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흔드는 분쟁의 경제, ‘진짜 종결자’는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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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붕괴에 따른 분쟁 자금 약화 인증 체계 한계와 시장 구조 충돌 수요 이동·추적 규제가 만든 불법 채굴 축소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lab-grown diamond, 실험실 합성 다이아몬드) 가격이 자연석의 5~10%까지 떨어졌다. 일부 합성석은 캐럿당 15달러(약 20,000원) 수준에 거래되며 가격 격차가 한층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급락은 분쟁 지역의 수익 기반을 빠르게 약하게 만드는 흐름을 만들었다. 중국의 생산능력 확대와 반응기 기술 개선, 소매 전략 변화가 합성 가격을 90~95% 끌어내린 핵심 요인이다. 가격 구조가 무너질 경우 시장 변화는 소비 영역을 넘어 분쟁 자금 흐름까지 흔들어 놓는다. 특히 고가 원석 시장이 약해지면 무장단체의 주요 자금줄도 타격을 받는다. 인증 제도는 여전히 필요하지만, 가격 붕괴가 벌어지면 분쟁의 경제 논리는 훨씬 빠르게 변모한다. 이 변화는 결국 다이아몬드 시장과 폭력 사이의 연결고리를 새롭게 구성하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가격 하락이 만든 새로운 인센티브 변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확산은 가격 변동을 넘어 분쟁 지역의 자금 흐름을 재편하고 있다. 합성석 공급 증가로 밀수·약탈을 통해 확보되던 기대 이익이 크게 줄었고, 충적(沖積) 매장지에서 무장단체가 확보하던 현금 흐름도 약해진 모습이다. 이는 원석을 불법 채취하거나 강제 징수해도 예전만큼의 수익이 남지 않는다는 신호다.
시장의 변화는 더 뚜렷하다. 합성석 도매 가격은 초기 상업화 단계 대비 90~95% 하락했고, 미국에서는 천연·합성 가격이 모두 낮아지는 디플레이션 흐름이 나타났다. 가격 격차가 커지면 자연석 밀수 구조는 경쟁력을 잃는다. 과거 높은 가격을 전제로 유지되던 조세·약탈·강제 노동 기반의 자금 조달 방식은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결국 가격 하락은 분쟁 구조에 개입하는 새로운 변수로 부상했다. 무장단체의 재정 기반이 약화되는 만큼, 자원 약탈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도 압력을 받으며 변화를 맞고 있다.

주:2002년 인증제 도입 이후 다이아몬드 산지 격자에서 분쟁 발생 비중이 완만히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인증 체계의 한계와 가격 하락의 충돌
킴벌리 프로세스(Kimberley Process·KP, 반군이 활용하는 분쟁 다이아몬드를 차단하기 위해 구축된 국제 인증 체계)는 86개국이 참여해 세계 원석 생산의 99.8%를 관리한다.유엔(UN)의 지원 아래 각국 세관은 수입·수출을 통제하며 불법 원석 유입을 차단해 왔다. 그 결과 일정한 성과가 나타났고, 2002년 이후 충적 다이아몬드 매장지 주변 분쟁 발생이 감소했다는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제도적 한계는 분명하다. KP는 반군이 정부에 대항해 사용하는 원석만을 분쟁 다이아몬드로 규정하며, 국가 폭력·부패·강제 노동·환경 파괴 같은 위험은 제도 밖에 남는다. 그 때문에 지난 20여 년 동안 공식 ‘분쟁’ 지정 사례는 소수에 불과했고, 현장에서 반복된 문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자연석 가격이 급락하자 구조적 한계도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KP는 일정 수준의 높은 가격을 전제로 세탁 비용을 높여 억지력을 확보하는 방식이었지만, 가격이 떨어진 시장에서는 그 효과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합성석 확산으로 자연석의 경제적 매력까지 낮아지면 인증만으로 시장 질서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가격 하락과 수요 변화가 동시에 진행될 때 인증 체계의 영향력이 크게 제약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합성 확산에 따른 수요 변화와 불법 채굴 약화
합성석의 확산은 단순히 가격을 낮추는 수준을 넘어, 보석 수요 구조 자체를 흔들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테노리스(Tenoris)는 2024년 미국 보석 시장에서 합성석 비중이 14%에 달했다고 밝혔다. 보석 전문지 JCK 매거진 역시 약혼 반지의 거의 절반이 합성석을 사용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약혼 반지는 고가 보석 수요를 좌우하는 핵심 시장이므로, 선호 변화는 자연석 가격과 거래량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흐름은 자연석 시장 전체의 가격 구조를 재조정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변화는 불법 채굴의 경제성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자연석의 상징성과 지위가 약해지면 프리미엄은 낮아지고, 채굴·약탈로 얻을 수 있는 이익도 줄어든다. 이는 시장의 가치 기준이 합성석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G7과 유럽연합(EU)이 2024년 러시아산 다이아몬드에 출처 추적 규정을 도입하며 제재를 강화했다. 연마석까지 문서 제출을 요구하는 조치가 시행되면서 공급망 감시는 더욱 촘촘해졌다.
결과적으로 가격 하락, 수요 이동, 추적 규제가 동시에 작동하며 불법 채굴 세력은 판매 경로와 수익 기반을 함께 잃는 국면에 놓였다. 이는 자연석 채굴에 의존한 비공식 경제 활동의 지속 가능성이 크게 약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주:랩그로운 다이아몬드 비중이 14%까지 확대되며 가격 구조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안보 외부효과와 채굴 지역 전환 필요성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정책 개입 없이도 분쟁 자금을 줄이는 안보 외부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합성석이 시장에 자리 잡으면서 그동안 분쟁 단체가 의존하던 ‘고가 원석 기반 수익 구조’ 역시 약화되는 흐름이 감지된다. 인증은 세탁 비용을 높이고, 제재는 공급국을 제한하며, 합성석은 가격 하한선을 끌어내린다. 이 세 요인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전쟁 경제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그동안 분쟁을 유지해 온 자원 약탈·강제 징수·비공식 거래 구조는 예전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문제는 채굴 지역의 생계다. 가격 하락은 비공식 광부와 지역 공동체를 더욱 취약하게 만들며 기존 생계 기반 붕괴 위험을 키운다. 특히 충적 채굴 지역은 대체 일자리가 부족해 가격 변동의 충격을 그대로 받는다. 기술교육·직업전환·지역 기반 확충이 병행되지 않으면 빈곤이 고착될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추적 가능한 공급망 구축, 지역 기술 투자, 공공조달 기준 정비가 함께 추진돼야 한다. 이러한 조치가 결합될 때 “가격 하락 → 분쟁 약화 → 지역 전환”의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결국 시장 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채굴 지역이 새로운 경제 구조로 이동할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Lab-Grown Diamonds and Conflict Diamonds: The Real War-Breaker?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