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조정 기능 멈춘 WTO, 교역 흔들림에 교육 개방이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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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기능 마비 속, 개방형 교역망 구축 가속 비자·데이터·자격 연계로 교육 교역망 확장 다자체제 복원을 앞당길 ‘개방 질서’의 가능성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4년 주요 20개국(G20)의 수입 제한 규모가 2조3,000억 달러(약 3,200조원)에 이르렀다. 세계 교역의 10% 가까운 물량이 새 규제에 묶이며 불확실성이 커졌다. 무역 장벽이 높아지자 교육과 연구의 교류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공동 연구는 줄고, 학생과 데이터의 이동도 둔화됐다. 배경에는 세계무역기구(WTO) 조정 기능의 마비가 있다.
상소기구(Appellate Body)는 2019년 미국의 인선 거부로 정족수를 잃은 뒤, 사실상 작동을 멈췄다. 판정은 힘을 잃었고, 회원국은 상소만 반복했다. 그 틈을 타 자의적 수입 규제와 보복 조치가 잇따랐고, 충격은 산업을 넘어 지식·기술 영역으로 번졌다. 전문가들은 WTO 기능 정지가 교육과 지식 교류의 향방을 가를 변수라고 지적한다. 기능 복원이 지연되면 서비스·인재·지식 이동이 제약되고, 교육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규칙의 공백을 메우는 개방형 교역망
WTO의 조정 기능이 멈추자 규범의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는 지역 협정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국가별 조치가 이어지면서, 학위·자격·콘텐츠를 해외로 제공하는 교육기관은 예측 가능성을 잃기 시작했다. 그 결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유럽연합(EU),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이 교역 규범과 데이터 이동을 지탱하는 체계로 떠올랐다.
이 네트워크는 시장 접근과 이동 규칙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RCEP은 세계 GDP와 인구의 30%를 포괄하고, EU는 단일시장 모델의 대표 사례다. USMCA는 북미 공급망을 강화하고, CPTPP는 서비스·디지털무역 규범을 선도한다. 연결이 확장되면 21세기 교역의 기본 틀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대로 관세주의의 확산은 교육기관의 부담을 키운다. 미국이 2025년 추진한 ‘수입품 10% 기본관세’는 WTO 추산상 세계 상품교역을 1% 줄일 수 있다. 학생 유치, 학점 인정, 클라우드 기반 학습 서비스 등이 직격탄을 맞는 이유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런 단절이 이어지면 장기 성장률에 지속적 하방 압력이 가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지금 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훗날 신뢰를 다시 세우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는 평가도 나온다.

주: G20의 수입 제한 규모는 2023년 2조2,870억 달러(약 3경8,870조원)에서 2024년 2조3,280억 달러(약 3경 9,720조원)로 증가했으며, 전 세계 수입의 약 10%가 제약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과 데이터가 함께 움직이는 시장
교육은 더 이상 국내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대학은 학위와 연구역량을, 학교는 교재와 평가 서비스를 거래한다. 학생은 국경을 이동하는 인적자본이다. 2024년 국제 유학생 수는 690만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디지털 서비스 수출은 3조8,200억 달러(약 5,200조원)를 넘어서며 전체 서비스 교역의 절반을 차지했다.
새로운 교역망이 지향해야 할 축은 이동성과 데이터다. 먼저 비자·자격인정 규칙이 국가 간에 조율되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EU·RCEP·CPTPP·USMCA·아프리카자유무역지대(AfCFTA)가 추진 중인 상호인정체계가 대표적이다. 유럽의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처럼 규칙의 예측성이 높을수록 교육 이동은 더욱 활발해진다.
디지털 규율도 핵심이다. 2024년 체결된 EU–싱가포르 디지털무역협정은 소비자 보호, 전자서명, 소스코드 강제 이전 금지 등 핵심 장치를 마련했다. 이 모델은 교육기술 기업의 데이터 이전을 보호하고, AI 기반 학습의 국제적 확산을 뒷받침한다. 규범 연결은 디지털 교육의 품질과 신뢰를 함께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포용성 역시 중요하다. 개방형 교역망은 선진국 중심의 울타리를 넘어 남반구와의 연결로 확장돼야 한다. 아프리카는 에너지·클라우드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며 AfCFTA가 빠르게 실질화되는 국면이다. 교육·연구망이 고속 데이터 규칙으로 연결되면 단순한 학비 이상의 가치, 즉 복원력이 생긴다. 연결이 넓을수록 의존은 줄어든다.
교역 불안 속, 개방 협력이 부상
세계 교역사는 두 가지 흐름을 남겼다. 1930년대의 폐쇄적 진영은 충격을 키웠고, 1980년대의 지역 자유화는 개방의 기반을 닦았다. 지금은 두 경로가 교차한다. 미·중 갈등은 1930년대를 연상시키지만, RCEP과 CPTPP는 확대와 통합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느 방향을 택하는지가 중요해졌다.
2025년에도 관세가 한 지역에서 오르자 다른 지역에서 수요가 앞당겨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AI 하드웨어 수요가 급증하며 교역량이 일시적으로 늘었지만, 규모가 작은 교육기관은 이런 변동을 흡수하지 못했다. 이때 지역 교역망은 상호인정과 디지털 신원 연계를 통해 대체 경로를 열어 완충장치로 작동했다.
정책결정자가 풀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비관세장벽·데이터 규제·인가 절차를 ‘지식경제의 비용’으로 인식해야 한다. EU 역내 거래가 외부 충격 속에서도 유지되는 이유는 투명한 내부 규칙 덕분이다. 개방형 교역망이 이 원리를 서비스·투자·인력 이동으로 확장하면, 다자체제 복원까지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

주: 2025년 세계 상품교역은 현행 정책 유지 시 –0.2%, 상호 관세 부과 시 –0.8%, 여기에 무역정책 불확실성이 확대될 경우 –1.5%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행 국면에 들어선 교육 개방 구상
교육기관과 정부는 이제 실행에 들어갔다. 대학은 여러 시장을 연결하는 학생 유입 경로를 넓히고, 단일 비자에 의존하지 않는 복수 학위 모델을 추진 중이다. 새로 도입된 디지털무역 장(章)은 학생 데이터의 이동·저장·인증 절차를 규율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디지털 교역이 확산될수록 AI 학습도 함께 확장된다.
품질보증기관의 과제는 자격체계 통합을 통한 자동 인정이다. 유럽연합통계청(Eurostat)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는 유학생 비중이 높은 국가일수록 명확한 규칙과 빠른 인정 절차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제도 기반이 쌓일수록 개방형 교역망은 속도와 예측성이라는 핵심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
정부의 역할은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흩어진 체계를 연결해 작동력을 높이는 데 있다. EU·RCEP·CPTPP·USMCA·AfCFTA는 학생 비자·자격·데이터의 표준화를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공급자가 시장 장벽에 부딪힐 경우 60일 내 재검토를 보장하는 ‘패스트트랙’ 도입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2조3,000억 달러(약 3,200조원)에 달하는 교역 제한은 경고다. 교육은 스스로 방어 체계를 세워야 한다. 핵심은 새로운 벽을 세우는 일이 아니다. 작동 중인 제도를 연결해 지속 가능한 질서를 구축하는 데 있다. EU의 깊이, RCEP의 규모, CPTPP의 규칙, USMCA의 공급망, AfCFTA의 잠재력이 맞물릴 때 다자체제는 다시 설 수 있다. 교육의 길은 개방에서 시작된다. 비자·데이터·자격의 연결이 확장될수록 속도는 더 빨라진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ExpoFree Trade Mega Bloc, Not Tariff Walls: A Realistic Map for Education and Growth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