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發 불확실성에 K제약·바이오 美 거점 확보 분주, 리스크 차단·점유율 확대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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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트리온·SK바이오팜 등 현지 생산 비중 확대 트럼프발 관세 부과 따른 연쇄 영향 예의주시 미국 현지 거점 확보가 성장 위한 가장 빠른 길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초고율 관세와 의약품 리쇼어링(자국 생산기지 회귀) 압박 속에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잇따라 미국 현지 거점 확보에 나서고 있다. SK바이오팜과 롯데바이오로직스가 미국에 제조 시설을 마련한 데 이어 셀트리온도 일라이릴리(Eli Lilly) 뉴저지 공장 인수를 마무리하며 대규모 투자를 예고했다. 최근 한·미 간 관세 협상으로 한국산 의약품이 최혜국대우(MFN, Most Favored Nation)를 적용받게 되면서 관세 리스크는 완화됐지만,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의 무관세 불확실성과 약가 인하 압박 등이 여전한 만큼 미국발 리스크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미국 내 유통·조달망에 직접 진입하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K-바이오, 미 현지 거점 확보 행렬
11일 셀트리온은 미국 연방거래위원회 사전신고사무국(PNO)으로부터 뉴저지주 브랜치버그에 위치한 일라이릴리의 생산시설 인수에 대한 기업결합 심사 절차를 모두 마쳤다고 발표했다. 셀트리온이 앞서 지난 9월 인수 본계약을 체결한 브랜치버그 공장은 14만9,000㎡(약 4만5,000평) 부지의 대규모 생산시설이다. 셀트리온은 이 공장 인수에 4,600억원을 투자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로부터 심사가 완료되면서 셀트리온은 공장 인수를 위한 규제기관 필수 절차를 모두 마쳤다. 셀트리온은 지난달 31일에는 아일랜드 정부 기관의 기업결합 심사 승인을 받았다. 두 건의 기업결합 심사는 기업 간 자산을 결합하는 과정에서 시장 경쟁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지 등을 각국에서 판단하는 절차다. 이번 절차는 미국 ‘하트 스콧 로디노 반독점증진법(HSR법)’에 따라 진행됐다. 이 심사가 계약의 최종 성사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과정이었던 만큼, 연말까지 딜클로징에는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셀트리온은 인수 직후 대규모 추가 투자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셀트리온은 인수 후 생산 시설의 4분의 1에 달하는 1만1,000평 규모의 유휴 부지에 최소 6,000억원 이상을 추가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생산 시설 증설이 완료되면 브랜치버그 공장의 생산능력(캐파)은 현재 셀트리온의 최대 생산시설인 인천 송도 2공장의 1.5배 수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셀트리온은 인수후통합(PMI)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연내 딜클로징과 동시에 업무 단절이 없도록 업무영역별 실무 파견자를 현지 공장에 집중 투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기존 현지 직원들이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현지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도 지속적으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셀트리온에 앞서 SK바이오팜도 미국령인 푸에르토리코에 제조시설을 마련했다. 지난 7월 이동훈 SK바이오팜 대표는 미국 보스턴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푸에르토리코 제조시설은 당국 실사를 마친 상태로, 비용상 이유로 현재는 캐나다에서 세노바메이트를 생산한다”고 밝혔다. SK바이오팜이 푸에르토리코를 선택한 이유는 미국 본토보다 인건비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밖에 롯데바이오로직스도 미국 시러큐스에 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아직 미국 내 거점이 없으나 최근 미국 공장 신설과 인수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의약품 최대 200% 관세 예고, 제약업계 대응책 마련 고심
이들 기업의 미국 거점 확보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불확실성에 따른 것이다. 그동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수입 의약품에 최대 200%의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고 언급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초 내각 회의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의약품에 100%나 200%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즉시 시행되지는 않으며 “(외국 제약사들이) 미국으로 돌아올 시간을 1년 또는 1년 6개월 정도 줄 것”이라고 유예 기간을 언급했다. 리쇼어링을 통해 미국 내 의약품 생산과 고용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이 같은 초고율 관세가 현실화할 경우 한국산 의약품 가격이 2배 이상 급등해 기업들은 미국 내 사업 위축을 고민해야 했다. 특히 가격 경쟁력이 핵심인 바이오시밀러 기업은 직격탄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현시점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미국에 자체 개발 신약을 수출하는 것은 꿈 같은 일로 평가된다. 미국은 전 세계 의약품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다수의 글로벌 리서치 기업들의 보고서를 종합하면 지난해 미국 의약품 시장은 6,000억 달러(약 800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반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밝힌 지난해 우리나라 의약품 시장 규모는 31조7,000억원으로, 미국 시장이 한국보다 26배나 더 크다. 블록버스터 의약품 기준도 글로벌 시장은 연매출 1조원이지만 우리나라는 1,000억원으로, 10배나 차이가 난다. 더욱이 한국은 대미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수출 의약품 규모는 39억8,000만 달러(약 5조6,000억원)으로, 이 중 바이오의약품이 94.2%를 차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바이오 기업이 미국에서 관세 부과 없이 의약품을 유통시키기 위해서는 1년 6개월 안에 생산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밖에 답이 없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트럼프發 리스크 탈피에도 부담 여전
다행히 지난달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 회담에서 관세 협상이 타결되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했던 초고율 관세 리스크는 해소된 상태다. 이로써 미국에 수출하는 국내 의약품은 최혜국대우를 적용받아 관세율이 최대 15%를 넘지 않게 됐다. 의약품 최혜국대우 관세율은 유럽연합(EU)·일본 등과 같은 수준으로, 경쟁국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환경을 갖게 됐다. 제네릭 의약품의 경우 무관세가 적용된다.
업계는 이번 타결을 '관세 리스크 제거' 이상의 의미로 해석한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대부분은 원료의약품(DS)을 국내에서 대량 생산해 미국·유럽에 수출한 뒤 현지에서 포장·유통만 거치는 구조다. 이번 협상 타결은 인천 송도 등 바이오 클러스터에 생산거점을 집중시키며 확보한 인적·물적 경쟁력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거점을 반드시 미국으로 옮겨야 한다'는 압박이 완화되면서 이미 현지에 확보해 둔 CMO(위탁생산), 병렬생산 역량만으로도 단기 대응이 가능해졌다.
다만 한국 기업의 주요 수출 품목인 바이오시밀러 등은 무관세 적용 여부가 여전히 불분명하다. 바이오시밀러가 제네릭 범주로 분류돼 무관세를 적용받을지, 별도 판단을 받을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제약사들이 미국에서 판매하는 의약품의 가격을 MFN 가격 수준으로 낮추도록 압박하고 있다. MFN 가격은 제약사가 미국 외의 주요 선진국에 적용하는 가격 중 최저 가격을 의미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다국적 제약사들을 대상으로 MFN 정책을 추진해 왔다. 대상 약제로는 미국의 건강보험인 메디케어 파트B 중 연간지출 상위 고가 치료제(항암제, 면역치료제 등)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약값을 해외 수준으로 낮추라며 글로벌 제약사에 '60일 시한'을 제시하기도 했다. 미국 보건당국이 해당 내용을 전달한 기업은 애브비, 암젠, 아스트라제네카, 베링거인겔하임, BMS, 일라이릴리, 머크(EMD 세로노), 제넨텍, 길리어드, GSK, 존슨앤존슨, 머크(MSD), 노바티스, 노보노디스크, 화이자, 리제네론, 사노피 등 17개사다.
이는 한국 제약사들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미국 가격이 국제 비교 가격의 기준선으로 작용할 경우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의 약가 협상에도 추가 압박이 가해질 수 있다. 글로벌 본사들은 해외 저가 판매 기조를 조정해 전체 포트폴리오의 균형을 맞추려 할 가능성이 크다. 또 미국 정부의 온쇼어링 요구로 CMO, 연구개발(R&D) 투자 방향이 변할 경우 한국 바이오기업이 맺고 있는 글로벌 공동개발·생산 계약에도 조정이 예상된다. 특히 미국향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은 가격 및 공급 체계 변화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