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기후 파급비용, 보이지 않는 손실을 경제에 반영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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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기후 피해, 선진국 GDP에도 연쇄 손실 확산 보이지 않는 기후 파급비용, 기존 경제모델이 놓친 위험 사전 대비와 회복력 투자가 재난 이후의 비용 줄이는 해법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선진국은 극단적 기후로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약 0.3% 규모의 손실을 겪고 있다. 그중 절반가량은 재해 지역이 아닌 곳에서 발생한다. 한 항만이 침수되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공장의 생산이 멈추고, 폭염으로 발전소의 냉각수가 부족해지면 전력 가격이 인접 국가로 번진다. 이런 연쇄적 피해가 바로 ‘기후 파급비용(climate spillover costs)’이다.
기후 파급비용은 재해의 직접 피해를 넘어 생산·물류·금융망 전반으로 확산되는 간접적 경제 충격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비용은 대부분의 통계와 예산 계산에서 빠져 있다. 한 지역의 폭풍이 국제시장에 파급되는 지금, 기후 파급비용은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손실이 아니다. 이를 국가 밖의 문제로 치부한다면 기후 위기의 실질적 비용은 계속 과소평가될 것이다.
해결책은 단순히 재난 기금을 늘리는 데 있지 않다. 간접 피해를 체계적으로 측정하고, 그 가치를 예산과 가격 체계에 반영해야 한다. 국경 밖에서 발생한 손실도 도로·전력망과 같은 인프라 피해처럼 ‘경제적 손상’으로 인식해야 한다. 최근 연구들은 이 비용이 이미 상당한 규모에 도달했으며, 지금 대응한다면 일부는 예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모델이 놓친 기후 리스크의 현실
정부와 중앙은행 등 주요 정책기관은 여전히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전제로 한 경제모델에 의존한다. 충격이 지역적으로 발생하고, 가격 조정이 이뤄지면 시장은 다시 안정된다는 가정이다. 그러나 이런 표준 모델로는 기후 충격이 무역과 금융망을 타고 확산되는 속도를 설명하기 어렵다. 실제로는 예산과 계약이 반응하기도 전에 피해가 국경을 넘어 전이된다.
극단적 기후로 인한 세계적 손실은 이미 매년 수천억 달러 규모에 이른다. 보험금 지급액만 봐도 최근 몇 년간 1,000억 달러(약 137조원)를 넘었고, 2024년에는 1,370억 달러(약 188조원)에 달했다. 기록적인 허리케인이 없어도 중간 규모의 폭풍이 산업과 인프라 전반을 멈춰 세우며 피해를 키운다. 기후 파급비용은 해안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 전체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장됐다. 물류나 에너지망이 흔들리면 재해 지역과 멀리 떨어진 가계의 생활비, 기업의 조달 비용까지 함께 상승한다.
기존 복지 분석 틀도 이 구조적 위험을 반영하지 못한다. 산불로 인한 휴교, 폭염으로 인한 학습 저하, 지방채 금리에 반영된 위험 프리미엄 등은 단순한 수요·공급 변수로 설명되지 않는다. 한 지역의 직접 피해는 전체 손실의 일부에 불과하다. 유럽중앙은행(ECB)의 2024년 연구는 무역 네트워크를 통해 GDP 손실이 몇 배로 확대된다고 분석했다. 간접 피해가 직접 피해를 넘어서는 것이 기후 파급비용의 본질이다.

주: 그래프(A) 전체 GDP 영향, 그래프(B) 직접효과 및 파급효과/직접효과(진한 남색), 파급효과(연한 회색)
기후 파급비용의 확산 구조
최근 연구들은 극단적 기후가 직접 피해 지역을 넘어 인접 지역의 생산성과 고용까지 약화시킨다고 지적한다. 공급 차질과 수요 위축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경제활동이 둔화되고, 이런 손실은 단기간에 그치지 않는다. 수년간 누적돼 지역 GDP를 지속적으로 끌어내리는 구조다. 기후 파급비용은 빠르게 확산되고, 넓게 영향을 미치며, 장기적으로 지속된다. 단순한 복구 중심 정책으로는 대응이 어렵다.
이 손실은 규모뿐 아니라 ‘가격’에도 반영된다. IMF 연구에 따르면 이상기후는 공급망 압박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에너지나 운송 병목이 발생하면 공공요금과 조달 비용이 오르고, 물가 상승이 전반으로 확산된다. 보험업계도 비슷한 경고를 내놓는다. 민간 보험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손실이 커지고 있으며, 미보상분은 결국 공공 재정과 가계로 전가된다. 2025년에는 보험금 지급액이 1,450억 달러(약 199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사회기반시설 보수가 지연되고, 공공요금과 복지지출 압박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

주: 재해 발생 이후의 경과 연도(X축), 실질 GDP 변동률(Y축)/전체 재해 평균효과(회색선), 중간 규모 재해의 GDP 영향(노란선), 대규모 재해의 GDP 영향(빨간선)
복지 분석이 바꾸는 기후 비용의 시각
기후 파급비용을 외부효과로 인정하면 복지 분석의 틀부터 달라진다. 폭염의 사회적 비용은 공장 가동 중단에 그치지 않고 생산성 저하, 국경 간 가격 상승, 부채 부담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분석 단위는 지역별 ‘부분 균형’이 아니라 경제 전반의 연쇄효과로 확장돼야 한다.
이 관점은 정책평가 방식의 변화로 이어진다. 연기나 폭염으로 인한 수업 결손, 지역 임금 하락, 납품업체 피해로 인한 지방채 금리 상승 등은 모두 비용편익분석에 포함돼야 한다. 재해의 영향은 반경 100km를 넘어 수년간 지속되기 때문이다.
거시 경제 차원에서도 대응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중앙은행은 반복되는 기후 충격이 물가 변동성을 높이고 통화정책의 예측력을 약화시킨다고 본다. 재정당국은 복구비와 공공부문 지원 부담으로 재정건전성이 악화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러나 예산 제약을 이유로 대응을 늦춘다면 피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기후 파급비용을 발생 단계에서부터 비용으로 인식하고, 인프라 투자와 동일한 수준의 기준 아래 적응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급망 거점을 포함한 국가 단위의 회복력 펀드를 조성하고, 학교나 병원 등 주요 공공시설에는 사전 재난 금융 장치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또 기업이 핵심 부품과 원재료의 조달처를 다변화하도록 유도하는 인센티브 제도도 병행돼야 한다.
기후 파급비용을 반영하는 정책 설계
기후 파급비용을 줄이기 위한 출발점은 ‘측정’이다. 각국은 무역·금융·노동시장 등에서 발생하는 간접 손실을 정기적으로 집계해 공개하는 기후 파급 손실 통계를 마련해야 한다. 유럽중앙은행(ECB)의 투입 산출 분석을 활용하면 연쇄 손실 규모를 정량화할 수 있다. 특히 교육과 보건 부문은 가격 인상으로 비용을 전가하기 어려운 만큼, 이런 데이터를 기반으로 회복력 투자를 우선해야 한다.
재정정책의 기준도 새로 세워야 한다. 기후 파급비용을 줄이는 투자는 단기 지출이 아니라 장기적 수익을 창출하는 투자로 분류해야 한다. 이를 제도화하면 물류 거점 강화나 친환경 에너지 전환 등 네트워크 취약성을 줄인 지역의 신용등급을 높이는 근거가 된다.
시장 측면에서는 기후 위험을 명확히 가격에 반영해야 한다. 탄소세만으로는 물리적 피해의 분포를 다루기 어렵다. 공공 조달 기관에는 기후 리스크 점검제를 도입해 주요 공급선에 차질이 생길 경우 대체 조달 계획을 미리 마련하도록 하고, 일정 수준의 폭염·홍수·산불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보상금이 지급되는 지표 기반 보험제도를 확대해야 한다. 이러한 장치는 피해 직후 유동성을 확보해 해고나 요금 인상 같은 2차 피해를 막는다. 보험 통계는 이런 접근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중간 규모의 재해가 반복되며 ‘만성적 손실’이 누적되고 있다. 그러나 피해 직후 자금이 신속히 투입되고 대체 조달 절차가 사전에 마련돼 있다면 연쇄 충격은 훨씬 빨리 멈춘다. 이는 단순한 재난 대응이 아니라 성장과 안정성을 함께 높이는 정책이다.
기후 비용을 다시 계산해야 하는 이유
기후 파급비용의 본질은 보이지 않는 손실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된다는 점이다. 표준경제모델은 이런 연쇄 효과를 포착하지 못해 위험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한다. 극단적 기후는 생산성과 고용을 약화시키고, 가격 충격은 공급망을 통해 확산되며, 보험손실은 상시적 부담으로 고착됐다. 재난지원금이나 임시 대책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경제의 회복력을 높이려면 회계 기준과 인센티브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기후 파급비용을 명확히 측정하고, 복지분석과 재정계획에 반영하며, 공공부문과 기업의 의사결정 단계에서 이를 가격에 포함시켜야 한다. 핵심 서비스가 멈추지 않는 사회적 복원력은 사전 대비에서 비롯된다. 지금의 투자가 재해 이후에 치를 막대한 복구비용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해법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Counting the Uncounted: Pricing Climate Spillover Costs in Advanced Economies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