, 세대 전체가 기존 정치 질서의 정당성을 거부한 사건이었다.

샤르마 올리 네팔 총리는 사태 발생 이틀 만에 사퇴했고, 일주일 뒤 수실라 카르키 전 대법원장이 과도 총리로 선출됐다. 네팔 사상 첫 여성 총리였다. 거리의 분노가 정권 교체를 이끌어냈고, 국제사회는 이를 세대 전환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베이징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국 외교부는 ‘오랜 협력국’이라는 원칙만 언급했을 뿐, 한때 ‘친중 지도자’로 불리던 올리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중국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내정 문제가 아닌 정치 리스크의 구조 변화로 해석했다. 권력층이 아닌 거리의 민심이 외교의 변수가 된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베이징의 해법은 명확했다. 지도자보다 프로젝트, 충성보다 계약의 연속성을 택하는 방향으로 외교 전략을 재편했다.

베이징의 선택은 권력보다 협력의 지속성

샤르마 올리 총리의 퇴진은 중국 외교의 작동 방식을 바꿔놓았다. 과거라면 베이징은 친중 정권의 안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중국 외교부는 “네팔의 독자적 선택을 존중한다”라는 성명만 내고 개입보다 관망을 택했다. 몇 주 뒤 과도정부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 “양국의 오랜 협력을 이어가겠다”라고 밝혔다. 특정 인물의 친소보다 관계의 지속성과 사업의 연속성을 우선한 선택이었다. 외교의 무게가 정권이 아닌 협력의 신뢰로 옮겨간 것이다.

이 변화는 인프라 사업에서 가장 분명히 드러났다. 포카라 국제공항(Pokhara International Airport)은 중국의 차관으로 완공됐지만, 네팔 정부는 2024년에 이미 부채 일부를 보조금으로 전환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다른 핵심 사업인 중국–네팔 철도는 전체 구간의 98.5%가 터널과 교량으로 구성돼, 경제성보다 비용 분담과 리스크 관리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베이징은 정권의 성향보다 계약의 신뢰를 중시했다. 올리 총리의 친중 노선보다 중요한 것은 자산의 안전과 대출 회수의 확실성이었다.

중국은 이제 외교에서 정치적 친밀도보다 사업 관리 능력을 중시한다. 일대일로(BRI·육·해상 실크로드 구상)의 성패가 ‘관계의 깊이’가 아니라 ‘프로젝트의 완성도’에 달려 있음을 학습한 것이다. 베이징이 과도정부를 신속히 인정하고 “네팔의 선택을 존중한다”라는 메시지를 반복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외교의 중심축은 ‘정치 관계’에서 ‘성과 중심 외교’로 이동하고 있다.

스리랑카의 교훈, ‘후퇴’가 아닌 ‘재배치’

베이징의 이번 대응은 새로운 실험이 아니다. 이미 2024년 말 스리랑카에서 같은 방향이 확인됐다. 당시 스리랑카는 정권 교체와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동시에 직면했지만, 중국은 관계를 끊지 않았다. 새 정부가 출범하자 5억 달러(약 6,800억 원) 규모의 고속도로 자금을 다시 승인했고, 관광·물류·에너지 협력도 재개됐다. 외교적 후퇴 대신 사업의 지속을 택한 것이다.

상징적인 사례는 함반토타항(Hambantota Port)이다. 스리랑카 남부의 전략적 항만으로, 중국 차관으로 건설됐다가 상환 불능에 빠지면서 2017년 중국에 99년간 임대됐다. 이 사건은 일대일로(BRI·육·해상 실크로드 구상)를 둘러싼 ‘부채 함정 외교’ 논란을 불렀지만, 베이징은 논쟁보다 운영 정상화에 집중했다. 항만을 물류·관광 거점으로 재편하며 수익 구조를 개선했고, 외교적 명분보다 경제적 실익을 앞세웠다. “지원은 계속되지만 조건은 바뀐다”라는 메시지는 이때 분명해졌다.

중국의 전략은 후퇴가 아니라 재배치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질 때 제도적 협력을 강화하고, 정권이 교체되면 새로운 지도자와 관계의 형식을 조정하되 자금 흐름은 끊지 않는다. 스리랑카에서 드러난 이 방식은 말보다 실행이 앞서는 외교에 가깝다. 감정보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우선하는 계산이다. 중국의 국책은행들은 정권 교체기마다 대출 조건을 조정하거나 유예하며 관계의 일관성을 유지해 왔다. 네팔 역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네팔 청년층(15~24세) 실업률 추이(2020~2024)
주: 팬데믹 이후 실업률이 완화됐지만 여전히 20%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표에 가려진 네팔의 현실

시위의 배경에는 통계로 드러나지 않는 민생 불안이 있었다. 2024년 네팔의 청년 실업률은 20.8%에 달했고, 국내총생산(GDP)의 27%가 해외 송금에 의존했다. 해외 노동자에 기대던 가계소득은 이주 감소로 둔화됐고,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층의 좌절감은 깊어졌다. 세계은행은 네팔의 경상수지가 흑자이고 외화보유액도 안정적이라고 평가했지만, 그 안정은 가계의 체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통계상 균형은 유지됐지만, 청년의 삶은 멈춰 있었다.

시위 이후 경제 충격은 현장으로 번졌다. 중국인 관광객 예약이 절반 가까이 줄었고, 카트만두의 호텔 가동률은 70%대에서 30% 수준으로 떨어졌다. 등반 안내인, 여행사 직원, 재래시장 상인 같은 생계형 일자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관광업 침체는 숙박·운송·식료품으로 파급됐고, 세수와 임금이 동시에 줄었다. 외환과 물가가 안정돼도 일자리와 소득이 무너지면 회복은 더딜 수밖에 없다. 신뢰는 수치보다 생활에서 시작된다.

네팔 정부가 회복을 이끌려면 선택은 두 가지다. 첫째, 일대일로(BRI·육·해상 실크로드 구상)와 같은 대형 해외 사업의 계약 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해 국제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둘째, 전력망 보강, 도로 안전, 하천 정비 같은 중형 인프라 사업을 앞당겨 착수해야 한다. 국민이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경제는 움직인다. 거시지표의 안정은 시간을 벌지만, 사회의 신뢰는 ‘속도 있는 일자리’로 회복된다.

2025년 9월 관광산업 충격 지수
주: 전체 관광객 입국은 전년 대비 30% 감소했고(진한 빨강), 중국인 여행객 예약은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핑크).

투명성은 비용이 아니라 신뢰의 자본

이번 사태가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정치적 불안은 외부의 압력이 아니라 내부의 불신에서 비롯된다. 정부는 해외 차관과 대형 인프라 사업의 조건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회는 부채 상환 구조와 환율 위험을 정기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행정의 절차가 공개될수록 정책의 정당성은 강화된다. 경제 안정의 기초는 재정이 아니라 신뢰다.

교육과 제도 개혁도 병행돼야 한다. 대학은 예산 분석, 조달 감시, 정보공개 청구를 시민교육 과정에 포함돼야 한다. 젊은 세대가 공공 재정을 이해할수록 분노는 거리의 시위가 아닌 제도적 감시로 바뀐다. 이는 통제의 수단이 아니라 부패의 비용을 높이는 장치다. 투명성은 행정의 부담이 아니라 사회적 투자다.

중국의 태도는 그 방향을 보여준다. 베이징은 “누가 권력을 잡든 책임 있는 정부와 협력하겠다”라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정권이 아니라 국가의 일관성을 중시하는 외교다. 네팔이 일대일로(BRI·육·해상 실크로드 구상) 사업의 조건과 자금 흐름을 공개하고, 단계별로 진행 상황을 점검한다면 협상의 폭은 넓어질 것이다. 반대로 이런 절차를 외면하면 다음 위기는 더 빨리 찾아올 수 있다.

경제 지표는 안정돼 보여도, 거리에서 숨진 74명의 죽음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그 희생은 정부가 신뢰의 규칙을 새로 세워야 한다는 경고였다. 네팔이 이 교훈을 실천한다면 ‘연결성(connectivity)’은 도로와 철도만이 아니라 시민과 정부를 이어주는 신뢰의 기반이 될 것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Nepal Youth Protests and the BRI: How Street Anger Reshapes Beijing’s Neighborhood Policy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Picture

Member for

7 months 3 weeks
Real name
김은실
Position
연구원
Bio
세상을 과학의 언어로 읽고, 사실 위에 통찰을 더하는 글을 전합니다. 복잡한 현상 속에서 본질을 찾아 독자와 함께 사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