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품 붕괴 시 美 가계 자산 8% 증발" 속속 제기되는 거품론, AI 붐은 거대한 테마주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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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이코노미스트 "AI 거품, 닷컴 때처럼 붕괴할 시 천문학적 피해" 월가 등서 쏟아지는 경고, 일각선 '테마주 유행'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하드웨어 기업만 급성장하는 구조, 소비자 대상 서비스는 수익성 부족

인공지능(AI) 열풍으로 폭등한 미국 주식 시장이 ‘닷컴 버블’ 수준의 붕괴를 맞을 시 미국 전체 가계 자산의 8%가 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규모 투자금이 투입된 AI 서비스 대부분이 유의미한 경제적 성과를 입증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AI 거품 붕괴에 대한 우려가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양상이다.
AI 열풍 속 과열된 美 증시
5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22년 오픈AI의 챗GPT 출시 이후 미국 증시는 약 71% 상승했다. 올해 2분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시가총액은 미 국내총생산(GDP)의 175%를 넘어섰다. 엔비디아는 지난달 세계 최초로 기업가치 5조 달러(약 7,100조원)를 달성했고, 오픈AI는 1조 달러(약 1,450조원) 규모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같은 흐름이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당시와 유사하다고 진단했다. 실제 닷컴 버블 당시에도 S&P500 시총이 미 GDP의 124%까지 치솟았고, 상위 5개 IT 기업의 평가액은 2조 달러(약 2,900조원)까지 불어났다. 거품이 터진 뒤엔 기술주 가치가 평균 76% 폭락했고, GDP 대비 S&P500 시총 비율도 53%P 미끄러졌다. 이후 이전 고점을 되찾기까지 20년이 걸렸다.
현시점 미 일반 가계의 주식 보유 비율은 20%며, 보유액은 총 42조 달러(약 6경1,200조원)에 달한다. 해외 투자자들 역시 18조 달러(약 2경6,200조원)에 해당하는 미 주식을 보유 중이다. 향후 AI 거품이 붕괴할 경우 천문학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코노미스트는 만약 닷컴 붕괴 당시와 같은 시세 하락(76~80%)이 반복될 시 16조 달러(약 2경3,300조원)에 달하는 미 가계 자산이 증발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는 미 가계 전체 자산의 8%에 해당하는 규모다. 해외 투자자 역시 7조 달러(약 1경170조원) 규모의 손실을 떠안게 될 위험이 있다. 이는 연금·보험 등 간접 보유분 20조 달러(약 2경9,100조원)는 포함하지 않고 산출한 금액이다.
미국 경제에도 막대한 후폭풍이 몰아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경제는 소비가 떠받치는 구조기 때문이다. 미국의 GDP에서 개인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달한다. 경제학자들은 AI 거품 붕괴가 현실화할 경우 미국 연간 소비가 8,900억 달러(약 1,300조원)가량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는 전체 GDP의 2.9%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월가서도 거품 붕괴 우려 확대
이 같은 'AI 거품'에 대한 경고는 월가에서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4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발표한 13F 보고서에 따르면, 사이언자산운용은 지난 3분기에 팔란티어 풋옵션 9억1,200만 달러(약 1조3,200억원)와 엔비디아 풋옵션 1억8,700만 달러(약 2,700억원)를 순매수했다. 풋옵션은 미리 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팔 수 있는 권리다. 풋옵션을 매수한 투자자는 향후 주가가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한 셈이다. 사이언자산운용은 2008년 미국 증시 폭락을 예견했던 ‘숏의 전설’ 마이클 버리가 이끄는 자산운용사다. 버리 대표는 앞서 2008년 금융 위기 전에도 이와 유사한 전략을 채택한 바 있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최고경영자) 역시 4일 홍콩 금융 서밋에서 "시장 사이클은 일정 기간 상승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요인이 투자 심리를 바꾸고 조정을 유발할 수 있다"고 발언하며 증시 하락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기술주의 밸류에이션은 이미 포화 상태"라며 AI 관련 기업들에 대한 투자 과열을 지적하기도 했다. 테드 픽 모건스탠리 CEO도 “10~15% 조정은 오히려 바람직한 수준”이라며 골드만삭스의 경고에 가세했다.
이 같은 비관론이 꾸준히 제기되는 것은 곳곳에서 막대한 규모의 AI 투자가 이뤄지고 있음에도 불구, 이렇다 할 성과를 내는 AI 기업을 찾아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2024~2025년 AI 데이터센터에 총 7,500억 달러(약 1,000조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2029년까지 전 세계에서 이뤄질 AI 투자는 3조 달러(약 4,100조원) 규모로 예상된다. 하지만 현시점 눈에 띄게 높은 수익을 달성하고 있는 AI 기업은 사실상 대량의 AI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판매하는 엔비디아뿐이다.
미국 경제가 침체하는 와중에 AI 관련 종목들의 주가만이 과열돼 있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최근 미국 고용 시장은 눈에 띄는 둔화 흐름을 보이는 중이다. 글로벌 인사 컨설팅 업체 챌린저, 그레이 앤 크리스마스(Challenger, Gray & Christmas)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기업들은 15만3,000명 이상을 해고했다. 이는 전월 대비 3배, 전년 대비로는 175% 늘어난 수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금융권에서는 건전성 우려마저 확산하고 있다. 미국의 중·소형 지역은행을 중심으로 부실 대출 사례가 잇따라 발생했으며, 3조 달러(약 4,200조원) 규모에 달하는 사모대출(신용) 시장에서도 위험 신호가 감지됐다.
이에 일각에서는 현재 AI 종목의 인기가 '테마주 열풍'과 닮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 테마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진 사건을 기준 삼아 같은 방향으로 주가가 움직이는 종목군으로, 흔히 객관적 성과 없이 기대감만으로 가격이 변동되는 경우가 많다. 실적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주가가 별다른 '재료' 없이 시장의 근거 없는 기대감에 따라 급등락한다면 이는 사실상 거품이나 마찬가지다. 섣부른 테마주 투자는 위험하다는 경고가 흔히 나오는 이유다.

AI 시장 수익, 사실상 하드웨어 기업에 쏠려
그러나 AI업계는 이 같은 시장의 우려가 과도하다고 주장한다. 사라 프라이어 오픈AI 최고재무책임자(CFO)는 5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월스트리트저널(WSJ) ‘테크 라이브’ 콘퍼런스에서 “지금의 논의는 AI 거품 가능성에 너무 집중돼 있다”며 “AI가 개인과 산업에 미칠 실질적 효과를 감안하면 더 큰 ‘과열(exuberance)’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역시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AI 인프라 하이퍼스케일러는 이미 2조5,000억 달러(약 3,600조원)가 넘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어 닷컴 버블 때와 다르다”며 “수조 달러 규모의 거대한 전환기에 이제 막 수천억 달러를 투입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현재의 AI 열풍과 닷컴 버블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번 AI 사이클이 수익성이 검증된 대형 기술주 중심의 집중형 랠리를 보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 역시 최근 기자회견에서 “닷컴 시대는 아이디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수익과 실체가 있는 기업들이 평가받고 있다”며 AI 산업에 대한 낙관적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오늘날 AI 기업들은 닷컴 버블 시대 기업들과 달리 실제 수익을 내고 사업 모델이 확립된 ‘진짜 기업’이라는 평가다.
다만 시장은 거품론을 근본적으로 불식하기 위해서는 AI 기술이 보다 실용화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 시장 전문가는 "엔비디아 등 AI 관련 하드웨어·설비를 취급하는 기업들이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실제 소비자들이 접하는 AI 서비스에서는 충분한 수익이 창출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AI 기술이 시장 최전방에서 유의미한 경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 시장은 AI가 이미 세상을 바꾼 것처럼 반응한다"며 "이는 명백한 과열"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