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교실에서 시작되는 결속, 이민 국가 호주의 다음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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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속의 시작점은 정책이 아니라 교실에서 쌓이는 신뢰 다문화 교육은 복지의 영역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전략적 투자 통합의 깊이는 인구의 크기가 아니라 제도의 속도가 결정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호주는 이제 명실상부한 이민 국가다. 2023년 기준 전체 인구의 30.7%가 해외 출생으로, 세 사람 중 한 명이 이민 배경을 지녔다. 이는 OECD 회원국 가운데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학교에서도 15세 학생의 약 3분의 1이 이민 가정 출신이며, 사회 전반이 다문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2022~2023년 한 해 동안 해외 유입 인구는 51만 8천 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정부가 2024년부터 비자 규정을 강화하고 입국 비용을 높이더라도, 이미 형성된 인구 구성의 흐름은 되돌리기 어렵다.
이 변화는 경제와 사회 통합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젊은 이민층은 노동력과 성장의 기반이지만, 급격한 다양성 확대는 공동체의 신뢰를 흔들 수 있다. 통계로는 이민의 규모를 보여줄 수 있지만, 공존의 질은 교육이 결정한다. 언어 습득과 학교생활의 안전, 서로에 대한 이해가 결속의 출발점이다. 이제 과제는 ‘누가 오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배우느냐’다. 다문화 교육정책은 주변 영역이 아니라 사회 안정의 핵심 인프라가 됐다.
다양성의 성과와 그 이면
호주는 다문화 교육의 성과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나라다. 2022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이민 배경 학생들은 가정 형편이나 언어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비이민 학생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학업 성취를 보였다. 학교가 조기에 언어 지원과 학습 지도를 제공하면 출신은 성과의 결정 요인이 되지 않는다. 다문화 교육이 제도적으로 작동할 때, 다양성은 오히려 교육의 자산이 된다.
그러나 이런 성과가 사회적 신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교실 내 괴롭힘과 불안 지표는 OECD 평균을 밑돌고, 학생 간 갈등은 여전히 잔존한다. 언어 습득보다 더 어려운 과제는 서로를 이해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교육의 질이 높아도 교실의 신뢰가 무너지면 성취는 오래가지 않는다. 다문화 교육정책을 단순한 ‘지원 제도’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실의 안정이 곧 사회 통합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주: 호주의 이민자 배경 학생들은 2022년 PISA에서 비이민자 학생보다 수학(핑크) 24점, 읽기(빨강) 15점 높게 나타났다.
인구 구조의 변화와 경제적 논리
호주의 인구 구조는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 출산율은 1.6명 수준에 머물고, 고령층이 이미 인구의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재무부의 장기 전망에 따르면 향후 40년 동안 노동연령 인구는 꾸준히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공백을 메우는 핵심이 바로 젊은 이민자다. 그들은 단순한 인구 보충이 아니라 생산성과 세수를 유지하는 경제의 기반이다.
정부도 이러한 흐름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주택난과 비자 남용 논란이 겹치면서 학생비자 발급 기준을 강화하고 이민 규모를 조정하고 있다. 문제는 규모를 줄이면 통합의 질이 더 중요해진다는 점이다. 이민자 수가 줄수록 한 명의 적응 실패가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언어 습득이 늦어지면 직업 진입이 지연되고, 소속감이 약하면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민자의 조기 언어 교육과 사회 적응 지원은 복지가 아니라 투자로 봐야 한다. 교실에서 형성된 통합의 힘이 노동시장과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한다. 고령화가 불가피한 현실이라면, 해법은 감세나 보조금이 아니다. 교육을 통한 인적자본 확충이다. 다양성을 성장으로 전환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호주가 그 예외로 남으려면 교실에서의 통합이 먼저 완성돼야 한다.

주: 호주 학생의 괴롭힘 경험률은 여학생 24%, 남학생 26%로, OECD 평균(각각 20%, 21%)보다 높게 나타났다.
유럽의 교훈, 제도의 속도가 결속을 만든다
유럽은 호주가 맞닥뜨린 과제를 먼저 경험했다. 2024년 기준 유럽연합(EU) 전체 인구 중 약 4,470만 명이 이민자이며, 전체의 10%를 차지한다. 일부 국가는 초·중등 학생의 절반 가까이가 이민 가정 출신이다. 이민 유입은 둔화됐지만, 통합 정책은 오히려 정교해졌다. 각국 정부는 조기 언어교육과 교사 역량 강화, 학력·자격 인정 제도를 병행하며 정착 과정을 제도화하고 있다. 그 결과 사회적 긴장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점차 완화되는 흐름이 뚜렷하다.
유럽의 경험은 세 가지 교훈을 남긴다. 첫째, 규모보다 제도의 속도가 중요하다. 지원이 늦으면 불신이 쌓이고, 빠르면 사회는 안정된다. 둘째, 교사 교육이 통합의 성패를 가른다. 언어 지도와 문화 이해 역량을 갖춘 교사는 정책보다 앞선 통합의 기반이다. 셋째, 시험 점수만큼 중요한 것은 안전과 소속감이다. 교실이 불안하면 학습의 성과도 오래가지 않는다.
이 세 가지 원칙은 유럽만의 해법이 아니다. 인구 구조나 문화가 달라도, 통합의 핵심은 ‘언어 지원의 속도’와 ‘교사의 준비도’로 모인다. 호주 역시 같은 교차로에 서 있다. 정책의 방향을 늦추지 않고, 교실 안에서 신뢰를 설계할 때 결속은 가능해진다.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사회를 안정시키는 힘은 법이 아니라 교육에서 시작된다.
신뢰를 측정하는 교실의 조건
결속을 강화하려면 신뢰를 감정이 아닌 근거로 증명해야 한다. 교실의 현실이 데이터로 드러날 때 정책은 비로소 현장을 반영한다. 언어 숙련도는 입학 후 2년 안에 평가해 학습 진전을 점검해야 한다. 따돌림과 소속감 지표는 학교별로 정기적으로 공개해 지역 간 차이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조기 진단과 공개된 정보가 결합되면 학업 격차는 줄고, 교육에 대한 신뢰가 회복된다.
교사의 역량은 개인의 열의가 아니라 제도의 설계에서 만들어진다. 제2언어 교육이나 학급 운영 능력을 갖춘 교사에게는 별도의 전문 자격을 부여하고, 이를 인사 평가와 보수 체계에 함께 반영해야 한다. 교사의 전문성이 공정하게 인정될 때 교육 현장은 안정되고, 학생은 그 안에서 성장한다.
이민 정책은 시대의 여건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교실의 신뢰는 변하지 않아야 한다. 오늘의 교실이 안정될수록 내일의 사회는 예측 가능해진다. 데이터는 냉정하지만, 그 안에는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사회의 의지가 담겨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Rebuilding the Center: Multicultural Education Policy for a Changing Australia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