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고정비의 덫에 갇힌 가계, 해답은 주거 지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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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비 부담에 갇힌 네덜란드의 가계 저축 임차 가구에 집중된 주거비 부담과 구조적 불균형 가계의 재정 안정과 사회 생산성을 높이는 주거 지원 필요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5년 네덜란드의 도시 지역에서 민간 임차 가구의 절반 가까이는 가처분소득의 40%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하고 있다. 주거비가 가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처럼 크면 저축 여력은 급격히 줄어든다. 식비나 기타 생활비는 조정할 수 있지만, 월세는 매달 빠짐없이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9~2023년 네덜란드 가계 예산 자료에 따르면, 가구당 필수 지출은 2023년에 약 2,000유로(약 310만원) 늘었다.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 상승이 주요 요인이었다. 같은 기간 가처분소득도 증가했지만, 생활비 중 고정비 비중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특히 민간 임차인은 자가 소유자보다 주거비 부담이 훨씬 크다.
주거비가 과도하게 고정돼 있는 한, 소득이 늘어도 소비와 저축 패턴은 달라지지 않는다. 고정비를 줄이는 것이야말로 저축률을 높이고 가계의 재정 완충력을 키우는 출발점이다. 주거 지원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사회적 이동성과 경제 안정성을 높이는 핵심 정책 수단이다.
주거비가 만든 구조적 불균형
경제학자들은 가계를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 일부는 소득이 늘면 일정 부분을 저축하지만, 다른 일부는 여유자금이 부족해 소득 대부분을 소비에 사용한다. 후자의 비중은 선진국에서도 전체 가구의 3분의 1에 이르며, 이들 중 상당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도 현금 유동성이 낮아 소득 감소나 돌발 지출에 취약하다.
이들의 재정을 압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주거비다. 2023년 기준 유럽연합(EU) 가구의 평균 주거비는 가처분소득의 19.7%였으며, 네덜란드는 그보다 높은 23%를 기록했다. 이는 유럽 상위권 수준으로, 전국 평균만 봐도 주거비가 고정비 지출의 중심에 있음을 보여준다. 도심 지역으로 한정하면 민간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은 훨씬 크다. 주거비가 높을수록 소비 여력은 줄고, 저축으로 전환될 자금은 고정 지출에 묶인다.
이 구조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고정비 부담을 직접 낮추는 정책이 필요하다. 임대료 보조, 공공임대 확충, 세제 지원 등은 단순한 보조금이 아니라 가계의 현금흐름을 안정시키는 장치다. 고정비가 줄면 가계는 저축뿐 아니라 교육비, 자녀 학습비, 건강 관리비 등 생산적 지출로 전환될 수 있다. 복지정책이 성장 정책으로 이어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주: 연도(X축), 중간 소득 가구의 평균 고정 및 필수 지출(왼쪽 Y축), 중간 소득 가구의 지출 비율(오른쪽 Y축)/주거비(파란색), 거주 관련 비용(하늘색), 육아비(진분홍색), 차량 유지비(연분홍색), 기타 고정비 (진회색), 예비비(연회색), 가사비용(자주색)
고정비가 저축률을 결정짓는 방식
네덜란드의 가계 자료는 주거 형태에 따라 지출 구조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다. 자가 소유 가구는 소득의 약 42%를 필수 지출에 사용하지만, 임차 가구는 57%를 쓴다. 절약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다. 임차 가구는 식비·교통비·의료비 등 생활비 수준은 비슷하지만, 소득이 더 낮고 주거비 비중이 높아 재정적 여유가 거의 없다. 특히 민간 임차인은 임대료가 높아 다른 항목의 지출을 줄일 여지가 거의 없다.
이처럼 고정비가 과도하면 소득이 늘어도 저축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매달 고정적으로 빠져나가는 비용이 크면 추가 소득이 생겨도 대부분 생활비에 흡수된다. 2018년 이후 네덜란드의 평균 소득은 꾸준히 증가했지만, 임차 가구의 재정 여력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민간 임대 시장이 확대되면서 주거비 부담이 집중된 결과다. 결국 소득 성장은 필요조건일 뿐, 고정비 부담을 줄이는 정책이 병행돼야 저축이 가능하다.
현재 네덜란드 가구의 약 3분의 1은 소득 대부분을 생활비로 사용하는 ‘현금흐름 제약 가구’에 속한다. 이들에게 주거 지원은 단순한 보조금이 아니라 숨통을 트이게 하는 구조적 완충장치다. 고정비가 줄어들면 저축 여력이 생기고, 가계의 재정 안정성이 회복된다. 주거 지원은 이렇게 소비·저축 구조를 개선해 경제 성장의 기반을 넓히는 정책으로 작동한다.

생산적 정책으로서의 주거 지원
국제기구들은 공통된 방향을 제시한다. 주택 가격 압력을 낮추기 위해 저렴한 임대주택과 공공주택을 확충하고, 민간 임차인 등 주거비 부담이 큰 계층에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동시에 세입자 보호를 강화하면서 장기 투자를 유도해 민간 임대시장의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이 세 가지 원칙의 핵심은 고정비를 줄여 가계의 저축 여력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주거비가 오를 때는 완충 장치로 작동하고, 시장이 안정될 때는 지출의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
보건과 사회정책 연구도 같은 결론을 보여준다. ‘하우징 퍼스트(Housing First)’, ‘임대 지원(tenancy support)’, ‘보조 주거(assisted living)’ 등 다양한 사례를 분석한 결과, 공통적으로 비용 절감과 삶의 질 개선이 나타났다. 노년층의 병원 방문이 줄고, 독립적 생활이 길어지며, 돌봄 단계 전환도 원활해졌다. 이는 복지 효과를 넘어 공공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성과로 평가된다.
네덜란드의 정책 방향도 이와 같다. 주거비 과부담은 주로 도시 임차인에게 집중돼 있으며, 도심의 주거비가 농촌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신규 주택 공급과 표적화된 보조를 도심에 집중할수록 정책 효과가 크다. OECD 역시 임대주택 공급 확대와 투자 인센티브 유지의 병행을 권고했다. 공급정책과 주거 지원이 함께 추진될 때, 과부담은 완화되고 고정비는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가계의 저축 여력과 국가의 재정 안정성이 함께 높아진다.
주거 안정이 만드는 사회적 효과
주거 안정은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는 기반이다. 안정된 거처는 노동시장 참여를 촉진하고, 교육·돌봄·건강 등 사회 전 영역의 지속 가능성을 높인다. 특히 청년층과 학생에게 주거는 학습의 지속성과 직결된다. 유럽 각국에서 생활비 상승이 청년의 독립을 늦추고, 임대료가 보조금 수준을 넘는 지역에서는 학업 중단 위험이 커지고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주거비 부담이 클수록 결석률과 스트레스 수준이 높아진다.
정책은 이 같은 파급효과를 반영해야 한다. 지역 임대료 수준에 맞춘 장학금과 긴급 지원금, 지방정부와의 협력을 통한 공공임대 접근성 개선, 임대료 상승률에 연동되는 생활비 지원 등은 교육의 지속성을 높이면서 재정적 완충 역할을 한다. 이는 교육정책의 확장이 아니라 사회정책의 정교화다.
국가 재정 당국은 영향이 큰 영역부터 대응해야 한다. 주거비 과부담이 집중된 도시 지역에 저렴한 임대주택을 확대하고, 민간 임차인 등 고정비 압박이 큰 계층에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시장이 불안정할 때는 한시적으로 보조를 늘리되, 안정 국면에서는 점진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목표는 단순한 보전이 아니라 구조적 해소다. OECD 역시 공급 확대와 지원 정책의 병행을 강조한다. 두 축이 함께 작동할 때, 주거 안정은 가계의 저축과 사회적 투자 모두를 견인한다.
저축이 가능한 사회로 가려면
주거비는 가계의 저축 여력을 좌우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결정적인 변수다. 고정비가 높으면 소득이 늘어도 여유 자금이 생기지 않는다. 임대료와 공공요금, 식비처럼 줄이기 어려운 지출이 가계의 재정 구조를 고착시킨다. 따라서 저축률을 높이려면 의지보다 제도적 개입이 먼저다.
주거 지원은 그 해법이다. 임차인의 부담을 줄이고, 공공임대와 저렴한 주택 공급을 병행하면 가계의 현금흐름은 즉시 개선된다. 이는 단순한 저축 확대를 넘어 교육·보건·교통 등 생산적 지출로 이어져 사회 전반의 성장 기반을 강화한다.
정책의 초점도 분명해야 한다. 주거 과부담률은 실업률과 마찬가지로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할 핵심 지표다. 고정비 구조를 관리하는 일은 곧 경제의 안정성을 높이는 일이다. 이러한 제도적 조정이 이뤄질 때, 가계는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저축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게 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Fixed-Cost Trap: Why Housing Support Unlocks Higher Savings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