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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폴리시] 일대일로 의존 리스크, 자금보다 중요한 기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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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onths 3 wee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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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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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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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과학의 언어로 읽고, 사실 위에 통찰을 더하는 글을 전합니다. 복잡한 현상 속에서 본질을 찾아 독자와 함께 사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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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규격에 묶이지 않는 교육과 기술의 개방적 생태계
인프라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는 기술 기반과 전문 인력의 질
외부 자금 경쟁을 넘어, 기술 자립을 중심에 둔 성장 구조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5년 초,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사업이 83% 축소됐다. 같은 시기 중국의 일대일로(BRI, Belt and Road Initiative·중국의 해외 인프라·투자 전략)는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 집행을 발표했다. 불과 몇 달 간격의 두 결정은 세계 개발의 무게중심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변화는 단순한 원조 축소나 투자 확대의 문제가 아니다. 개발 재원의 구조가 ‘다자 경쟁’에서 ‘단일 공급’으로 바뀌면서 국가 간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 영향력은 항만과 전력망 같은 물리적 인프라를 넘어, 대학·직업학교의 교육과정과 기술 표준, 인력 훈련 체계까지 확장되고 있다.

핵심은 ‘얼마나 쓰느냐’가 아니라 ‘누가 쓰느냐’다. 자금의 출처가 기술 이전과 인재 양성의 방향을 결정하면 의존 리스크는 산업을 넘어 교육 생태계로 번진다. 결과적으로 향후 10년의 표준과 인재 주도권은 자금을 제공하는 쪽으로 이동한다. 지금의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각국이 스스로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역량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드러내는 경고다.

가치사슬 이동의 본질, 플랫폼으로 변한 프로젝트

일대일로(BRI)는 2013년 교통 인프라 개발에서 출발했다. 이후 에너지, 디지털, 산업단지로 확장되며 거대한 공급망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겉으로는 도로와 철도 건설이지만, 실제로는 자본·기술·노동이 한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는 구조다.

인도네시아는 그 변화를 가장 빠르게 체감한 국가다. 2023년 세계 니켈 생산의 절반 이상(51%)을 차지했지만, 정제 역량의 4분의 3이 중국계 자본과 기술에 의존했다. 니켈 제련에서 배터리 소재, 그리고 수출까지 이어진 가치사슬이 하나의 표준으로 고정되자, 가격 변동이나 수출 규제 변화가 곧 정책 여지 축소로 이어졌다.

이 구조는 단순한 투자 종속이 아니다. 생산 설비와 기술, 안전 규정이 모두 같은 네트워크에 맞춰 설계되면서 산업 전체가 단일 규격에 종속됐다. 이를 ‘잠금 효과(locked-in effect·특정 표준에 묶여 전환 비용이 급증하는 현상)’라 한다. 산업 규모가 커질수록 전환 비용은 커지고, 정책의 자율성은 점점 줄어든다. 결국 개별 프로젝트의 합이 아니라, 표준을 통제하는 힘이 산업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누가 자금을 대느냐보다, 누가 규칙을 설계하느냐가 성장의 방향을 결정한다.

미국의 대(對) BRI 국가 해외직접투자(FDI) 추이
주: 중국의 일대일로(BRI) 참여 이후 5~7년간 미국의 대(對)BRI 국가 투자액이 증가했으며, 전략적 균형 조정이 약화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지역별 사례가 드러낸 의존의 구조, 확산하는 단일 표준의 그늘

동남아는 일대일로 의존의 첫 시험장이자 경고장이다. 중–라오스 철도는 2024년 한 해 동안 1,960만 톤의 화물을 실어 나르며 누적 7,000만 톤을 넘어섰다. 물류 효율은 개선됐지만,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Vientiane)의 대학과 직업학교는 신호 시스템과 운영 소프트웨어, 실습 장비를 모두 중국식으로 전환했다. 단기 고용은 늘었지만, 교육과 산업이 단일 공급망에 묶이면서 기술 전환은 점점 어려워졌다.

유럽과 아프리카도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 헝가리는 유럽 내 최대 규모의 중국 배터리·전기차(EV) 투자를 유치하며 데브레첸(Debrecen)에 대형 공장을 세웠다. 모로코는 유럽과 미국의 교역망을 활용해 중국 배터리 제조사를 끌어들이며 북아프리카의 거점으로 부상했다. 일자리와 설비는 늘었지만, 기술·부품·물류의 단일화가 동시에 진행됐다. 특정 부품의 공급이 지연되거나 표준이 바뀌면 직업훈련, 견습제도, 자격체계가 함께 흔들린다.

파키스탄의 중국과 파키스탄 경제회랑(CPEC)은 또 다른 형태의 의존을 보여준다. 발전 용량은 확대됐지만, 용량요금이 급등하고 순환부채가 누적되면서 교육·보건 예산이 압박을 받았다. 발전소 기술자 양성은 늘었으나,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교육과 실험실 확충은 재정 부담에 밀려 후순위로 밀렸다. 인프라의 성장 속도와 인적자본의 성장 속도가 어긋날 때, 외형적 성장은 가능해도 자립성은 오히려 약화한다.

경쟁 재원의 약화, 줄어드는 선택과 협상의 여지

지난 10년 동안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DFC), 영국 국제투자공사(BII), 일본국제협력기구(JICA)와 공적개발원조(ODA)는 세계 개발 재정의 균형추 역할을 해왔다. 이들 기관은 차입국에 다양한 기술 규격과 협력 모델을 제시하며 일대일로 의존을 완화했다. 경쟁 재원이 존재할 때, 국가는 자금뿐 아니라 표준과 제도까지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25년 초,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대규모 축소로 상황은 급변했다. 무상성 자금과 기술 협력이 함께 사라지면서 교육, 안전관리, 연구 장비 같은 ‘비물적 인프라(소프트웨어 인프라)’ 지원이 끊겼다. 이 공백을 메운 것은 공급업체 중심의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결과적으로 업체가 제공하는 기술훈련이 사실상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경쟁 자금이 일부 남아 있어도 ‘보조금(grant)’과 ‘기술지원(technical assistance)’이 줄면 표준의 다양성은 유지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차입국의 협상력은 약화하고, 대학과 직업학교는 공급사 매뉴얼에 의존하게 됐다. 일본은 ‘품질 인프라’로, 영국은 녹색전환 투자를 통해 균형을 시도했지만, 규모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인프라 계약이 단일 자금과 단일 표준으로 묶이면 다음 단계는 교육의 종속이다. 경제의 주권이 이동하면, 교육의 주권도 함께 따라간다.

일대일로(BRI) 참여 이후 일본의 대(對)BRI 국가 해외직접투자(FDI) 추이
주: BRI 이후 일본의 대(對)BRI 국가 투자액은 완만하지만,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며, 이는 상업적 요인에 기반한 확대 흐름으로, 미국의 규모를 대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책 해법과 실행 전략, 인재 중심 계약으로 전환

해법의 핵심은 배제가 아닌 조정이다. 일대일로를 거부하기보다 그 틀 안에서 의존을 줄일 제도적 장치를 세워야 한다. 자금의 흐름을 관리할 때 국가의 선택권이 확보된다. 첫째, 인프라 계약에는 인재 양성 예산을 의무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사업비 산정 과정에서 교수 연수, 실험실 확충, 기술자 훈련에 필요한 재원을 별도 항목으로 설정해야 한다. 이 예산은 공급사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하며, 경기 변동에도 유지될 수 있는 장기 재원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둘째, 기술 편중을 완화할 수 있는 교육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중국 시스템을 운용할 역량을 확보함과 동시에 유럽연합(EU)과 국제전기표준회의(IEC) 규격을 함께 익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정부, 대학, 산업계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자격제도와 교육과정을 통해 기술 간 호환성과 전환성을 높여야 한다.

셋째,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DFC), 영국 국제투자공사(BII), 일본국제협력은행(JBIC) 등 주요 공적금융기관을 연계해 자금과 기술 협력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야 한다. 이러한 연합 조달 구조를 통해 G7의 글로벌 인프라 파트너십(PGII)이 실질적인 대안으로 기능할 수 있다. 항만, 전력, 철도 계약에는 ‘국제 안전인증’과 ‘인재 예산(교육·자격 비용 포함)’ 조항을 의무화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인프라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표준을 이해하고 기술을 다룰 수 있는 인재가 늘어날 때, 외부 자금의 사업은 자립의 기반으로 바뀐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BRI Dependency Risk Is Rewiring Global Value Chains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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