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시베리아의 힘 2, 아시아 에너지 질서를 다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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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협에서 계약으로 이동한 에너지 안보의 중심축 러시아의 절박함과 중국의 여유가 만든 비대칭 협상 PoS2와 알래스카 LNG가 재설계한 아시아의 가격 지도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연간 50bcm(billion cubic meters, 십억㎥ 단위)의 천연가스가 중국으로 향한다. 러시아와 중국이 추진 중인 가스관 ‘시베리아의 힘 2’(Power of Siberia 2, 이하 PoS2)는 아시아 에너지 지형의 중심축을 바꿀 프로젝트다. 여기에 미국 알래스카에서 일본·한국·대만을 대상으로 추진 중인 LNG 공급 계획(20mtpa, 약 27bcm)이 더해지면, 2030년대 초 아시아 전체로 약 77bcm의 추가 가스가 들어온다.
이는 원유로 환산하면 하루 90만 배럴에 해당하는 규모다. 단순한 공급 확대가 아니다. 해상 유조선에 의존하던 아시아의 에너지 위험이 육상 파이프라인으로 이동한다. 공급망의 불안정성이 줄고, 가격 급등 폭이 완화되며, 협상력의 중심은 판매국에서 구매국으로 옮겨진다.
중국의 에너지 수요 구조는 이미 변곡점에 들어섰다. 중동산 원유 비중은 10년 전 51%에서 최근 44%로 낮아졌다. 석유 소비는 정체됐고, 전기차와 LNG 트럭 보급이 휘발유·디젤 수요의 성장을 막고 있다. PoS2는 이런 흐름을 가속한다. 유가를 급락시키지는 않더라도, 아시아 전반의 에너지 가격 상단을 낮추고 변동 폭을 줄이는 완충장치가 된다.
위험의 중심이 유조선에서 파이프로
중국의 에너지 안보는 오랫동안 바다 위에 있었다. 말라카 해협(Malacca Strait)과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을 통과하는 원유·LNG 운송선이 공급망의 생명선이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중국은 비축 확대, 공급 다변화, 파이프라인 확충으로 이 구조를 서서히 바꿔 왔다.
2019년 가동된 ‘시베리아의 힘 1’(Power of Siberia 1, 이하 PoS1)은 연간 38bcm에서 44bcm으로 확장되고 있다. 뒤를 잇는 PoS2는 몽골을 경유해 추가로 연 50bcm을 공급할 예정이다. 유조선이 바다를 건너던 시대에서, 이제 가스가 대륙을 관통하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 배관가스는 해상 수송보다 비용이 적고 제재를 우회하기 쉬워 안정성이 높다. 이 구조 덕분에 중국은 현물 시장의 급등기에 반복되던 ‘겨울 불안’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계약된 파이프라인 물량은 현물 LNG의 가격 변동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에너지 안보의 중심은 이제 ‘운송 경로’가 아니라 ‘계약 구조’로 이동했다.
이 변화는 가격 체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과거 시장은 현물가에 좌우됐지만, 앞으로는 장기 계약의 조건과 결제 통화가 시장의 방향을 결정한다. 러시아와 중국이 대금을 위안화와 루블로 분할 결제하기로 한 결정은 단순한 기술적 조치가 아니다. 달러 중심 결제 질서에 대한 실질적 도전이다.

주: 중동산 원유 비중(핑크)은 51%에서 44%로 줄고, 아시아·태평양산(빨강)은 2%에서 13%로 늘어나며 중국의 수입 구조가 다변화됐다.
절박함의 비대칭이 만든 긴 협상
러시아는 유럽 시장을 잃었다. 2021년 유럽연합(EU)의 러시아산 가스 수입량은 약 155bcm이었지만, 2024년에는 40bcm 이하로 줄었다. 유럽이 2027년까지 러시아산 가스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히자, 러시아는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반면 중국은 국내 생산 증가와 중앙아시아·미얀마 등 다변화된 수입국 덕분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이 비대칭이 협상을 길게 만든다.
가장 큰 쟁점은 가격과 비용 분담이다. 러시아의 가스 생산 단가는 1,000㎥당 약 125달러(약 17만 원)로, LNG 평균가 370달러(약 50만 원)보다 훨씬 낮다. 하지만 제재 리스크와 금융비용을 고려하면 실제 수익은 제한적이다. 중국은 이를 근거로 러시아 국내가격에 가까운 수준의 공급을 요구하고 있다. 또 몽골을 통과하는 2,600km 노선의 건설비와 유지비 부담을 두고도 이견이 남아 있다.
이 때문에 PoS2의 완공 시점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2025년 안에 협정이 체결되더라도 초기 물량이 들어오기까지 최소 5년이 걸린다. 반가동은 2034~2035년이 돼야 가능하다는 전망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기대의 변화’다. 실제 공급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시장은 이미 반응하고 있다. 계약 구조가 재편되고, 기존 LNG 장기계약이 다시 조정된다. 에너지 시장은 언제나 현실보다 ‘예상된 공급’에 먼저 움직인다.
원유 급락이 아닌 가격 안정의 회복
PoS2의 효과는 원유보다 가스 시장에서 먼저 나타난다. 가스는 전력·산업·난방 부문에서 석탄과 중유를 대체하지만, 승용차의 휘발유 수요까지 바꾸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PoS2가 연간 50bcm을 공급하면 약 45Mtoe, 즉 하루 90만 배럴의 원유를 대신하는 규모다. 산업용 연료와 난방용 석유 수요를 크게 줄이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원유 가격의 불안정성이 완화된다. 중동 지역의 공급 차질이나 해상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중국이 즉각적인 에너지 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낮다. 실제로 2024년 중국의 원유 수입량은 전년 대비 1.9% 감소했다. 석유 소비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석유화학 산업을 제외하면 이미 정체 단계다. 유가가 급락하지 않더라도 시장의 긴장은 완화되고, 가격의 상단은 낮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더 이상 헐값 계약을 수용하지 않는다. 기존의 유가 연동 계약 대신 일정 범위에서만 가격이 움직이도록 설계된 ‘가격 조정 구간’을 선호한다. 급등기에는 중국이, 급락기에는 러시아가 손해를 보는 구조를 완화하기 위해서다. PoS2 협상은 단순한 가격 조정이 아니라 위험을 어떻게 분담할지에 대한 문제다. 경제 논리와 외교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주: 시베리아 2(연 500억㎥)와 알래스카 LNG(연 272억㎥)의 합산 공급은 아시아의 겨울철 가격 불안을 완화할 수준이다.
알래스카 LNG가 바꾼 에너지 구도
같은 시기 미국은 또 다른 축을 움직이고 있다. 올해 봄,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국에 관세를 경고하며 일본·한국·대만에 알래스카 LNG 참여를 압박했다. 알래스카 프로젝트는 연 20mtpa(약 27bcm) 규모로, 2030~2031년 상업 가동을 목표로 한다. JERA·POSCO·CPC 등 아시아 주요 기업이 투자 의향서를 제출했고, 자금 조달 논의도 본격화했다.
만약 PoS2와 알래스카 LNG가 동시에 완공된다면, 아시아의 가스 공급량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까지 전 세계 LNG 공급이 급증할 것으로 본다. 반면 중국의 LNG 수요는 2025년 기준 전년 대비 17% 감소했다. 파이프라인 수입 증가와 국내 생산 확대가 현물 구매를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겨울철 가격 급등은 완화되고, 시장의 주도권은 판매국이 아닌 구매국으로 옮겨가고 있다.이 변화에 맞춰 정책의 중심도 바뀌어야 한다. 정부는 ‘자원 확보’보다 ‘시장 설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에너지 계약의 구조, 가격 공식, 결제 통화 체계를 종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공공 인력 교육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 계약의 위험과 제재 대응을 다루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각국 부처는 조달과 예산의 틀도 다시 짜야 한다. 오일→가스 전환의 한계비용을 분석하고, 장기 인프라의 좌초 위험을 재정 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제재 확대에 따른 거래 상대방 위험과 가격 공식의 실패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해 조달 전략에 포함해야 한다. 낙관은 데이터로 제어되고, 위험은 계약 조항으로 관리돼야 한다. PoS2와 알래스카 LNG는 단순한 에너지 프로젝트가 아니다. 두 노선은 아시아의 가격 체계를 새로 짜고 협상의 규칙을 바꾼다. 에너지 시장의 방향은 더 이상 해협의 위치가 아니라 계약서의 문장 속에서 결정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Power of Siberia 2 and Asia's Energy Price Reset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