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공서열 놔둔 채 정년만 늘리면, 인건비·청년실업률 폭증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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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률적 정년연장, 고용 절벽으로 생산성 낮은데 월급은 더 받아 직무급제 등 임금 체계 개편 의무화 해야

노동계가 법정 정년을 65세로 연장하자는 주장에 불을 붙이고 정부·여당이 입법에 착수하면서 찬반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저출생·고령화에 따라 은퇴 연령을 늘리는 것은 불가피한 과제가 됐지만 그 방식이 '일률적인 정년연장'으로 귀결된다면 문제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연공서열형 임금 체계가 대부분인 한국 노동 시장 여건상 정년연장은 기업에 막대한 인건비 부담을 안길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청년 취업난을 악화시키고 세대 간 갈등을 키울 공산도 크다.
60세 전년 의무화 이후 청년고용 감소 뚜렷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달 출범한 정년연장특별위원회는 이번 주 양대 노총과 경제계가 참여하는 실무회의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정년연장 논의에 나설 예정이다. 단, 다양한 재고용 제도를 병행할 것인지, 2033년 또는 2041년 등 정년연장을 완성하는 최종 시점에 대한 방향성은 협의 과정을 거치면서 구체화될 전망이다.
최대 쟁점은 임금 문제다. 양대 노총은 정년연장이 고령자 소득 공백을 막기 위한 제도인 만큼 현행 임금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숙련 인력의 임금을 깎는 방식을 택한다면 오히려 고용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노사 합의에 따라 일부 조정할 여지는 두겠다는 의견을 특위에 냈지만, ‘임금 삭감 없는 정년 65세’가 기본 방침이다.
반면 경영계는 인건비 부담과 청년 일자리 문제를 들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실제 국가데이터처의 경제활동인구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한국 상용근로자의 연령별 분포는 59세에서 60세로 넘어가는 시점에 급격히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1964년생 상용근로자는 59세였던 2023년에 29만1,000명이었으나, 60세가 된 2024년에는 23만7,000명으로 5만5,000명 감소했다. 1960~1964년생 집단에서도 59세에서 60세로 넘어가는 시점에 상용근로자가 평균 5만6,000명(감소율 20.1%) 줄었다. 이는 법정 정년 60세에 맞춰 상용근로자가 대거 정년퇴직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종업원 300인 이상 대기업의 상용직에서 법정 정년의 영향은 더 뚜렷했다. 대기업 상용직 1964년생 근로자는 2023년(59세) 4만5,000명이었지만, 2024년(60세)에는 2만5,000명으로 44.5% 급감해 거의 반토막이 났다. 1960~1964년생 대기업 상용직의 경우 평균 1만7,000명(43.3%)이 줄었다. 이에 따라 정년이 60세에서 61세로 1년 연장될 경우, 59~60세 구간에서 나타난 감소가 60~61세로 1년 유예될 가능성이 높다. 즉 기업이 최대 5만6,000명의 고령 상용근로자를 1년 더 고용해야 하는 셈으로, 이는 고령층 인건비 부담 확대와 신규 채용 여력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정년연장, 청년 일자리 11만 개 증발
이 같은 영향은 한은 조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한은 조사국 고용연구팀과 김대일 서울대 교수가 지난 4월 발표한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60세 정년을 연장할 때 고령 근로자 1명이 늘어날 때마다 청년 근로자 0.4~1.5명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단순 대입하면 정년을 1년 연장할 경우 청년층의 안정된 일자리 약 5만 개가 줄어드는 셈이다.
청년 일자리 감소는 특히 대기업에서 두드러졌는데, 노조가 있으면서 고용 보호를 강하게 받는 300인 이상 기업에 정년연장의 혜택이 몰렸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정년연장의 혜택이 유(有)노조, 대기업 일자리에 집중되면서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가 심화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조사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4년까지 고령층(55~59세) 임금 근로자는 약 8만 명 늘었지만 청년층(23~27세) 임금 근로자는 약 11만 명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층 고용의 효과도 점차 퇴색됐다. 노조 비중이 높을수록 고령층 고용 증가 효과가 커지는 경향이 대기업에서 더욱 두드러졌지만, 고령층 고용 증가 효과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기업이 법적 정년연장으로 인한 추가적 부담을 조기 퇴직 유도 등 인사·노무 정책으로 상쇄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현재의 임금 체계와 고용 경직성을 유지한 채 정년만 연장하는 정책 변화로는 기대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의미다.

호봉제로는 정년연장 감당 못 한다
다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년연장은 피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국이 지난해 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노동 공급 감소와 성장 잠재력 저하를 막기 위해 ‘고령층이 더 오래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는 노동시장’을 만드는 게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관건은 정년 상향 조정의 속도다. 앞서 정부는 정년을 2033년까지 65세로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으나, 충분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커지면서 무작정 강행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됐다. 노동계는 하루라도 빨리 정년을 연장해 연금 수급 연령과 괴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경영계에서는 인건비, 인사 체계 급변에 따른 부담을 들어 준비 기간이 충분히 필요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개편이 시급한 사안은 연공급 임금체계다. 호봉제 그대로 정년연장이 이뤄질 경우 비교적 생산성이 떨어지는 60세 이상 근로자가 월급은 더 많이 받는 일이 벌어져 가뜩이나 심각한 청년층의 실업률을 더욱 부추길 수 있어서다. 또한 정년연장 논의에서 정년연장법만 통과할 경우 기존 문제점이 더 부각될 수도 있다. 예컨대 한국 기업들의 30년 이상 근속자 임금은 1년 미만 근속자의 2.95배에 달한다. 정년을 앞둔 근로자가 청년 3명을 뽑을 돈을 임금으로 받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도 일본(2.27배)이나 독일(1.8배)을 크게 상회하는 상황에서 정년만 연장하면 이 격차가 더 심화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제시하는 대안은 '직무급제'다. 직무급제는 직무의 난이도·책임·기술 수준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며, 동일 직무에 동일 임금을 적용하는 임금체계를 의미한다. 직무급제로 전환하면 법적으로 정년을 못 박지 않아도 계속 고용이 유지될 수 있다. 현재 직무급제를 도입하고 있는 유럽 국가는 법적 정년이 없는 대신 연금 개시 연도가 정년(독일 67세, 프랑스 64세)으로 간주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고령화가 더 진행된 일본의 정년은 아직 60세다. 하지만 65세까지 '고용확보조치 의무', 70세까지 '취업확보조치 노력의무' 등 '계속 고용' 형태로 일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 이에 따라 일본 근로자는 60세가 됐을 때 연장할지 은퇴할지를 정할 수 있으며, 연장을 원하면 회사는 이를 거부할 수 없다. 근로자 자신의 은퇴 시기를 선택할 수 있는 셈이다. 임금은 회사나 근로자의 능력 여부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기존 임금에서 30%가량 삭감되고 관리직 등 직책에서 물러나는 경우가 많다.
일각에서는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2013년 정년 60세 법제화와 함께 임금 개편 의무가 법률로 명시됐지만 노조의 동의가 필수가 되면서 10년 넘게 개편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고령자 고용 활성화를 위해서는 근로자의 평균임금이 저하되지 않는 임금체계 개편은 ‘과반수 근로자 동의’가 아닌 ‘의견 청취’만으로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계가 요구하는 '임금 감소 없는 정년 65세 연장'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방식"이라며 "사회적 논의 없이 법정 정년을 58세에서 60세로 연장했다가 사회적 혼란을 빚은 2016년의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 임금체계 개편 없는 졸속 정년연장의 후과는 젊은 세대가 모두 짊어지게 될 것"이라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