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바스 포기하고 병력 절반 줄여라” 러시아에 더 기운 우크라 새 종전안, 전쟁 장기화 우려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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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코프 특사가 초안 작성 주도 우크라 돈바스 전체 양보, 군 절반 축소 포함 8월 알래스카 회담 때보다 우크라에 더 불리

미국과 러시아가 작성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안이 공개됐다. 종전안에는 우크라이나가 동부 돈바스 전체를 양보하고, 군 규모는 절반으로 축소하는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는 우크라이나의 안보 기반을 무너뜨리는 조건이자, 우크라이나가 오랫동안 '레드라인'으로 여겨 온 내용들로, 사실상 현실화되기 어려운 협상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비공식 채널 통한 물밑 협상
19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가 최근 마이애미에서 루스템 우메로우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서기를 만나 미국과 러시아 전현직 당국자들이 작성한 종전안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아직 초안에 불과한 종전안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아직 자국군 통제 아래에 있는 영토까지 포함해 돈바스 나머지 부분까지 양보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영토 전체를 러시아에 내주는 셈이다.
우크라이나가 핵심 무기류를 포기하고 미국의 군사 지원도 축소해야 한다는 내용도 적시됐다. 앞으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추가 침공에 취약해질 가능성이 있는 부분이다. 또한 러시아어를 우크라이나의 공식 언어로 인정하고 러시아 정교회의 우크라이나 지부에 공식 지위를 부여하도록 요구했다. 이는 러시아 크렘린궁의 오랜 정치적 목표를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8월 알래스카에서 진행된 트럼프 대통령과의 미·러 정상회담에서 돈바스 지역 할양 등을 요구했는데, 이번 초안에 러시아 입장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난 미·러 회담에 이어 이번에도 우크라이나는 논의에서 배제됐다. 8월 회담에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돈바스를 넘기면 '러시아는 남부 헤르손과 자포리자 등 우세 지역에서 공격을 중단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었다. 당시에는 우크라이나 병력 축소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었다.
사실상 주권 포기, 우크라 "대폭 수정 없인 수용 불가"
앞서 미·러 양국은 총 28개 항목으로 구성된 우크라이나 종전 계획을 수 주간 비밀리에 협의해 왔다. 미국에선 위트코프 중동특사가, 러시아에선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 대표이자 푸틴 대통령의 경제특사인 키릴 드미트리예프가 참여했다. 두 사람은 지난달 24~26일 미 마이애미에서 만나 초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 측은 이번 초안에 들어간 자신들의 요구가 상당 부분 관철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드미트리예프 특사는 “과거와 달리 러시아 입장이 진정으로 반영되고 있다고 느낀다”고 전했다.
그러나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 방안을 우크라이나가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관철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가 내세운 종전안은 우크라이나가 오랜 기간 레드라인으로 규정해 온 조건들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러시아가 진전된 협상을 바라는 미국 측을 상대로 '장난을 치려는 것'일 수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들 역시 대폭 수정 보완 없이는 수용 불가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러-우 전쟁의 힘의 균형을 고려하더라도 해당 종전안은 실제 협상 테이블에 오르기 어려운 성격을 갖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22년 2월 러시아군의 침공으로 본격적 전쟁이 시작된 직후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영토 깊숙한 곳까지 진군해 한때는 수도 키이우까지도 노렸으나, 같은 해 4월에는 공세가 꺾여 철수했다. 그 후로는 전선이 우크라이나 동부와 동남부를 중심으로 형성돼 몇 년째 조금씩 양측이 진퇴를 거듭하며 전투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몇 달간은 러시아의 끈질긴 공세가 이어지면서 우크라이나군이 조금씩 밀리는 분위기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가 영토 20%가량을 러시아에 내주긴 했으나 절대적 열세에 몰린 것도 아닌 데다, 우크라이나가 일부 영토를 포기하고 동맹국에 안보를 의존하는 ‘한국식 결과’는 유럽 입장에서도 손해다. 우크라이나가 동부 영토를 넘기고 군사력을 축소하는 순간, 러시아와의 전략적 완충지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출구 못 찾는 전쟁, 장기화 전망
결국 전문가들은 당분간은 출구가 없는 상태에서 지지부진한 전쟁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 본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 미국과 러시아 정상이 마주 앉은 지도 벌써 석 달이 다 돼 가지만, 종전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고 교전 지역에선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사이에 전투만 격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시점 최대 교전 지역은 돈바스 지역의 전략적 요충지인 포크로우스크다. 포크로우스크는 인구 6만 명의 작은 탄광도시지만 돈바스의 주요 도로와 철도가 교차하는 교통 중심지로 핵심 보급로를 담당하고 있다. 러시아가 이곳을 차지할 경우 크라마토르스크와 슬로우얀스크 등 주변 도시로 진격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은 사활을 건 공방전을 지속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수많은 병력과 장비의 물량을 앞세우고 있는데, 우크라이나군에 따르면 교전비 자체는 일부 지역에서 10대 1의 수준을 보일 정도로 유리하지만, 병력과 장비 부족의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이에 러시아의 4분의 1에 불과한 인구를 가진 우크라이나에선 전략적 후퇴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으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리 군인들을 보호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면서도 명확한 철수 의사는 밝히지 않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지원은 낭비'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국 '무장 강화' 태세
주변국들도 이런 상황을 경계하고 있다. 먼저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의 유럽방위기금(EDF) 참여를 허용하고 EU 국가 간 군사 분야 솅겐 조약(회원국 간 국경 이동 자율화) 구축을 추진하는 등 행동에 나선 상태다. EU 이사회는 지난 6일 73억 유로(약 12조 원) 규모 EDF에 우크라이나가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잠정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합의의 목표는 '유럽 재무장(ReArm Europe)'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현행 EU 예산 내에서 국방 투자를 촉진하는 것이다. 이번 합의로 우크라이나도 국방 분야 공동 연구·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또 EU 집행위원회는 이달 내 '군 기동성(military mobility)' 문서 초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해당 문서에는 EU 국가 내 군사 장비, 병력, 물자의 효율적이고 대규모적인 이동이 포함되며 관련 발표와 함께 기존 장벽을 제거하기 위한 입법안도 제출될 예정이다. 논의가 실현되면 EU 내 군 병력은 더 신속히 이동할 수 있게 된다.
러시아의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는 독자적으로 경계 태세를 구축하고 있다. 내년까지 40만 명을 훈련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군사 훈련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이다. 폴란드는 지난 2024년 기준(추정치) 6,430억 달러(약 940조원)의 국방비를 지출했다. 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중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에 이은 다섯 번째이자, 국내총생산(GDP) 대비로는 4.12%인 1위다. 또 병력은 21만6,000명으로 나토 회원국 중 세 번째로 많다. 폴란드는 앞으로 10년 동안 군 규모를 30% 이상 확대할 계획이다.
EU 최대국인 독일은 사실상 징병이 가능한 새 병역 제도를 확정했다. 독일 연정을 이끌고 있는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과 사회민주당(SPD)은 13일 기존의 모병제를 유지하되, 신병 모집이 부족할 경우 강제 징집을 가능하게 하는 병역 제도 개편안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새 제도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내년부터 만 18세가 되는 독일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서면으로 군 복무 의사를 묻는다. 여성은 답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남성은 의무적으로 답해야 한다. 독일 국방부는 현재 18만 명인 병력 규모를 앞으로 10년여간 27만 명 수준으로 50% 늘리고, 예비군 제도도 강화해 전체 동원 가능 병력을 냉전기 때와 유사한 46만 명으로 확충할 예정이다.